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슐리 쥬드, 사뮤엘 L. 잭슨, 앤디 가르시아.. 꽤나 매력적인 조합이다. 그리고 거기에다 필립 카우프만이라는 이름까지 더한다면..? 아마도 결과에 거는 기대치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낙관했을까. <블랙아웃>(Twisted)은 감독과 배우의 명성에 비해 상당히 실망스럽다.

<블랙아웃>은 반전에 힘을 두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채 시작한다. 제시카(애슐리 쥬드)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있음을 부각시키는 초반부터, 범인이 될 수 있는 캐릭터는 매우 좁은 범위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인이 누구냐'가 아닌 제시카의 악몽, 환각, 상처가 영화를 끌어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렇기는 하다. 그녀는 매일밤 술병을 들이키며 몽롱한 채 잠들고, 악몽에도 시달리니까.(필름마저 끊긴 날에는 어김없이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아쉽게도, 슬쩍슬쩍 보이던 히치콕의 흔적들이 전면에 드러나면서부터 영화의 흐름은 조금씩 엇나간다. 주변 남성들의 (거세 공포에 따른) 지배욕, 질투, 혹은 관음적 시선이 지나치게 개입된다 싶을 즈음, 내러티브 상 중요하지 않았던,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라는 질문놀이가 갑작스레 표면으로 떠오르고야 만다. 답은 이미 흘려 놓은 상태. 거기에 잡다한 장치들이 '나도 맥거핀'임을 자처하면서, 영화의 호흡은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진다. 가장 큰 단서가 애초에 드러났던 초반 설정을 감안할 때, 무리한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안타깝게도 <블랙아웃>에는 히치콕의 흔적만 있을 뿐 히치콕은 없다, 어처구니없지만, 당연히 카우프만도 없다. 남은 건 그저 그런 스릴러 한편과 매력을 맘껏 발산하는 애슐리 쥬드뿐.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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