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젊은이가 어처구니 없이 생을 마감했다. 내 군대생활도 그런 광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저 녀석이 언제 나에게 총질을 해댈지 불안한, 혹은 저 녀석이 언제 나를 군화발로 짓이길지 몰라 불안했던 기억. 군대란 그런 곳이다. 이등병 때 군대의 한심한 시스템에 놀라면서 하루하루 인내의 시간을 보내다가, 병장이 되어서는 후임을 통솔할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치이는 곳.

나 역시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받는 부대에 있었다. '삽탄해서 저 녀석 그냥 쏴 버릴까?'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현 불가능을 전제로 한, 기껏해야 수 초를 벗어나지 않는 상상의 차원이자 자괴 섞인 한탄이었을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내게 남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미친 총질을 해댄 김일병을 두둔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무슨 핑계를 대든 8명의 생명을 짓밟고 그 가족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남긴 죄는 결코 씻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력 붕괴, 병사들 간 소통의 부재 등 군 전반에 자리잡은 시스템의 결함이 이 같은 참극의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 또한 어디까지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죄다 끌어 모아 놨으면 당연히 조직력 강화를 전제로 한,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의 소통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 군은 지금까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구타, 가혹행위 근절'이 쓰인 스티커나 몇 장 붙여놓고, '암기'라는 단어를 '숙지'로 바꿔 '뭔가 한 것처럼'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보고 잘 하라(어차피 중간에 끊길)'는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여기저기에 별을 쳐붙이고 방문, "군 생활 할 만한가?"라는 멍청한 질문을 한 후 "네, 그렇습니다."라는 뻔한 대답을 듣는다고, 거기에 만족해 휴가증 몇 장 뿌리고 인자한 미소 짓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제는 정말 병사들 간 커뮤니케이션의 활로를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에 대해 진심어린 고민들이 오가야 할 때다. 군당국은 더 이상 계급의 권위에만 취해있지 말고 그 권위에 합당한 사고방식과 책임도 갖추어야 한다. 선임은 선임대로, 후임은 후임대로 많은 고통을 안고 있다. 그들의 말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달라. '뭔가 한 것처럼 보이는' 죽은 변화는 제발 여기서 끝내자. 병사들 역시 보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겠지만. ⓒ erazerh

* 제 군생활이 온갖 부정적인 기억들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썼군요.ㅡㅡ;; 나름대로 재미있는 추억,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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