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갔다가 TV화면과 신문지면으로만 접했던 중앙로역에 들렀다. (새로 덧칠은 했지만) 당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나한테조차 끔찍한 이미지는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유가족분들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다시 한번 슬픈 영혼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대구에서만 쓰이는 지하철 표. 무슨 대학이랑 함께 만들었다는데, 갖고 있기에도 편리하고 재활용도 된다. 다른 도시들도 한번씩 검토해봄직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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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을 만큼 진부한 스토리,
뻔뻔함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로 내달리는 웃음유발 장치들,
징그럽게도 이어지는 빠구리성 욕지거리.

아! 목불인견의 잔인함이여...

가진 건 배급력뿐. 도저히 끝까지 앉아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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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 쥬드, 사뮤엘 L. 잭슨, 앤디 가르시아.. 꽤나 매력적인 조합이다. 그리고 거기에다 필립 카우프만이라는 이름까지 더한다면..? 아마도 결과에 거는 기대치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낙관했을까. <블랙아웃>(Twisted)은 감독과 배우의 명성에 비해 상당히 실망스럽다.

<블랙아웃>은 반전에 힘을 두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채 시작한다. 제시카(애슐리 쥬드)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있음을 부각시키는 초반부터, 범인이 될 수 있는 캐릭터는 매우 좁은 범위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인이 누구냐'가 아닌 제시카의 악몽, 환각, 상처가 영화를 끌어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렇기는 하다. 그녀는 매일밤 술병을 들이키며 몽롱한 채 잠들고, 악몽에도 시달리니까.(필름마저 끊긴 날에는 어김없이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아쉽게도, 슬쩍슬쩍 보이던 히치콕의 흔적들이 전면에 드러나면서부터 영화의 흐름은 조금씩 엇나간다. 주변 남성들의 (거세 공포에 따른) 지배욕, 질투, 혹은 관음적 시선이 지나치게 개입된다 싶을 즈음, 내러티브 상 중요하지 않았던,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라는 질문놀이가 갑작스레 표면으로 떠오르고야 만다. 답은 이미 흘려 놓은 상태. 거기에 잡다한 장치들이 '나도 맥거핀'임을 자처하면서, 영화의 호흡은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진다. 가장 큰 단서가 애초에 드러났던 초반 설정을 감안할 때, 무리한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안타깝게도 <블랙아웃>에는 히치콕의 흔적만 있을 뿐 히치콕은 없다, 어처구니없지만, 당연히 카우프만도 없다. 남은 건 그저 그런 스릴러 한편과 매력을 맘껏 발산하는 애슐리 쥬드뿐.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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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드 샤브롤을 공중파에서 만날 수 있게 됐군요. EBS ‘세계의 명화’가 4월 특집으로 ‘끌로드 샤브롤 후기작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작년 캐치온에서 방영했던 목록과 같습니다만).

그가 만든 영화들의 집대성이라고 불리는 <의식>(1995), 부르주아 가정의 위선과 어두운 본성을 다룬 <초콜릿 고마워>(2000), 그리고 보들레르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블랙코미디 <악의 꽃>(2003) 등 세 편이 방송될 예정입니다. 남은 2주동안에는 자끄 리베트 감독의 <알게될거야>, 시드니 루멧 감독의 <에쿠우스>가 편성됐습니다.

참, EBS 세계의 명화는 매주 토요일 밤 11시 45분에 방송됩니다.

정성일씨가 쓴 끌로드 샤브롤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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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 시대를 향한 베르톨루치의 오마쥬


(마치 태아처럼) 웅크린 채 죽어가는 폴을 뒤로 하고 잔느는 되뇐다. “난 저 사람 몰라. 거리에서부터 쫓아와서 날 겁탈하려 했어. 미친 사람이야. 난 저 사람 이름도 모르는걸.”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마지막 대사다. 계급, 이름을 불문하고 오로지 상대의 육체만을 허무하게 탐닉하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68혁명이 품었던 꿈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고 프라하의 봄이 총칼에 짓밟혔을 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바탕 축제가 끝난 허탈감 속에 남은 건 오로지 슬픈 육신뿐. 미래에 대한 68세대의 절망, 혁명의 기운이 단절되는 데서 오는 상실감은 존재를 찾는데 실패한 덧없는 몸부림으로 투영되었다.


이 후 <마지막 황제>, <리틀 붓다> 등을 만들며 동양적 세계관을 탐구하는 데 주력해오던 베르톨루치 감독은 길버트 아데어의 소설 ‘Holly Innocents’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68년의 정체성으로 돌아간다. 시네마테크 관장이던 앙리 랑글루와가 정부의 부당한 간섭에 의해 해고되고 사람들이 서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때, 혁명의 씨앗이 뿌려지던 그 지점에서 영화 <몽상가들>은 시작한다.


