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메스껍다. 자꾸 구역질이 나려 한다. 퇴근길의 그 많은 사람들과 뒤섞일 체력이 될 런지 모르겠다. 비단 오늘의 만행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수순이었다. 그보다는 대체 어떻게 하면 그 썩은 숨통들을 끊어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답이 잘 안 나온다. 개탄을 금할 길이 없어, 속이 메스껍다. 일단 한바탕 게워내야겠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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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라면 거의 미친놈마냥 좋아한 적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그랬다. 고1 때 '하여가'를 들었을 때부터 쭉 이었으니.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그의 음악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지경(?)까지 왔다. 아마도 7집 '7th Issue'부터였으리라. 내가 서태지라는 존재에 이토록 무감각해진 것은.

왜일까. 서태지가 변한 탓일까. 아니다. 그는 거기 그대로 있다.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래서 내 머리를 옥죄는 고착된 가치들을 내버리면 날것의 자유와 유희가 팔딱거리는 세계가 열릴 것도 같다. 적어도 그의 유토피아는 변함이 없다. 가사가 지나치게 관념적이라는 지적 또한 내게는 문제가 안 된다. 몇 십 배는 더한 Radiohead도 나는 아직 사랑해마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감정이 옛날에 비해 확 메말라 버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는 최근에도 Sigur Ros의 'Samskeyti'를 듣다 눈물을 흘렸고, <마더> O.S.T '춤'에 이르러서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내 정서는 아직 요동칠 줄 안다. 물론 사운드 자체보다 영화 생각이나 기타 상념이 떠올라 그랬지만, 서태지의 음악에는 이제 그런 이입조차 하기가 힘들다.

생각건대, 원인은 감정선 간 이질성이다. 내가 겪는 삶의 양태는 서태지의 선율과 가사 안에서는 더 이상 어떤 형식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그가 추구하는 경로로부터 떨어져 나와 별개의 길을 가고 있나 보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의 음악은, 결국 내 삶을 경유하지 않은 아름다움일 뿐이다. 이래서는 위로받을 수 없다. 적어도 서태지는 내게 그 정도 ‘급’이 아닌 한 지지가 어렵다. 어쨌거나 이제 서태지는 서태지, 나는 나.


잘 가, 대장.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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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과 담을 쌓은 자들은 살아야 하는 진짜 이유 따위를 고민하지 않는다. 남들 눈을 의식해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그 또한 사사로운 이익에 맞춰 그때그때 갱신하고는 한다. 썩은 목숨들은 그렇게 부지된다. 반면 진정성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치열한 고민 끝에 도달했을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 명분은, 따라서 자의건 타의건 일단 진정성이 절망 앞에 막히고 나면, 더불어 연쇄적으로 부서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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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했다. 삶을 추동해온 진정성이 거의 악마적인 오독들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 하는 꼴이었다. 이어지는 지독한 침묵들. 게다가, 게다가 내 새끼들마저 곤욕을 치르는데, 그 꼴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아비의 비통함이란, 오죽했겠는가. 그래서 이 죽음은 선택 이전의 차원, 요컨대 필연적인 결말로 보는 것이 차라리 맞다. 대한민국이라서 가능한, 진정성의 끝. 사실상 이 지옥도에 바치는 마지막 정치적 행보. 가슴이 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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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한번도 달아난 적이 없다. 단지 내가 여전히 우회하고 있을 뿐.

내 꿈, 녀석은 잘 있을까. 만나고 싶어.


(이미지 출처 - 무한동력 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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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그래도 행복은 했었다, 라고 소고(小考)할 수 있다면.

그래, 그 정도로도 충분히 아름답겠지.



엔딩신이 깔끔한 영화는, 늘 아까부터 멋졌거든.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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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초현실이 뒤범벅됐을 때의 어리둥절함. 데이빗 린치의 영화에서나 느낄 법한 그 혼미함을 놀랍게도 지금 여기 2008년 대한민국을 통해 느낀다면, 거짓말일까. 이 모든 해괴망측한 현상들이 결코 영화가 아니라는 데서 한번, 그리고 그것을 접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욕설을 뱉고 있는 내 입 때문에 또 한번 놀라는, 바야흐로 아주 '어메이징하게' 오싹한 겨울이다.


따지자면 이는 모두 우리의 착각에서 비롯됐다. 지난겨울을 휩쓸던 '무능한 정권보다는 차라리 부패한 정권이 낫다.'는 논리. 이 이상한 명제는 두 가지 착각을 불러왔다. 하나는 '부패'와 '무능' 사이에는 교집합이 없을 거라는, 그래서 '부패했어도 유능은 할 것'이라는 착각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의 입에 걸린 '유능'이 약자에 대한 고민을 어느 정도는 포함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전략적 단어인 '실용'이 애매함을 딛고 21세기 대한민국의 기치인 양 떠올랐을 때, 아마도 이 착각들의 절정은 그 때였을 것이다.


