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꿈꾸는 가족, 그리고 소통


사각의 링이 있다. 또한 스승과 제자가 있다. 뻔한 설정이다. 진부한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는가. 밑바닥까지 떨어진 제자가 역시 좌절한 경험이 있는 스승을 만나 권투에 눈을 뜨고 인생도 배워나간다. 그리고 링에서 투혼을 불사른다. 물론 중간에 갈등, 실패도 간간히 섞여 있고. 적당한 감동의 스포츠 드라마 한 편이 나올 듯하다.

하지만 감독이 누군가에 따라 결과는 바뀌는 것.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저 그런 감동 일대기를 허락할 만큼 한가롭게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사람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의 본질을 고민해왔고 그 안에는 늘 그늘진 곳을 향한 시선이 들어있었다. 일흔 다섯에 접어든 노(老)감독은 평범한 재료에서도 인생의 진국을 걸쭉하게 뽑아낼 줄 안다.

그는 전작 <미스틱 리버>를 통해 불확실한 세상에 던져진, 소통하지 못하는 개인들을 그려냈다. 미처 꿰매지 못한 치명적 상처는 세월을 머금고 점점 곪아 영혼마저 잠식하는 법. 치유의 기능을 상실한 인간관계는 친구, 가족이라는 이름표만을 위태롭게 붙잡은 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미스틱 강과 더불어 유유히 흘러갔다. <미스틱 리버>가 그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것이 못마땅했을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년이 채 안 되어 최고작을 다시 한번 갱신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모호한 세계, 냉혹한 운명에 갇힌 영혼들에게 작은 해독제를 선사하는 영화다. 이를 위해 노감독은 그다지 새로운 소잿거리가 아닌 권투를 타인과 소통하는 데 서투른 자들을 교감시키기 위한 모티브로 활용한다. 링에 대한 열정과 공감대가 서로의 빈 자리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는 때는 그들이 온 정성을 쏟았던 링에 오르지 않는 시점에 이르러서다. 따라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링에서 모든 것을 뿜어내는 <록키>류와 같은 출발선에 서지만 전혀 다른 지점을 지향하는 영화가 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궁극적으로 내딛는 곳, 서로에게 빈 자리를 내주었던 영혼들이 꿈꾸는 곳은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다. 불확실한 세계를 견디게 해 줄 버팀목으로서 가족의 의미와 역할을 꾸준하게 탐구해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번에는 유사 부녀 관계라는 내러티브를 활용, 그 고민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는 회한으로 가득한 눈빛을 지닌, 상처 입은 아버지 프랭키로 분한다. 프랭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가족과 단절되어 있다. 딸에게 꾸준히 쓰는 편지는 어김없이 반송되어 귀갓길에 쓸쓸함만 더할 뿐이다.


매기(힐러리 스웽크)의 가족들은 저열한 속물적 근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간관계에는 정작 인간에 대한 고려가 없다. 심지어 매기의 어머니는 상처 입은 혈육에게서조차 돈을 갈취할 궁리를 한다. 부재한 아버지를 향한 매기의 그리움은 가족과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현실을 잊기 위한 자기최면일 뿐이다.

가족구조의 해체, 단절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프랭키와 매기는 권투라는 열정을 통해, 그리고 서로의 빈 자리를 안타깝게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맺어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 고귀한 만남을 향한 예찬은 자연스레 진정한 가족의 정의, 사람 간 교감의 본질에 대한 해답으로 연결된다.

노감독은 인간을 연결시키는 첫 고리가 무엇이든간에 정신적 교감, 사람 자체를 읽으려는 노력이 관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때 인생의 동반자로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완성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삶이라는 치열한 무대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는 것이다.

