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애니메이션 <플로우>의 후반부 고래는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벨라 타르 감독)의 고래와 정확히 같은 구도에 놓인다. 관찰자의 시선도 동일, 단 관찰자의 심경은 결이 다르다. 벨라 타르가 고래의 동공 속에서 우주적 영겁을 봤다면, <플로우>는 그 눈에서 추억과 미래의 접합을 본다. 시간의 연속성에 경외심을 보내는 것이다.
정답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인간계에 무지와 폭력성 말고 남은 게 뭐가 있겠느냐는 듯한 자조, 문명을 언젠가 소멸할 '너절한 점'으로 만드는 벨라 타르식 거대한 냉소가 더 마음에 들지만, <플로우>의 '찬란함'을 빚어내는 세공술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덕분에 고래와 새가 시네마틱한 순간을 선사 받았으니까. 그 오지 않을 미래(과거)들. 지나간 시간은 내 앞에 다시 도착하지 않으므로 비극적이며, 아름답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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