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임신이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제니, 주노>. 그 자극적 소재가 청소년 성윤리에 심히 혼란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걱정 아래, 상영 반대 서명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열다섯이 애를 낳든 열여섯이 섹스를 하든 그 소재 자체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바른 정서를 심히 훼손할 정도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것은 <클락웍 오렌지>가 영화의 검열원인이 되었던 폭력행위들을 유발시켰고, <내추럴 본 킬러>가 살인자를 만들었으며, <트레인스포팅>이 마약의 당위성을 역설한다고 생각하는, 지독히도 오만한 검열적 정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제니, 주노> 개봉 후 "우리도 영화보고 따라서 임신해봤다."라는 뇌까리는 무뇌아들이 등장한다면, 비난의 화살은 책임을 영화에 떠넘기고 보려는, 나약하고 무지한 정신상태를 지닌 사고(?) 당사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소재의 자극성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제니, 주노>가 ‘청소년 성, 임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하는 영화’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영화를 기꺼이 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똥인지 된장인지 안 찍어 봐도 대략 결론이 나오는 부류에 속하므로 직접 가서 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예상해 보건데, <제니, 주노>가 전면에 드러내고 고민하는 척!하는 아이들의 임신은 어디까지나 포장지에 머무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틀에 박힌 성윤리관 속에서 ‘우리 사랑도 인정해주세요.’라며 결국 순수한 사랑으로 아기를 지켜내는 척 하지만, 그 안에 아이들의 성을 놓고 관객과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을 틈은 없어 보인다.

진부한 트렌드, 예쁜 사랑 판타지는 청소년 임신, 출산, 혹은 낙태라는 쉽지 않은 고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결고리다. <제니, 주노>는 아이들의 성이라는 껍데기만 현실에서 빌어 왔을 뿐, 그 속에 산재한 ‘재미없는’ 고민덩어리는 쏙 빼버렸을 것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영화다.

물론 영화에 세상의 문제점과 부조리를 속속들이 나열하거나 대안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있을 법한, 지독히도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현상을 소재로 택한 이유가 단순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그 현상이 로맨틱 판타지의 동어반복을 위한 홍보용 가면으로 전락한다면, 그 영화는 당연히 XX일 수 밖에 없다. 영화가 산업이 될지언정 ‘사기’까지 치면 곤란하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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