후반부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절제의 미학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로 내닫는다. 영화는 울부짖어야 마땅한 곳에 멈춰선 채 감정을 터뜨리지 않는다. 아니,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다. 프랭키와 매기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상처 받아 쓰러진 영혼들은 간신히 발견했던 소중한 만남을 영원히 기억하려 한다. 추억을 새기려는 간절한 마음은 운명의 비정함을 탓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 ‘모쿠슈라’의 의미가 프랭키의 입에서 나직하게 새어나올 때, 매기가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지어보일 때, 그들의 연대는 드디어 깊은 울림에 도달한다. 절제되고 응축되었던 슬픈 감정이, 인간이 소통하면서 엮어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페이소스로 승화되는 기적적 순간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모든 것을 전달하는 데 아무런 수사도 쓰지 않는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이야기로 전달하는 법. 그는 정통 드라마의 묵직한 힘과 평범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만으로 갖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 슬픈 영혼들의 정신이 진정으로 소통하는 그곳으로 차분하게 달려간다. 물론 모건 프리먼의 삶을 관조할 줄 아는 내레이션과 힐러리 스웽크의 명연기에 그 공을 어느 정도 떼 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는 희미한 창문 너머로 프랭키를 비춘다. 그는 여전히 모호한 세상에 던져진 외롭고 쓸쓸한 노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꿈꿀 수 있다.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씁쓸하게,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퍼펙트 월드’를 꿈꾼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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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이 너무 뜸한 것 같아 해본 테스트. INTP형이란다. 아이디어 뱅크라나 뭐라나..
MBTI 테스트해보기


조용하고 과묵하며 논리와 분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좋아한다.
과묵하나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말을 잘하며 이해가 빠르고 높은 직관력으로 통찰하는 재능과 지적 호기심이 많다.
개인적인 인간관계나 친목회 혹은 잡담 등에 별로 관심이 없으며 매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객관적비평을 잘 한다.
지적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 즉 순수과학, 연구, 수학, 엔지니어링 분야나 추상적 개념을 다루는 경제, 철학, 심리학 분야의 학문을 좋아한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사교성이 결여되기 쉬운 경향이 있고, 때로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은근히 과시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거만하게 보일 수 있다.

일반적인 특성

행동하기 보다 책을 통해서 배운다. (책중독)
높은 직관력으로 통찰하는 재능과 지적관심이 많다.
조용하고 말이 없으나 자기의 관심 분야에서는 말을 많이 한다.
정서표현이 별로 없어 친해지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렵다.
기분이나 감정도 생각을 통해서 한다.
지나치게 지적이고 추상적이며 설명이 너무 이론적이다.
황당무게한 공상을 잘 한다.
비현실적이며 비약이 심하다.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생각은 창의적인데 실천이 부족하다.
조직이나 단계, 계통 등에 약하다.
충동적이다.
매뉴얼 보기 싫어한다.
정장을 싫어한다.
패션감각이 둔하다.
드라마, 한국영화 잘 안 본다.
뻔한 이야기나 서론이 긴 것 참기 어렵다.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은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꼭 필요한 것 아니면 잊어버린다. (건망증)
머릿속에 있다가 막판에 후다닥 일 처리를 한다.
한끼 떼우면 된다.
남들 좋아하는 연예인, 악세사리 등에 관심 없다.
추리소설 좋아한다.
잡담 모임 후에는 허무감을 느낀다.
친한 친구라도 일 없으면 연락 안 한다.
공상과 상상속에 있을 때가 많다.

개발해야할점

타인의 노력을 인정하는 태도 필요
팀으로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종이에 적어보고 정리해 보는 연습이 필요


딴 건 몰라도 사교성이 결여됐고, 황당무계한 공상을 잘하며, 한끼 떼우면 된다는 부분은 나와 심히 일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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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부시가 집권 2기를 맞아 '자유의 확산'을 부르짖는 연설을 했다. 물론 그것을 진심이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권력을 손에 쥐려는 자들, 또는 한번 잡은 힘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들, 그들의 입에 공통적으로 걸리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자유, 민주, 평등'이다.

이 얼마나 멋진 어휘들인가. 아마 근대화가 남긴 말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 정의된 의미가 아닌, 권력 있는 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추잡한 명분이 그 기의로 자리 잡을 때, 자유, 민주, 평등은 곧 폭력, 광기와 동일어가 된다. 가까운 근현대사가, 그리고 지금의 만행이 그것의 방증이다.

