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에 칼이 돋아난 사람이 있다. 피부에서 튀어나온 수십개의 칼은 조금씩 자란다. 칼날 또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날카로워진다. 그는 아무한테도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할 뿐, 그의 말에는 관심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행여나 칼날에 스치기라도 할까봐 모두들 슬금슬금 피한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칼의 반대쪽도 칼이었음을. 그리고 그의 몸 안쪽의 칼도 자라고 있었음을. 칼이 자랄 때 그의 고통 또한 자란다. 외로움은 뼈 속으로 소리 없이 침투한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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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최소한의 예의'란 것이 있다. 가족은 가족끼리, 친구는 친구끼리, 연인은 연인끼리,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끼리... 또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공공장소에서, 인터넷에서... 그 모든 관계들과 공간에는 각각의 경우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있기 마련이다(물론 불합리한 힘의 유지를 위해 규칙이 조작되거나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이는 두말하면 입아픈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을 거면, 개별적 욕망의 주체성을 말하지도, 차이를 강조하지도 말라. 소통은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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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젊은이가 어처구니 없이 생을 마감했다. 내 군대생활도 그런 광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저 녀석이 언제 나에게 총질을 해댈지 불안한, 혹은 저 녀석이 언제 나를 군화발로 짓이길지 몰라 불안했던 기억. 군대란 그런 곳이다. 이등병 때 군대의 한심한 시스템에 놀라면서 하루하루 인내의 시간을 보내다가, 병장이 되어서는 후임을 통솔할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치이는 곳.

나 역시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받는 부대에 있었다. '삽탄해서 저 녀석 그냥 쏴 버릴까?'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현 불가능을 전제로 한, 기껏해야 수 초를 벗어나지 않는 상상의 차원이자 자괴 섞인 한탄이었을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내게 남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미친 총질을 해댄 김일병을 두둔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무슨 핑계를 대든 8명의 생명을 짓밟고 그 가족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남긴 죄는 결코 씻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력 붕괴, 병사들 간 소통의 부재 등 군 전반에 자리잡은 시스템의 결함이 이 같은 참극의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 또한 어디까지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저기서 죄다 끌어 모아 놨으면 당연히 조직력 강화를 전제로 한,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의 소통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 군은 지금까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구타, 가혹행위 근절'이 쓰인 스티커나 몇 장 붙여놓고, '암기'라는 단어를 '숙지'로 바꿔 '뭔가 한 것처럼'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보고 잘 하라(어차피 중간에 끊길)'는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여기저기에 별을 쳐붙이고 방문, "군 생활 할 만한가?"라는 멍청한 질문을 한 후 "네, 그렇습니다."라는 뻔한 대답을 듣는다고, 거기에 만족해 휴가증 몇 장 뿌리고 인자한 미소 짓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제는 정말 병사들 간 커뮤니케이션의 활로를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에 대해 진심어린 고민들이 오가야 할 때다. 군당국은 더 이상 계급의 권위에만 취해있지 말고 그 권위에 합당한 사고방식과 책임도 갖추어야 한다. 선임은 선임대로, 후임은 후임대로 많은 고통을 안고 있다. 그들의 말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달라. '뭔가 한 것처럼 보이는' 죽은 변화는 제발 여기서 끝내자. 병사들 역시 보다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겠지만. ⓒ erazerh

* 제 군생활이 온갖 부정적인 기억들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썼군요.ㅡㅡ;; 나름대로 재미있는 추억,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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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버이날 가정의 달 5월에 어떤 선물 사야하나 지갑보고 고민하고 또 그래서 행복하다 싶을 때, 따뜻하다 해서 결코 오월 햇살 떳떳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네 살 되던 해 멀리 살았지만,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먼지 잔뜩 묻은, 아니, 여전히 피로서 먼지 쓸고, 눈물로 헹궈내 똑똑히 기억해야 하는 그 오월의 사진들 속에서, 진실의 흔적만 더듬고도 슬프고 분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다음번 망월동 갈 때에는 부끄러운 손 소주 한잔 올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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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간호조무사의 신생아 학대 사건으로 나라(특히 포털 나라)에 난리가 난 듯하다. 갓 태어나 면역력도 없고 뼈도 물렁물렁한 아이들을 주무른 것도 모자라 콧구멍에 볼펜도 꼽아 놨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사건을 벌인 간호사들은 형사 입건된다고 한다. 법이 알아서 잘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 뭐, 대한민국 헌법은 사회적 지위, 계급, 금전 능력 등을 별책부록으로 두고 있기는 하다만. 물론, 나는 그 간호사들을 추호도 옹호하고 싶지 않다. 예뻤든 어쨌든 내 아이 얼굴이 인간복숭아가 되고, 멍멍이 털이 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든지 말든지에는 관심 없어 보이는 사진이 그녀들의 철없는 만족을 위해 싸이에 전시되어 있다면, 나 역시 눈이 뒤집힐 테니까.

