이렇게 하는 것이군요. 닥터지킬님, 갈림님께서 바톤을 넘겨주셨습니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인터넷의 번식력은 실로 대단합니다.ㅡㅡ;;


1. 내 컴퓨터에 있는 음악 파일의 크기

현재 1.04G


2. 최근에 산 CD

House Of Wax (2005 Original Soundtrack)


3. 지금 듣고 있는 노래

Over The Rainbow/What A Wonderful World - Aselin Debison

Love Me - Yiruma

날개 - 못


4. 즐겨듣는 노래 혹은 사연이 얽힌 노래 5곡

즐겨듣거나 사연이 있는 음악이 5곡만 되겠습니까만... 그냥 생각나는대로...

Kid A - Radiohead ---> 여자친구한테 100일 기념으로 받았던 선물이 'Kid A' 앨범이었습니다. 제가 Radiohead 좋아한다는 걸 알고 뜬금없이 '선물이야'하고 내놓더군요. 심하게 아방가르드적이고 너무 어렵다, 드디어 자신만의 위대한 세계를 완성했다는 등 다양한 평가가 나왔지만, 어쨌든 저의 베스트 앨범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영원히 'Kid A'랍니다.

Untitled 8 - Sigur Ros ---> Sigur Ros는 검은바다님 블로그에서 발견한 그룹인데 3집 '()', 그 중에서도 Untitled 8은 정말 말이 필요 없습니다. 들을 때마다 무아지경으로 접어들지요.ㅡㅡ; 여전히 존재하는 혼돈스러운 태초를 딛고, 불확실하고 모호한 하늘빛의 현재를 넘어, 우주를 떠다니다가 우연히 신의 형용할 수 없는 표정과 마주하는 기분이랄까.ㅡㅡ; 실제로 '하늘에서 신이 금으로 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사운드'라는 평가도 있고요. '()'는 Nirvana의 'Nevermind', Radiohead의 'Ok Computer', 이상은의 '공무도하가'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감동이 느껴지는 앨범입니다.

새빨간 활 - 이상은 ---> 가사가 정말 마음에 드는 노래

lunchbox - Marilyn Manson

Cold Blood - 못

Everything Means Nothing To Me - Elliott Smith

.
.
.
5. 바톤을 이어갈 5명

5명은 무리고 딱 한분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왠지 이런거 안 좋아하실 듯해서 안 받아주셔도 괜찮습니다.^^(레테님, 검은바다님) 그 외에 딱히 바톤을 이어갔으면 하는 분은 없습니다.(혹은 이미 받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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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버이날 가정의 달 5월에 어떤 선물 사야하나 지갑보고 고민하고 또 그래서 행복하다 싶을 때, 따뜻하다 해서 결코 오월 햇살 떳떳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네 살 되던 해 멀리 살았지만,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먼지 잔뜩 묻은, 아니, 여전히 피로서 먼지 쓸고, 눈물로 헹궈내 똑똑히 기억해야 하는 그 오월의 사진들 속에서, 진실의 흔적만 더듬고도 슬프고 분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다음번 망월동 갈 때에는 부끄러운 손 소주 한잔 올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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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으시고 마지막날 제6일에
사람을 지으시다'

그러므로 말째야
대자연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으며
맨 끄트머리 말석이 네 자리야

물과 흙과 돌멩이...... 하루살이까지도
앞서 태어나신 형님들이시고

가장 마지막 끝날 끝순간에
말째로 지으신 바 사람아
가장 잔인하고 흉물스런 짐승아

- 유안진, <사람>


도마는 칼날을 받아냈다
벌써 십 년을 해온 일이다
대부분 죽은 것들이 도마를 거쳐갈 때마다
칼자국이 남았다 시체를 동강내는 칼날 밑에서
도마는 등을 받쳐주었다
도마의 등뼈에 수없이 파인 골짜기
핏기가 스몄다
시체들의 찌끼가 파묻힌 자리에선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났다
도마는 칼날에 잘리는 시체들의 마지막 생의 향기를 안다
생을 마감할 때 잠시 미끄러져 달아나려 했던 두려움을 안다
시체들을 통과한 칼날을 받아내며 살아가는 도마
죽음을 섭생하고는 빽빽하게 영생불사의 날짜를 새겨놓는다
도마는 죽지 않는다

- 윤의섭,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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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간호조무사의 신생아 학대 사건으로 나라(특히 포털 나라)에 난리가 난 듯하다. 갓 태어나 면역력도 없고 뼈도 물렁물렁한 아이들을 주무른 것도 모자라 콧구멍에 볼펜도 꼽아 놨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사건을 벌인 간호사들은 형사 입건된다고 한다. 법이 알아서 잘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 뭐, 대한민국 헌법은 사회적 지위, 계급, 금전 능력 등을 별책부록으로 두고 있기는 하다만. 물론, 나는 그 간호사들을 추호도 옹호하고 싶지 않다. 예뻤든 어쨌든 내 아이 얼굴이 인간복숭아가 되고, 멍멍이 털이 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든지 말든지에는 관심 없어 보이는 사진이 그녀들의 철없는 만족을 위해 싸이에 전시되어 있다면, 나 역시 눈이 뒤집힐 테니까.