침략전쟁은 자유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둔갑했고, 대량학살로 희생된 넋들은 마땅히 죽었어야 할 테러리스트로 이름 지워질 뿐이다. 문명 전파의 밑거름이라 포장되었던 제국주의 광기는, 가해자는 게워낸 채 피해자의 고통과 악몽만을 그 흔적으로 남겨 놓았다. 권력의 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역사 안에 체현되는 중이다.

영화 <멘츄리안 켄디데이트>는 미국 권력층의 허황된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 대통령을 향한 야욕, 혹은 일그러진 집착은 자본과 은밀히 결탁, 위험요소를 조작하며 미국식 자유 실현이라는 명목 뒤로 숨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선전용 상품으로 개조되거나 유효기간 지난 소모품으로서 폐기처분된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광기와 폭력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 삼은 채 개인의 영달을 위한 음모를 차근차근 진행시킨다.

<멘츄리안 켄디데이트>는 상업적 고려 때문인지, 이라크전 등 최근 정책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제3국 피해자에 대한 반성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뱃속 채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척 개거품을 무는 꼴이 연일 비춰지는 TV에 비교하면, 이 정도 영화는 그나마 축복이 아닐까 싶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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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이 드러납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한 분들은 그냥 지나쳐 주세요~

멍청한 아카데미가 선택한 영화답지 않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판타지도, 진부한 감동 일대기도 아니다. 영화는 사실적인 꿈과 고민을 담고 있으며, 현상에 대해서도 솔직하다. 아니, 꽤나 비정하다. 감정은 절제되고 시선은 담담하게 흐른다. 그리고서는 울부짖어야 할 곳에 멈춰선 채 울지도, 아픔을 터뜨리지도 않는다.

극한의 고통은 감정을 표출할 기운마저 앗아가는 것. 감동 따위는 없다. 운명의 거대한 무게는 초라한 인간들에게 많은 시간을 허락할 만큼 관대하지 않다. 죽는 자와 남는 자 모두가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정말 슬프지만 슬픈 척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삶에 대한 작은 철학, 그리고 운명에 갇힌 인간들의 슬픈 소통을 아무런 수사 없이 스토리와 캐릭터만으로 오롯이 전달해낸다. 물론 깊은 울림과 차분함을 오가는 모건 프리먼의 내레이션과 힐러리 스웽크의 명연기에 그 공을 어느 정도 떼 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 erazerh

* 영화를 다 본 후, 불현듯 Pyramid Song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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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왕성에서 온 사람
해왕성에서 온 사람
타고난 영적 능력을 가진 당신은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당신은 음악, 시, 춤을 좋아하고 그 무엇보다 넓은 바다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정신은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당신의 가슴에서는 열정이 샘솟습니다.

당신은 친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을 때도 외로움을 느낄지 모릅니다.

한 가지 생각에 너무 깊이 잠기지만 않으면, 당신의 영성이 예리한 통찰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

우연히 RocknCloud님 블로그에서 발견한 것. 호기심에 나도 한번 해봤다. '타고난 영적 능력'이라.. "영적능력이 있다는 얘기 안들어보셨어요?"라며 '도' 혹은 '영문'을 설파하려던 그 사람들의 얘기가 거짓이 아니었단 말인가... ㅡo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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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라는 플롯은 솔직히 진부하다. 이 진부함에서 신선한 충격을 뽑아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비슷한 효과를 노린 다른 영화들이 '결승선으로 너무 급박하게 달려온 나머지 결승선에 다 와서 넘어지고 마는' 안타까움을 남겼다면 <숨바꼭질>은 그 반대의 지점에서 아쉬운 경우다. 결말이 적절히 수렴해야 할 여타의 상황을 영화는 애초에 만들어 놓지 않는다. 그래서 '낯선 곳, 낯선 외부인'이라는 곁다리 공식과의 연결 또한 허술하다. '찰리'가 누구인지 쯤은 대부분이 금새 알아맞춘다. '찰리'를 놓고 관객과 숨바꼭질하느라 머리 굴렸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헛수고했다. 물론 결말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있긴 하다. 하지만 추리를 멋지게 늘어놓고는 그 다음에 이리 저리 증거를 짜맞추는 꼴과 다를 바 없기에 그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기로 했다.