물론 이는 말이 착각일 뿐이지 사실상 우리의 '선택'에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성공이라는 지상과제를 향하는 중에 윤리 따위를 들여다볼 겨를은 없더라.'는 경험명제에 암묵적인 동의를 보낸 주체는 결국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이었다. 시스템의 부조리를 토로하는 누군가보다 토익공부 한 자 더하는 당신이 훨씬 더 현명하고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유의 광고카피가 증명했듯, 성공이 지향하는바 또한 명확했다.


富라는, 눈에 띄는 결과를 향한 이 뜨거운 관심들은 그 자체로 매우 충성스럽기는 했지만, 성공의 '주어'에 관한 질문은 최대한 삼갔다. '일단 나는' 성공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는 강박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려 드느니 차라리 그 꼭대기로 향하겠다는, 그것이 그나마 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만성적인 절망과 박탈감 따위 아랑곳 않을 수 있는 '부자'가, 그야말로 전지전능함의 표상이 된 것이다. 자본으로 서열을 매기는 시스템은 그렇게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차라리 폼 나게 편입하고픈 대상이 됐다. 바야흐로 '살아남은 놈이 곧 윤리적인 놈'인 세상의 도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수직적 사고로 가득 찬 야심만만한 CEO를 대한민국의 수뇌 자리에 들어앉혔다. 예상대로 그의 원칙은 확고했다. 그에게 '다름'과 '차이'는 '변명'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가난한데다 '좌파'이기까지 하다면, 안타깝지만 그것은 순전히 당신이 남들보다 덜 열심히 살았고 또 덜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죄스러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이 말 같지 않은 논리가 현행태로 횡행하는 곳이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모든 분야에 '경쟁력'을 갖다 붙이고 그 결과를 세로로 나열하고픈 천박한 소망이 제대로 작동 중인 셈이다.

MB는 이른바 '불도저'로 불린다. 불도저는 묵직하게 밀어붙여 눈에 띄는 성과물을 만들 줄 안다(물론 게 중에는 오직 쓰레기 생산에만 힘쏟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깔아뭉갰을 벌레나 잡초 등의 생명체들에, 불도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성급했다. 모두가, 아니 일단 나는 불도저에 탑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그 밑에 깔릴 벌레나 잡초는 아닐 줄 알았다. 아니면 그 존재 자체를 묵인했거나. 주지해야 할 한 가지 사실. 지금의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깔아뭉개지는 생명체의 수가 줄어드는 일은 결코 없을 것라는 점. 늘 그랬듯이 우리의 실수를 바로잡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물론, 4년 후에도 심판할 나라가 남아있다면.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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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고, 소설)

나는 의사의 아내가 영화 <엘 토포>의 엘 토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둘 다 일종의 '목동'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양떼를 이끌되 양떼와 자신을 구별 짓지 않는 그런 목동 말이다. 물론 이는 남들보다 단지 영민하다고 해서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늘 그렇듯이, 관계 맺음을 진보시키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진정한 리더는 너와 나의 '차이'에서 '우열'을 발견하는 법이 없다. 이것은 일종의 '용기'다. 너와 나, 또는 우리가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지점에 관한 해답은, 이 용기에서 비롯될 때만 진짜가 된다. '혜안'이라고 불리는 모든 답들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 erazerh


#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아직 보지 않았다. 여기저기 정보에 따르면 꽤 못 나온 것 같기는 하다. 물론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은 해야겠지. 어쨌거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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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옮기고 지난 4년 간 쓴 글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며 느낀 점은, 내가 더 회의적으로 변했음이 명백하다는 사실이다. 글들에 담긴 내 심경의 흐름을 볼 때 그렇다. 그러니까, 난 자본주의의 천박한 질서에 조금 더 많이 식겁하게 됐고, 인간이라는 종에서는 악마다움을 조금 더 많이 발견하게 됐다. 나아가 삶 자체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어떤 지리멸렬한 경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내 아이, 이 아이의 천진한 웃음만이, 지킬 가치가 있는 세상 유일의 것이라고 종종 믿어버리고는 한다.

누군가 말했었다. 넌 세상 살기가 쉽지 않겠구나.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바꿔보려 노력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겪은 못돼먹은 일들에, 안 그래도 삐딱한 내가 과잉 화학반응하지 않을 길은 없더라. 아닌 건 아니다. 문제는 그 대상이 너무 많아졌다는 점. 나름대로 비극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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