그들의 소통 방법, 대중문화와 성적 유희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민중의 물결이 아니라 세 젊은이의 미묘한 동거 공간이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쌍둥이 남매인 이자벨과 테오, 미국인 매튜가 공유하는 독특한 소통 방법을 토대로 당시의 미숙했지만 순수했던 열정을 추억한다. 세 사람만의 공간, 그들의 일상을 채우는 것은 영화(또는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표현, 그리고 오르가즘이 없는 성적 유희다.

쌍둥이 남매와 매튜가 가까워진 원인은 영화다. 그들은 영화의 숏을 몸소 재연하면서 퀴즈를 내고 <이방인들>의 주인공을 따라 루브르 박물관을 가로지른다. 지미 핸드릭스와 에릭 크립튼에 관해 논쟁하며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의 연기를 놓고 토론한다. 대중문화를 말하는 것이 곧 세상과 소통하는 활로인 셈이다. 군데군데 배치된 걸작들의 숏이나 지미 핸드릭스의 연주 등 명곡의 삽입은 영화적 시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제 역할을 다한다.

베르톨루치는 세 청춘의 영화사랑을 통해 문화가 비로소 인간 의지의 영역으로 들어왔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계급 재생산으로서의 일방적 헤게모니를 거부하던 시기, 대중문화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꿈틀대던 그 때, 문화는 곧 세상과 소통하는 기호였고 대중을 실천의 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몽상가들>이 보여주는 당대 문화의 매력적인 향연은 같은 ‘감정의 구조’를 누렸던 동시대 사람들에게 바치는 베르톨루치의 오마쥬에 다름 아니다.

세 젊음이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은 성적 유희다. 그들은 영화퀴즈의 벌칙으로 자위나 성행위를 시도한다. 또한, 벌거벗고 돌아다니거나 성기를 노출한 채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창피함이 없다. 오르가즘을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웃고 즐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욕조에서 몸을 맞대고 있는 그들은 같이 씻어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어린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마치 태초를 보는듯한 이 같은 성적 자유를 통해 영화는 쌍둥이 남매의 연결고리를 설명해낸다. 테오와 이자벨이 함께 잠을 청하는 방은 외부와 단절된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시킨다. 이미 성장해버린 육체와 상관없이, 쌍둥이의 정신은 여전히 자궁 안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벌거벗은 채 같이 누워있는 기괴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당연히 섹스가 없다. 테오와 이자벨은 소중한 장소를 공유하는 ‘또 다른 나’로서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나체는 세상으로 나갈 날만을 설렌 마음으로 기다리는 태아의 그것에 가깝다.

베르톨루치는 테오와 이자벨의 이 같은 설렘을 ‘몽상’이라고 일컫는다. 자신들만의 사랑법을 향한 이 낙관적 믿음은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던, 그러기에 미숙했지만 열정적이었던 68년의 감성과 닮았다. 도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미묘한 동거 속에는 정점으로 달린 적이 없기에 한계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던 당시의 순수했던 상상력이 스며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던 역동의 기운

노동자의 계급투쟁이나 혁명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그 시절의 분위기, 베루톨루치 감독이 ‘몽상가들’의 유희로 들어간 것은 바로 그 비어있는 의미를 다시 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테오와 이자벨 그리고 잠시였지만 매튜까지, 그들의 알몸에는 은밀함이 없다. 대중문화를 말하는 대화 속에는 순간순간의 감성이 살아 꿈틀거린다. 경계를 넘나드는 데 아무런 수줍음 없는 그들이지만 가치전복 자체에 목적을 두지는 않는다. 세 청춘은 단지 좋아하는 것-문화, 서로의 몸-을 향유하고 즐길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적절히 어우러지며 일종의 카니발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리고 그 기운의 의미, 즉, ‘자유로운 상상력이 넘실거리던 한바탕 축제’가 68년의 기의로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시대는 완성된다. <몽상가들>은 오랫동안 68년의 혼돈과 정체성을 고민해온 노감독이 마침내 완성해낸 역사의 기록이자, 그 속에서 숨쉬었던 모든 몽상가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몽상가들은 거리로 뛰쳐나간다. 이자벨과 테오가 자궁 밖으로 나오고 대중의 투쟁(이자 축제)이 현실과 부딪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매튜는 결국 쌍둥이 남매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 지점에서 베루톨루치 감독은 테오와 이자벨의 관계가 결국은 외부세계와 충돌하고 좌절하게 될 것임을 매튜의 슬픈 눈을 빌려 이야기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허무와 절망이 말해주듯, 순수한 감수성이 상처받을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가 그 어느 때보다도 슬프게 들리는 이유다.

그러나 영화 <몽상가들>의 가치는 실패한 역사를 우울하게 되새김질하는 데 있지 않다. 베르톨루치의 자의식은 이미 반성과 후회, 절망을 겪을 만큼 겪었다. 어느덧 환갑을 넘긴 노감독이 선택한 길은 부러져버린 혁명의 깃발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역동적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며 그 시간을 수줍게 회고하는 것이다.