2. 로버트 드니로를 보면서 왜 자꾸 로빈 윌리암스가 떠오르는지... 보는 내내 거슬렸다.

3. 어렸을 때 주목받다가 정작 어른이 되고서는 영화와 거리가 멀어진 몇몇 배우들의 전철을 다코타 패닝만큼은 밟지 않았으면 한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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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페인 감독, 삶의 굴곡에서 따뜻함을 찾아내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 불리는 큰 길 위를 달려간다. 하지만 매끄럽게 닦이고 곧을 줄만 알았던 그 길에는 우리의 순탄한 행보를 방해하는 것들, 이를테면 슬픔, 좌절, 절망 등과 같은 삶의 무게들이 암초처럼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하며, 길 위에 놓여진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 때마다 우리는 내 손을 잡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줄 누군가를 찾거나 다시 한번 내달릴 수 있을 만한 어떤 원천, 즉 살아가는 의미를 건져 올리고자 절박하게 애쓴다.



두 중년의 여정 다룬 로드무비

<사이드웨이>는 인생의 중간 지점을 살짝 넘긴, 주름이 살짝 패인 두 남자의 짧은 여행을 다룬 영화다. 물론 이 로드무비 안에서 10대, 20대의 모험에서나 엿볼 수 있는 새로움에 대한 설렘과 두근거림을 찾기는 힘들다.

대신 영화는 결혼을 앞두고도 성욕을 강변하며 마지막 자유를 불사르고자 하는 능청스러움이나, 잠시 떠난 중에도 재혼한 전처와 일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모습 등, 지독히도 현실적인 단면들로 이들의 여정을 채운다.

와인 애호가 마일스(폴 지아마티)는 결혼을 앞둔 플레이보이 친구 잭(토마스 헤이든 처치)과 함께 와인 농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잭은 와인보다는 총각으로서의 마지막 해방감을 위해 길을 나섰고 마일스는 마음 한구석에 소설이 출판될지 안 될지에 대한 초조함을 담아두고 있다. 두 사람의 모험이 순탄하지 못할 것쯤은 애당초 예견되는 스토리다.

게다가 잭에게서 전처가 재혼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일스가 한층 더 신경질적으로 변함에 따라 조용히 출발했던 여정은 점점 더 불확실하게 흘러간다. 잭이 결혼 이야기는 숨긴 채 우연히 만나게 된 ‘화끈한 여자’ 스테파니(산드라 오)와 밤낮없이 몸을 사르는 동안에도 마일스는 책의 출판 문제와 전처에 대한 여운이 한데 뒤섞인 복잡한 심경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에게 약간의 관심을 비춘 마야(버지니아 매드슨)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앞으로 나갈만한 확신을 갖기가 두렵다. 게다가 잭이 이미 소설은 나오기로 결정됐다고 태연하게 거짓말해놓은 통에 그녀에게 솔직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그들의 와인 기행, 새로운 만남은 그렇게 무엇인가 조금씩 어긋나 있다.


그 중 공들였던 일에서는 허무하게도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인간관계에서는 하릴없는 상실감만 좇아야 하는 마일스의 불운은 특히나 우리 삶의 단면과 너무도 닮았다. “우리 나이에 돈 없으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마찬가지”라는 대사에 한숨 내쉴 수밖에 없는, 소박함에서 씁쓸함을 전달받는 우리들 말이다. 

삶의 큰 길에서 어떤 목표를 잃었을 때, 내 보잘것없음이 쓰라리게 다가올 때 마일스가 그랬듯, 우리는 다시 나를 길 위에 바로 세워줄 그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알렉산더 패인 감독은 이처럼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소 한가롭게도 쉬어갈 것을 제안한다.


황량한 뒤안길에서 한적한 샛길로

전작 <어바웃 슈미트>를 통해 인생의 황량한 뒤안길에서 씁쓸하게 웃음 짓던 감독은 <사이드웨이>에서는 한결 밝은 어조로 잠시 한적한 샛길로 가서 다시 돌아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해온다. 바빠서 어디 두었는지도 잊어버린 이정표는 잠시 놔두고서 말이다.