그런데... 그러한 상상 속 불안감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21세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에서 날아온 듯한 괴상한 언어들이다. 구체적으로 더듬어 보면 '간호사랑 간호조무사는 엄연히 틀려. 간호사는 비싼 등록금 내고 뼈 빠지게 고생하는데 간호조무사는 대학도 못 간 애들이 할 거 없어서 하는 거야. 그래서 무 식 해.' 따위가 되겠다. 사건의 원인이 그녀들이 대학도 못 간 무식한 간호조무사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쯤 되면 '간호조무사가 평균적으로 간호사보다 인성이 떨어진다.'를 주장하는 자칭 사회통계학 박사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래, 물론 대학 나오면 안 나온 사람보다 지식은 많을 수 있겠다. 하지만 간호조무사 집단 전체가 대학을 못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천한 우월감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지금 상황은, 도저히 이해불가능한 부분이다.(내가 볼 때는 오류 중의 오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도 몰라 수능 한 개 더 틀렸을 그들이 훨씬 더 무식해 보인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못 나온 게 부끄러운 일이 된 건가. 대학 갔다 왔다는 천박한 안도감에 휩싸여 인터넷에 똥이나 찌그리는 게 더 부끄러운 짓 아닌가?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대학을 못 나왔으니, 인간성도 모자랄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코미디성 발언이 개인의 돌발적 언어가 아닌, 꽤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는 여론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물들의 X짓거리를 시청하는 국민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니, 솔직히 믿기 어렵다.

화살은, 전문직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도 망각한 당사자들, 혹은 단지 걸리지 않았을 뿐인 운 좋은 의료직 종사자들(간호조무사든 간호사든 의사든)에게 분산되어 날아가야 할 것이다.(평소같으면 원츄, 붐업을 외쳤을 싸이코 월드들은 알아서 반성해야..) 학력은 학력일 뿐이다. 언제까지 가방끈의 길고 짧음 따위로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살 것인가. ※<혈의 누>는 결국, 조선의 이야기를 둘러쓴 2005년 5월 대한민국의 자화상인 셈인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성실한 간호조무사 및 간호사분들(‘간호사랑 간호조무사랑 구분도 못해욧?’은 열외)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결코 놓지 않기를 바란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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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가에게 맡기고,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께서 얼마전 드러난 한일협정의 실체를 놓고 변명이라고 해댄 말이다. 물론 일부는 맞는 얘기다. 역사가는 어디까지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니까.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역사가에게만 그 짐을 맡긴 채 마음 편하게 노닐고 있을 틈이 없다.

어디 한번 둘러보자. 굴욕적인 슬픈 과거, 힘없는 자들이 고스란히 떠맡았던 恨의 울분이 담보되었던 한일야합. 그 중심에 있었던 JP는 "뭐 지나간 일가지고 그러나. 때가 되면 말할 것"이라며 여전히 벽에 똥칠하는 소리나 해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언제 얘기하겠다는 건지, 자신의 나이는 새기고 다니는지 궁금하다. 한쪽에서는 미친 손녀를 둔 가련한 前대통령 전대가리가 "29만원 밖에 없어요."라고 뇌까리며 유유자적 골프를 즐기고 있다. 그것도 그가 학살한 영혼들의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이 땅덩어리 위에서 말이다. 피가 거꾸로 솟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잘못된 점을 되짚어 보겠다는 의지는 경제 제일주의에 가로 막혀 그 활로를 상실하고 있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예전일 신경 쓸 여지가 어디 있느냐는 논리다. 첫 단추 잘못 낀 수준이 아닌, 아예 옷을 뒤집어 입은 채 출발했던 뒤틀린 역사가 현재진행 중인 셈이다. 옷 똑바로 입으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을 더러운 총과 펜으로 난도질해대던 무리들은 여전히 경제와 국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어 그 썩은 숨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서민의 고통을 헤아릴 만한 뇌가 들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국민의 분노가 편가르기 전략틀 안에서 요리조리 끼워 맞춰지는 도구로 전락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박정희의 망령은 아직도 광화문에 새겨져 웃음 짓고, 국가보안법은 반박할 가치도 없는 이분법의 잣대로 존재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비극의 주최자들이 반성은커녕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고 '역사는 역사가에게'라며 과오를 단순명쾌하게 비껴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 즈음되면 "적들의 심장에 피의 불벼락을 내리자"라는, 10년 동안 잊고 살았던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살게 된 게 누구 덕이냐?'라는 진부한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뼛속까지 가난뱅이로 살아온지라 그 혜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누군가의 피와 희생을 대가로 쌓아온 富라면 그 덕을 누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게다가 그 곪아 터진 환부를 꿰매느라 정신없는 지금이 아닌가.