“탄원서가 시고, 시가 곧 탄원서다.” 테오와 이자벨, 그 시대의 몽상가들이 꿈꾸던 명제다. 베르톨루치는 거기에 한마디 덧붙인다. 결국 탄원서가 되지는 못했지만, 시는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고.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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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카터' 시사회권 드립니다.
제가 못 갈 것 같아서요.
시사회 게시판에 올리려다가
이왕이면 이글루스 이웃분께 양도하고자..

내일(水) 오후 8시 40분 드림시네마입니다. 1인 2매구요. (엔키노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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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력한 후보는 심정수


야구의 꽃은 홈런이라는 말이 있다. 박빙의 승부에서 터지는 큰 것 한 방은 팀에게도, 관중에게도 극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2005년, 그 감동을 가장 많이 만들어낼 선수는 누구일까. 올해의 홈런왕 후보들을 살펴보자.


가장 강력한 후보는 역시 삼성 라이온즈의 새로운 4번타자 심정수다. 심정수는 처음으로 30홈런을 넘긴 99시즌부터 지난해까지 총 199개의 아치를 그렸다. 시즌 당 33번꼴로 담장을 넘긴 셈. 2003년에는 이승엽과 치열한 경쟁 끝에 자신의 최다이자 역대 세 번째로 많은 53개의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심정수는 그 해에 자신의 힘을 과시했음은 물론, 심한 견제에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으며 꾸준함과 선구안 능력 또한 증명해냈다. 그가 124개의 사구를 얻어내는 동안 당한 삼진은 63번뿐이었다.(이승엽은 사구 101개, 삼진 89개를 기록했다). 심정수는 또한 통산타율 0.296를 자랑할 만큼 정교한 타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승엽이 빠진 지금, 홈런에 관한 한 심정수는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펜스 거리가 비교적 짧은 대구구장으로 둥지를 옮김에 따라 그의 홈런왕 등극은 어느 때보다도 유력해 보인다. 시즌 초반부터 폭발하거나 경쟁자가 따라 붙는다면 이승엽의 56호 기록 또한 충분히 넘볼 만 하다는 평가다.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 수비부담을 줄여준 선동열 감독의 배려 또한 긍정적 요소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심정수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60억 몸값에 맞는 활약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홈런에 대한 주변의 기대치에 자칫 제 페이스를 잃을 우려도 있다. 무릎부상의 짐을 완전히 떨쳐 버렸냐는 점, 김한수‧진갑용‧조영훈 등이 거론되는 5번타선의 지원 여부 또한 변수다.

“팀 승리와 포수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홈런왕은 지난해가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성적에 그다지 미련 두지 않을 것임을 언급했지만, 박경완(SK 와이번스) 역시 유력한 후보다. ‘4연타석 홈런’의 기록이 말해주듯, 폭발력에 관한 한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포수라는 위치 때문에 상대적으로 체력손실이 많긴 하지만, 시즌 중반까지 선두권 유지만 한다면 언제든지 세 번째 홈런왕 등극도 노려볼 만 하다.

올시즌 외국인 선수 중 최대어로 꼽히는 루벤 마테오의 경우에는 초반 한국야구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관건. 마테오는 부상전력 때문에 메이저리그 정상급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6년간 295경기를 뛴 경험과 더 성장할 수도 있는 젊은 나이(27)를 감안할 때 홈런왕 후보로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현재 시범경기 홈런부문 1위(3개)에 오르며 시즌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이밖에 지난해 부진을 씻으려는 기아 마해영, 작년과 달리 든든한 4번을 뒤에 둔 삼성 양준혁, 한화의 메이저리그 출신 용병 마크 스미스 등도 언제든지 홈런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강타자들이다. 또한 팀의 새로운 버팀목으로 거듭난 SK 이호준, 한화 김태균 역시 새로운 홈런킹 등극을 꿈꾸고 있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승엽’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역대 23시즌 동안 타자가 MVP를 차지한 것은 모두 16번. 그 중 14번의 MVP를 홈런왕이 가져갔다. 그만큼 홈런타이틀을 향한 팬과 언론의 관심은 뜨겁다. 2005년에는 누가 팬들을 사로잡을 주인공이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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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과 모텔로 향하는 그녀. 그리고는 흐느끼는 그를 자신의 품으로 감싸 안는다. 상처 입은 남성을 끌어안는 여성. 진부한 설정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놀랍게도! 남성이 만들어낸 모성 신화가 없다. 슬퍼할 수도 없는, 그래서 낯선 사람과의 낯선 동화를 통해서만 슬퍼할 수 있는 한 인간의 가련한 눈물이 흐를 뿐이다. 상처는 자기 자신의 고백과 마음 놓고 소통할 여유마저 앗아갔다.

매미소리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여기서 끝을 낼까? 끝을 내면 진정 끝나는 걸까? 매미소리가 멈춘 후 그녀는 거울 속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한다. 그리고 운다. 그제야 서럽게 운다. 다시 적막이 흐르고. 그녀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허겁지겁 고양이를 불러본다. 그 때 어디선가 들리는 작은 목소리, "정혜씨". 잊었던 그 이름. 그녀의 이름은 정혜였다. 우리는 알 수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야 정혜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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