영화는 좌절하고 우울해야 마땅할 상황에서도 웃음만은 놓지 않는다. 웃음은 물 흐르듯 흘러가는 꾸밈없는 에피소드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온다. 그리고 이 같은 솔직한 전개들은 <사이드웨이>의 모든 플롯을 아우르는 화법, 즉 ‘당신 삶은 여전히 따뜻하다’를 말하는 시선 속으로 차분하게 편입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담긴, 인상주의 화폭을 보는 듯한 와인의 본고장 산타네즈 밸리의 전경은 영화가 그리는 여유로운 시선과 닮아 있기도 하다. 감독은 또한, 인생을 와인이 숙성되는 과정에 빗대면서 삶의 굴곡이 궁극적으로는 완결된 페이소스로 가기 위한 일종의 숙성 단계임을 은유한다.


“오랜 세월 동안 숙성을 거쳐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 생을 마감한다.”라는 마야의 와인에 대한 단상은 결국 길 위에 쓸쓸히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따뜻한 조언이자 그들의 고단한 영혼에 고결함을 불어넣는 예찬인 것이다.

영화 내내 샛길로 돌아왔건만 마일스는 다시 힘차게 달릴 어떤 계기도 찾지 못한다. 그 많은 소동을 피우고도 결혼에 골인하는 잭과 달리, 그는 좌절된 소설에 대한 꿈과 전처를 향한 부질없는 미련이 엉켜 여전히 씁쓸한 마음을 달래지 못한다.

<사이드웨이>는 그 지점에 이르러서야 고이 숨겨두었던 샛길의 선물을 살짝 공개한다. 마지막 장면, 마야의 집 문으로 다가가는 마일스의 손길은 우리에게 미묘하게 떨리는 설렘을 전달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야 마일스는 최고의 맛을 내기위한 발걸음을 비로소 내딛기 시작할 것이다. 희망의 작은 심장박동은 그렇게 잔잔하게 울린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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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임신이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제니, 주노>. 그 자극적 소재가 청소년 성윤리에 심히 혼란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걱정 아래, 상영 반대 서명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열다섯이 애를 낳든 열여섯이 섹스를 하든 그 소재 자체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바른 정서를 심히 훼손할 정도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것은 <클락웍 오렌지>가 영화의 검열원인이 되었던 폭력행위들을 유발시켰고, <내추럴 본 킬러>가 살인자를 만들었으며, <트레인스포팅>이 마약의 당위성을 역설한다고 생각하는, 지독히도 오만한 검열적 정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제니, 주노> 개봉 후 "우리도 영화보고 따라서 임신해봤다."라는 뇌까리는 무뇌아들이 등장한다면, 비난의 화살은 책임을 영화에 떠넘기고 보려는, 나약하고 무지한 정신상태를 지닌 사고(?) 당사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소재의 자극성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제니, 주노>가 ‘청소년 성, 임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하는 영화’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영화를 기꺼이 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똥인지 된장인지 안 찍어 봐도 대략 결론이 나오는 부류에 속하므로 직접 가서 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예상해 보건데, <제니, 주노>가 전면에 드러내고 고민하는 척!하는 아이들의 임신은 어디까지나 포장지에 머무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틀에 박힌 성윤리관 속에서 ‘우리 사랑도 인정해주세요.’라며 결국 순수한 사랑으로 아기를 지켜내는 척 하지만, 그 안에 아이들의 성을 놓고 관객과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을 틈은 없어 보인다.

진부한 트렌드, 예쁜 사랑 판타지는 청소년 임신, 출산, 혹은 낙태라는 쉽지 않은 고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결고리다. <제니, 주노>는 아이들의 성이라는 껍데기만 현실에서 빌어 왔을 뿐, 그 속에 산재한 ‘재미없는’ 고민덩어리는 쏙 빼버렸을 것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영화다.

물론 영화에 세상의 문제점과 부조리를 속속들이 나열하거나 대안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있을 법한, 지독히도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현상을 소재로 택한 이유가 단순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그 현상이 로맨틱 판타지의 동어반복을 위한 홍보용 가면으로 전락한다면, 그 영화는 당연히 XX일 수 밖에 없다. 영화가 산업이 될지언정 ‘사기’까지 치면 곤란하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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