우리는 근현대사가 남긴 숙제를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0년의 역사는 분명 역사책 속에서 밑줄 그어지고 끝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사실의 일부만이 교과서 속 계보학으로, 연대기표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 틈에 숨어있는 진실을 위해 가능한 한 다양한 시각으로, 다양한 면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과거를 더듬어야 한다. 시간을 되돌려 작아서 들리지 않았던, 또는 의도적으로 듣지 않았던 그 목소리, 순간들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지나쳐온 시간, 그리고 그 안에 갇혀버린 공간들이 영화, 연극, 문학, 역사학 등 보다 다양한 분야를 통해 재현되기를 바란다. 그것들이 한국 현대사를 고통스럽게 관통해온 영혼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한다.

옷을 바로 입고자하는 용기가 진실로 필요한 때다. 눈물은 나눠서 흘릴수록 덜 슬프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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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난 TV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흑과 백으로만 구성된 답답한 공간과 평면TV보다도 더 평면스러운 인물들, 그리고 그 안에서 신물나도록 이어지는 동어반복의 잡설이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속좁음 때문에 정말 좋은 드라마를 못보고 지나친 적도 꽤나 있을 거라 짐작된다.


아무튼, 드라마적 감수성이라고는 애당초 잃어버리고 사는 나에게도 여전히 감정선이 남아있음을 깨우쳐준 드라마 한 편이 있으니, 바로 어제 방송된 특집극 <내사랑 토람이>가 그것이다. 눈물을 바가지로 쏟으면서도 잔잔히 웃을 수 있는, 슬픔이 복받치되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아!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페이소스의 압박이던가. 뭘 보고 이렇게 울어본 건 스무 살 때 <제8요일>을 본 이 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내사랑 토람이>는 한 시각장애인과 그 안내견에 관한 이야기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전숙연씨(하희라씨)가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고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안내견 토람이를 만나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가족 내, 외의 갈등과 더불어 섬세하게 그려진다. 갑작스러운 장애에 대한 고통, 주변의 곱지 못한 시선 등으로 다뤄지던 초중반의 이야기는 전숙연씨가 어느 정도 자립을 일궈낸 이 후부터 토람이의 애절한 죽음으로 다가간다.

그렇다. <내사랑 토람이>는 눈물짜내기의 전형적인 내러티브를 고스란히 답습한다. 언뜻 보면 매우 평범하다.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내사랑 토람이>는 그 잔잔함의 대중성을 무기삼아 '보편'이라는 법칙 밑에서 실종되고 있는, '차이'를 바라보고 소통하는 기본예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를 비롯해)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정상'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 논리에 따라 신체, 정신적 장애인은 '장애'라는 이름표를 붙잡은 채 차별받고 동정 받고, 혹은 무시 받으며 시스템에 속하지 못하는 '비정상'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 차이의 관계는 어느 순간 우열을 매기는 힘의 도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이는 비단 '장애'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이성'이라는 개념 속에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뜻은 점점 실종되어 간다. '이성'이 단지 '비이성' 위에 군림한 채 안도하고 자위하며 수직상승적 욕구를 발현하는 데만 힘쓰는 자들의 입에 걸릴 때 그것은 종종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성적 사고를 해야할 직책에 있는 작자들 대다수가 스스로 우월하다는 미친 착각에 빠져 진정한 이성을 상실해버리고 있다는 얘기는 두말하면 입아픈 이 땅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시 돌아와서, <내사랑 토람이>는 차이는 단지 불편함의 차이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그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같은 위치에서 눈높이를 맞출 때에 비로소 허물은 사라지고 소통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고 드라마는 정말 '애절하게' 호소한다. 가족이란 바로 그 소통이 최초로 이루어져야 하는 집단이다. 그 구성원이 장애를 가지든, 개가 되든 감정이 통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가족드라마, 영화란 정형화된 구성원의 시시콜콜한 지위찾기, 사랑쟁취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차이는 차이일 뿐이다. 이 드라마가 얼어붙은 이 땅 위에 인간에 대한(혹은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일깨울 수 있는 작은 출발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나부터 시작해야겠지만 말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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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라는 양분을 꾸역꾸역 쳐먹고 어느새 괴물이 되어버린 비옥한 영화풍토 속에서, 무더기로 떨어지는 맛깔스런 열매를 간식 삼아 주워 먹으며 대충 곁다리 걸치고 살것인가.

거대하게 뒤틀린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또는 원래 없을지도 모를) 태양을 마주하고자 밟히고 밟혀도 흙을 파먹을 지언정 생명의 줄은 놓지 않는 작은 벌레의 몸짓을 흉내낼 것인가.

현실은 자꾸 전자의 세계로 들어오라 유혹한다.
나는 뼈속까지 가난뱅이거든.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나같은 넘버쓰리에게는 이런 상념조차 '지랄떨고 자빠졌네.'라는 것.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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