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멋진 어휘들인가. 아마 근대화가 남긴 말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정의된 의미가 아닌, 권력 있는 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추잡한 명분이 그 기의로 자리 잡을 때, 자유, 민주, 평등은 곧 폭력, 광기와 동일어가 된다. 가까운 근현대사가, 그리고 지금의 만행이 그것의 방증이다.
침략전쟁은 자유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둔갑했고, 대량학살로 희생된 넋들은 마땅히 죽었어야 할 테러리스트로 이름 지워질 뿐이다. 문명 전파의 밑거름이라 포장되었던 제국주의 광기는, 가해자는 게워낸 채 피해자의 고통과 악몽만을 그 흔적으로 남겨 놓았다. 권력의 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역사 안에 체현되는 중이다.
영화 <멘츄리안 켄디데이트>는 미국 권력층의 허황된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 대통령을 향한 야욕, 혹은 일그러진 집착은 자본과 은밀히 결탁, 위험요소를 조작하며 미국식 자유 실현이라는 명목 뒤로 숨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선전용 상품으로 개조되거나 유효기간 지난 소모품으로서 폐기처분된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광기와 폭력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 삼은 채 개인의 영달을 위한 음모를 차근차근 진행시킨다.
<멘츄리안 켄디데이트>는 상업적 고려 때문인지, 이라크전 등 최근 정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제3국 피해자에 대한 반성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뱃속 채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척 개거품을 무는 꼴이 연일 비춰지는 TV에 비교하면, 이 정도 영화는 그나마 축복이 아닐까 싶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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