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기고,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께서 얼마전 드러난 한일협정의 실체를 놓고 변명이라고 해댄 말이다. 물론 일부는 맞는 얘기다. 역사가는 어디까지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니까.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역사가에게만 그 짐을 맡긴 채 마음 편하게 노닐고 있을 틈이 없다.

어디 한번 둘러보자. 굴욕적인 슬픈 과거, 힘없는 자들이 고스란히 떠맡았던 恨의 울분이 담보되었던 한일야합. 그 중심에 있었던 JP는 "뭐 지나간 일가지고 그러나. 때가 되면 말할 것"이라며 여전히 벽에 똥칠하는 소리나 해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언제 얘기하겠다는 건지, 자신의 나이는 새기고 다니는지 궁금하다. 한쪽에서는 미친 손녀를 둔 가련한 前대통령 전대가리가 "29만원 밖에 없어요."라고 뇌까리며 유유자적 골프를 즐기고 있다. 그것도 그가 학살한 영혼들의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이 땅덩어리 위에서 말이다.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잘못된 점을 되짚어 보겠다는 의지는 경제 제일주의에 가로 막혀 그 활로를 상실하고 있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예전일 신경 쓸 여지가 어디 있느냐는 논리다. 첫 단추 잘못 낀 수준이 아닌, 아예 옷을 뒤집어 입은 채 출발했던 뒤틀린 역사가 현재진행 중인 셈이다. 옷 똑바로 입으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을 더러운 총과 펜으로 난도질해대던 무리들은 여전히 경제와 국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어 그 썩은 숨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서민의 고통을 헤아릴 만한 뇌가 들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국민의 분노가 편가르기 전략틀 안에서 요리조리 끼워 맞춰지는 도구로 전락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박정희의 망령은 아직도 광화문에 새겨져 웃음 짓고, 국가보안법은 반박할 가치도 없는 이분법의 잣대로 존재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비극의 주최자들이 반성은커녕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고 '역사는 역사가에게'라며 과오를 단순명쾌하게 비껴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 즈음되면 "적들의 심장에 피의 불벼락을 내리자"라는, 10년 동안 잊고 살았던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살게 된 게 누구 덕이냐?'라는 진부한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뼛속까지 가난뱅이로 살아온지라 그 혜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누군가의 피와 희생을 대가로 쌓아온 富라면 그 덕을 누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게다가 그 곪아 터진 환부를 꿰매느라 정신없는 지금이 아닌가.

우리는 근현대사가 남긴 숙제를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0년의 역사는 분명 역사책 속에서 밑줄 그어지고 끝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사실의 일부만이 교과서 속 계보학으로, 연대기표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 틈에 숨어있는 진실을 위해 가능한 한 다양한 시각으로, 다양한 면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과거를 더듬어야 한다. 시간을 되돌려 작아서 들리지 않았던, 또는 의도적으로 듣지 않았던 그 목소리, 순간들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지나쳐온 시간, 그리고 그 안에 갇혀버린 공간들이 영화, 연극, 문학, 역사학 등 보다 다양한 분야를 통해 재현되기를 바란다. 그것들이 한국 현대사를 고통스럽게 관통해온 영혼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한다.

옷을 바로 입고자하는 용기가 진실로 필요한 때다. 눈물은 나눠서 흘릴수록 덜 슬프다. ⓒ erazerh


반응형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월  (6) 2005.05.19
'신생아 학대 사건'에 관한 짧은 생각  (18) 2005.05.10
[내사랑 토람이] 진정한 가족드라마  (10) 2005.01.08
그냥  (6) 2004.12.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