그런데... 그러한 상상 속 불안감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21세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에서 날아온 듯한 괴상한 언어들이다. 구체적으로 더듬어 보면 '간호사랑 간호조무사는 엄연히 틀려. 간호사는 비싼 등록금 내고 뼈 빠지게 고생하는데 간호조무사는 대학도 못 간 애들이 할 거 없어서 하는 거야. 그래서 무 식 해.' 따위가 되겠다. 사건의 원인이 그녀들이 대학도 못 간 무식한 간호조무사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쯤 되면 '간호조무사가 평균적으로 간호사보다 인성이 떨어진다.'를 주장하는 자칭 사회통계학 박사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래, 물론 대학 나오면 안 나온 사람보다 지식은 많을 수 있겠다. 하지만 간호조무사 집단 전체가 대학을 못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천한 우월감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지금 상황은, 도저히 이해불가능한 부분이다.(내가 볼 때는 오류 중의 오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도 몰라 수능 한 개 더 틀렸을 그들이 훨씬 더 무식해 보인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못 나온 게 부끄러운 일이 된 건가. 대학 갔다 왔다는 천박한 안도감에 휩싸여 인터넷에 똥이나 찌그리는 게 더 부끄러운 짓 아닌가?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대학을 못 나왔으니, 인간성도 모자랄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코미디성 발언이 개인의 돌발적 언어가 아닌, 꽤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는 여론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물들의 X짓거리를 시청하는 국민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니, 솔직히 믿기 어렵다.

화살은, 전문직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도 망각한 당사자들, 혹은 단지 걸리지 않았을 뿐인 운 좋은 의료직 종사자들(간호조무사든 간호사든 의사든)에게 분산되어 날아가야 할 것이다.(평소같으면 원츄, 붐업을 외쳤을 싸이코 월드들은 알아서 반성해야..) 학력은 학력일 뿐이다. 언제까지 가방끈의 길고 짧음 따위로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살 것인가. ※<혈의 누>는 결국, 조선의 이야기를 둘러쓴 2005년 5월 대한민국의 자화상인 셈인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성실한 간호조무사 및 간호사분들(‘간호사랑 간호조무사랑 구분도 못해욧?’은 열외)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결코 놓지 않기를 바란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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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맞추기 위해 한없이 골치 아파야 하면서도 거기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일본 호러영화 속 흐릿한 결말이 주는 매력이다. 누가 언제쯤 빙의됐는지,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에서부터 영화를 관통하는 진실(귀신의 사람일 적 슬픔, 외로움 등)을 더듬어보는 재미가 그 모호한 마무리 안에 적절히 녹아 있다면 말이다.

미이케 다카시의 <착신아리>는 그런 점에서 일본 호러영화의 전형적인 재미를 간직한 영화였다. 동시에 영화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휴대전화를 저주의 연결고리로 적절히 풀어냄으로써 다른 <링>의 아류들과 구분케 하는 근거를 제공했다.

츠카모토 렌페이 감독의 <착신아리2>는 전편이 남긴 수수께끼같은 결말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 결말은 새로이 해석되고, 원한의 진원지는 더 깊은 과거로 나간다. 영화적 배경 또한 일본에서 대만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같은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착신아리2>는 속편이 지니는 상투적 한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나름대로 역할을 했던 1편의 모티브 '학대'와 억지로 연결하려는(그러나 연결되지 않는) 시도는 2편에 등장하는 원한에 진부함과 비논리를 더할 뿐이다. 거기에 인물들의 과거사, 사랑, 희생까지 무리하게 얽히면서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모양새로 돌변한다. '신체가 뒤틀리는 이미지'의 미적지근한 답습에서는, 미안한 말이지만, '대충 찍자'라는 의도마저 느껴진다. 일본 공포물의 특징을 감안, 정상참작하고 싶지만 <착신아리2>는 망가져도 너무 망가져버렸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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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입니다. 봄... 그 래 서! 남들 다 가는 꽃놀이 저도 한번 가봤답니다. 귀찮아 하는 사진찍기도 해보고.. 어린이대공원에 의외로 사진 찍을 곳이 많더군요. 어린이가 생각만큼은 많지 않아 더욱 좋았습니다.


