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부시가 집권 2기를 맞아 '자유의 확산'을 부르짖는 연설을 했다. 물론 그것을 진심이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권력을 손에 쥐려는 자들, 또는 한번 잡은 힘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들, 그들의 입에 공통적으로 걸리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자유, 민주, 평등'이다.

이 얼마나 멋진 어휘들인가. 아마 근대화가 남긴 말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정의된 의미가 아닌, 권력 있는 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추잡한 명분이 그 기의로 자리 잡을 때, 자유, 민주, 평등은 곧 폭력, 광기와 동일어가 된다. 가까운 근현대사가, 그리고 지금의 만행이 그것의 방증이다.

침략전쟁은 자유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둔갑했고, 대량학살로 희생된 넋들은 마땅히 죽었어야 할 테러리스트로 이름 지워질 뿐이다. 문명 전파의 밑거름이라 포장되었던 제국주의 광기는, 가해자는 게워낸 채 피해자의 고통과 악몽만을 그 흔적으로 남겨 놓았다. 권력의 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역사 안에 체현되는 중이다.

영화 <멘츄리안 켄디데이트>는 미국 권력층의 허황된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 대통령을 향한 야욕, 혹은 일그러진 집착은 자본과 은밀히 결탁, 위험요소를 조작하며 미국식 자유 실현이라는 명목 뒤로 숨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선전용 상품으로 개조되거나 유효기간 지난 소모품으로서 폐기처분된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광기와 폭력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 삼은 채 개인의 영달을 위한 음모를 차근차근 진행시킨다.

<멘츄리안 켄디데이트>는 상업적 고려 때문인지, 이라크전 등 최근 정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제3국 피해자에 대한 반성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뱃속 채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척 개거품을 무는 꼴이 연일 비춰지는 TV에 비교하면, 이 정도 영화는 그나마 축복이 아닐까 싶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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