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간호조무사의 신생아 학대 사건으로 나라(특히 포털 나라)에 난리가 난 듯하다. 갓 태어나 면역력도 없고 뼈도 물렁물렁한 아이들을 주무른 것도 모자라 콧구멍에 볼펜도 꼽아 놨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사건을 벌인 간호사들은 형사 입건된다고 한다. 법이 알아서 잘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 뭐, 대한민국 헌법은 사회적 지위, 계급, 금전 능력 등을 별책부록으로 두고 있기는 하다만. 물론, 나는 그 간호사들을 추호도 옹호하고 싶지 않다. 예뻤든 어쨌든 내 아이 얼굴이 인간복숭아가 되고, 멍멍이 털이 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든지 말든지에는 관심 없어 보이는 사진이 그녀들의 철없는 만족을 위해 싸이에 전시되어 있다면, 나 역시 눈이 뒤집힐 테니까.

그런데... 그러한 상상 속 불안감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21세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에서 날아온 듯한 괴상한 언어들이다. 구체적으로 더듬어 보면 '간호사랑 간호조무사는 엄연히 틀려. 간호사는 비싼 등록금 내고 뼈 빠지게 고생하는데 간호조무사는 대학도 못 간 애들이 할 거 없어서 하는 거야. 그래서 무 식 해.' 따위가 되겠다. 사건의 원인이 그녀들이 대학도 못 간 무식한 간호조무사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쯤 되면 '간호조무사가 평균적으로 간호사보다 인성이 떨어진다.'를 주장하는 자칭 사회통계학 박사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래, 물론 대학 나오면 안 나온 사람보다 지식은 많을 수 있겠다. 하지만 간호조무사 집단 전체가 대학을 못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천한 우월감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지금 상황은, 도저히 이해불가능한 부분이다.(내가 볼 때는 오류 중의 오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도 몰라 수능 한 개 더 틀렸을 그들이 훨씬 더 무식해 보인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못 나온 게 부끄러운 일이 된 건가. 대학 갔다 왔다는 천박한 안도감에 휩싸여 인터넷에 똥이나 찌그리는 게 더 부끄러운 짓 아닌가?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대학을 못 나왔으니, 인간성도 모자랄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코미디성 발언이 개인의 돌발적 언어가 아닌, 꽤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는 여론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물들의 X짓거리를 시청하는 국민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니, 솔직히 믿기 어렵다.

화살은, 전문직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도 망각한 당사자들, 혹은 단지 걸리지 않았을 뿐인 운 좋은 의료직 종사자들(간호조무사든 간호사든 의사든)에게 분산되어 날아가야 할 것이다.(평소같으면 원츄, 붐업을 외쳤을 싸이코 월드들은 알아서 반성해야..) 학력은 학력일 뿐이다. 언제까지 가방끈의 길고 짧음 따위로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살 것인가. ※<혈의 누>는 결국, 조선의 이야기를 둘러쓴 2005년 5월 대한민국의 자화상인 셈인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성실한 간호조무사 및 간호사분들(‘간호사랑 간호조무사랑 구분도 못해욧?’은 열외)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결코 놓지 않기를 바란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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