개나리입니다. 약간 시들시들하군요..


튤립이 무더기로 있더군요. 참 예쁩니다.(이런 말 정말 어색합니다만..)


이 꽃 진달래 맞나요..?


이건 또 무슨 꽃일까요? 색깔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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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총대 없는 전쟁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내용을 알고 봐도 별 상관은 없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시작, 낭떠러지 끝에 작은 신발 한 켤레가 쓸쓸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몸을 던지는 가냘픈 소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카메라가 바라보는 영화 속 세상은 눈을 마주치기조차 두려운, 그러나 도저히 외면할 수는 없는 고통으로 가득하다. 전작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과 <고향의 노래>에서 쿠르드족을 짓누르는 역사의 무게, 삶의 애환을 이야기하던 바흐만 고하디 감독은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 <거북이도 난다(Turtles Can Fly)>에서 다시 한번 그 외로운 현장으로 들어간다. <거북이도 난다>는 이라크 국경지역인 쿠르디스탄에서 살아가는(혹은 죽어가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거라는 소문 때문에 쿠르디스탄에 모인 쿠르드족 난민들은 어디서 새로운 소식을 알 수 있을지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위성’이라 불리는 아이는 어른을 대신해 사람들의 중심에 서있게 된다. 위성 안테나를 만질 줄 아는 그는 어른들에게 명령하고, 그들과 흥정할 줄도 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 어쩔 수 없지만 나름대로 잘 적응한 예라 할 수 있다. 지뢰 탓에 다리 하나가 없는 파쇼 등 또래 아이들과 함께 위성은 매설된 지뢰(미군이 묻어놓은)를 뽑아 근근이 삶을 꾸려나가며 무기를 사기도 한다.

할루자에서 온 헹고라는 소년은 전쟁통에 두 팔을 잃었다. 그의 여동생 아그린의 얼굴에는 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아물 거라고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라크 군인들에게 집단강간을 당해 낳은 아이 리가(앞을 거의 볼 수 없는)를 향한 애증이 그 증거로서 명명백백히 남아있다. 위성의 소박하고도 서투른 접근에 웃을 수 있는 작은 여유조차 그녀에게는 없다.


이렇듯 <거북이도 난다>는 인간의 눈먼 이기심이 아이들에게 남기고 간 황폐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다. 하늘은 때때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대지 또한 광활한 멋을 부리지만, 그 자연을 채우는 것은 탱크의 잔존물이나 지뢰 더미 같은 파괴의 흔적들이다. 그리고 흔적들은 무생물의 싸늘한 이미지에만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몸과 머릿속으로까지 그 뿌리를 내린다. 폭력의 잔가지들은 끈끈하게 축적되어 아이들의 팔과 다리를 잘라냈으며(혹은 잘라낼 것이며), 어린 소녀에게 매일 새벽 자신의 눈먼 아이를 죽이고 자살할 것을 강요한다.

영화가 담아낸 환부가 아플 뿐만 아니라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픈 이유는 이 아이들의 살아가기와 죽어가기가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냉정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일찍 어른과 같은 삶의 방법을 익힌 아이나, 과거의 짐을 견딜 수 없어 제 목숨을 끊는 아이가 공유하는 것은 결국 ‘탈출’을 향한 갈망에 다름 아니다.

<거북이도 난다>는 탈출을 꿈꾸어야만 하는 아이들을 통해 현재진행중인 파괴의 역사를 고통스럽게 늘어놓는다. 영화는 카메라라는 매개체, 즉, 감독의 시선이 개입되기 때문에 결국 완전한 현실을 그려낼 수는 없다는 이론은 잠시 접어두자. <거북이도 난다>를 구성하는 것은 픽션이지만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이 실제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자기 자신이 쿠르드족인 바흐만 고하디 감독은 “내 영화들은 정치적이지만 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쿠르드족의 삶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영화는 자본을 거머쥐는 수단도, 자아를 발현하는 이미지도, 세계관을 담아내는 거울도 아닌 단지 현실 그 자체일 뿐이다. 카메라는 다른 쿠르드족의 총이며, 영화는 곧 전투인 셈이다.


바흐만 고하디의 스크린 안에는 무슨무슨 척하는 위선 따위가 없다. 모든 플롯은 곧 카메라 밖에서도 존재하며, 실제하는 비극은 카메라로 들어와 서글픈 이야기로 나타난다. 따라서 <거북이도 난다>가 그려내는 가혹한 이미지들은 역사가 남겨놓은 서글프고 가혹한 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TV, 신문에 뻔뻔하게 나열된 강자의 잣대와 역사책 속 몇몇 글자들의 한계를 넘어 살아 꿈틀거리는 진실과 만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거북이도 난다>가 지닌 힘인 것이다.

영화에는 미국의 침공 명분이 거짓됐다느니, 후세인은 처벌받아 마땅하다느니와 같은 이성적 언어들이 들어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작아서 들리지 않았던, 혹은 의도적으로 듣지 않았던 진실의 순간과 가슴 아프게 마주하는 시간이며, 바흐만 고하디가 외로이 시작한 싸움의 본질 또한 그것이다.

이라크전에 관한 CNN 뉴스 장면들이 한스러운 눈물로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헹고와 교차편집될 때, 군인들의 괴물같은 본능에 손을 떨구고 말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아그린이 절벽 끝에서 서럽게 울 때, 우리는 비로소 절망의 일부나마 가슴 속에 담을 수 있게 된다. 관객의 귓속에 아이들의 슬픈 심장박동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이 장면에서, 감독은 관객과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만이 자신의 유일한 대안이었음을 서글프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상낙원을 건설하러 왔습니다.” 미국의 공허한 메시지가 삐라로 뿌려지는 전쟁 직전의 지점에서 영화는 멈춰선다. 그리고는 극단으로 달려간다. 제 자식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 낭떠러지 밑으로 몸을 날리는 아그린. 감독은 질문한다. 여동생과 조카의 시체를 보고서, 팔 없는 헹고는 이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설픈 영어를 구사하며 미국에 은근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위성이 마지막에 달려가는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연 거북이는 날 수 있을 것인가?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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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한 것은 '도대체 왜 그랬느냐'는 점이다. 선우(이병헌)가 파멸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면서도, 강사장(김영철)이 자신의 가혹한 명령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리라 예상할 수 있음에도 그 길을 선택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영화 표면에 드러나는 이유는 희수(신민아)라는 여성에서 촉발된 갈등이다. 따라서 <달콤한 인생>이 느와르를 표방한 영화임을 감안할 때, 그녀는 분명 팜므파탈에 위치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기존의 장르적 도상과는 분명 그 괘를 달리하는 캐릭터다. 그녀는 죽음도 불사하게 할 만큼 성적 매력이 넘치지도, 남성의 이성을 마비시켜 나락으로 떨어뜨릴 만큼 뇌쇄적이지도 않다.

콘트라스트가 빚어내는 음울함, 거기에 걸맞은 차가운 피부와 새빨간 입술이 그녀에게는 없다. 따라서 그녀는 팜므파탈의 자리에 위치한 그것의 또 다른 변주에 가깝다. 붉은 피와 검은 정장으로 상징되는 우울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들 속에서 희수는 유일하게 어둠에 물들지 않은 맑은 눈망울을 가진 인물인 셈이다.

결국 선우를 잡아끄는 힘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희수의 이미지 안에서 선우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혹은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세상의 반대편을 발견한 것이다(아마 강사장도 그런 부분에서 희수에게 끌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영역에 속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흔들림은 사랑의 밀고 당김이나 삶의 반성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서로를 향하는 총구 속에서 폭력의 광기로서 폭발한다(그들은 소통할 줄 모른다).

마지막 섀도우 복싱 장면은 선우가 죽음을 앞에 두고 나르시스트 마냥 우쭐되던 과거의 잘 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나른한 환상에 젖어있던 자신에게 보내는 씁쓸한 웃음에 가깝다. 달콤한 줄만 알았던 인생이 어긋나는 순간, 자신을 지탱하던 끈이 단단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선우는 파멸한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이며 너무 가혹한 것이 된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표면은 대단히 폭력적이지만, 그 이면을 채우는 것은 고통에 익숙해져서 인생의 달콤함을 찾을 줄조차 모르는 사람들, 폭력의 순환에 갇혀 소통 활로 자체를 놓쳐버린 사람들에게 보내는 동정(혹은 조소)의 시선에 다름 아니다. 김지운 감독은 분노와 복수에는 익숙하지만 사랑할 줄은 모르는(남은 물론 자신까지) 인간군상들, 그 치명적인 나약함이 몰고오는 필연적 파멸을 장르의 관습 안에서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적절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결코 유쾌하거나 친절한 방법으로 전달되지는 않지만, 그는 다시 한번 질문해온다.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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