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보수당이 패배한 근본적인 원인. , .., 세 음절이면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을까?

 

타인에게 내가 이렇게까지 비쳐서는 안 되겠다라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정도는 갖춰야, 우리는 사람의 탈을 썼다고 해준다. 이게 없으면 범죄자 되는 거고.

 

미래어쩌고당 인물들이 딱 그 수준이다. 염치의 하한선이 부재하다. 늘 없어왔고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 아마 친일·반민주 짓만 골라 해대도 반공틀만 갖다 대면 보수와 정의와 선인 양 둔갑할 수 있다 보니, 그렇게 해처먹다 보니, 빳빳한 모가지와 추악한 심보, 보신(保身)지상주의가 DNA에 새겨진 게 아닐까 싶다만.

 

그리고 그 관성은 하다하다 자식 잃은 부모 면전에 시체장사’, ‘거지근성을 내뱉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지옥에서 심혈을 쏟아 제작한 핸드메이드라 해도 이보다 상스럽고 저열하고 악랄하게는 못 만들겠다 싶을 정도의 주둥아리들을, 그렇게 놀리니, 몰염치의 최극단을 연일 갱신해대니, 어찌 안 망하겠나. 아니, 아직 아니지. 진짜로 망해야지. 먼지 한 톨만큼의 존재감도 가져서는 안 된다. 니들은. 그래야 한다. erazerh

 

 

반응형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그콘서트, 향숙이  (0) 2020.05.29
나만의, 거룩한, 도덕-시스템  (0) 2020.05.17
촉법소년, 기울어진 인권의 운동장  (0) 2020.04.02
‘교화’라, 글쎄올시다  (0) 2020.03.23

그래픽=뉴스웨이 5픽뉴스 중 발췌

 

기사라서 노골적으로 표현할 순 없었지만, 온오프에서 내가 늘 말해왔듯 비가역적인 결과가 있고 여러 증거가 동시에 가리키는 고의의 가해자들에게는, 처형 말고는 해줄 게 단 하나도 남지 않는 게 마땅하다.

 

(촉법이고 나발이고) 나이나 각각의 처지, 스토리, 범죄예방효과 따위를 들이밀면 되레 피해자가 삭제돼 버리거든. 말 그대로 두 번 죽는 거.

 

물론 영원히 달래지지는 않겠지만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법이 제발 좀 해주자. 그만 좀 처놀고. 사후세계에서의 심판이나 초월적 존재에의 의지 따위에 맡겨놓을 순 없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은, 세계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 erazerh

 

반응형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만의, 거룩한, 도덕-시스템  (0) 2020.05.17
자칭 보수당이 쪼그라든 진짜 이유  (0) 2020.04.18
‘교화’라, 글쎄올시다  (0) 2020.03.23
시간, 신  (0) 2020.03.14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논쟁 중 하나가 교화 가능’ vs ‘교화 불가능이 아닌가 싶다. 될지 안 될지를 따질 이유 자체가 없으니까. 대부분의 경우, 그저 고이 접어 휴지통에 넣어두면 좋을 개념이므로.

 

교화(敎化)라는 건 가해자의 마음 안에 죄책감이라는 짐 덩어리를 후~ 불어넣어주고, 그걸 조금씩 깎아 없앨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거다. 안 되지. 안 되고말고. 그런 X같은 사치는 듣도 보도 못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 A(가해자)가 B(피해자, 지옥)라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A2(가해자-교화)가 실현될 때 B2, 즉 ‘피해자의 원래 상태로의 복귀’가 가능합니까?

답은, 아니오.

 

, 그러니까 그들, 비가역적인 결과를 낳았으며 여러 증거가 동시에 가리키는 가해자들한테는, 삭제, 즉 처형 말고는 해줄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한다. 범죄예방효과가 있고 없고는 학교 리포트 쓸 때나 끼적이자. 피해자 측에는 그런 걸 들이밀어선 안 된다.

 

우주의 무한한 개체들, 점들, 먼지 한 톨 하나하나가 소중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다른 개체의 존엄에 상처를 낸 그것들이다. 중세가 정신 나갔다고, 근현대사가 미쳤었다고, 그 풍선효과로 또 다른 헛짓거리를 지속할 필요는 없지 않나?

 

교화? 누굴 위해교화시킨 자의 누적 선행 포인트? 됐고, 제발 부탁인데, 이제라도 그런 찌꺼기 개념은 개나 줘버리자. 반성 같은 건, 엔딩을 돌이킬 수 있을 때나 하는 거다. erazerh

 

 

반응형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칭 보수당이 쪼그라든 진짜 이유  (0) 2020.04.18
촉법소년, 기울어진 인권의 운동장  (0) 2020.04.02
시간, 신  (0) 2020.03.14
왜 또 남 탓만 하고 자빠졌는지?  (0) 2019.11.26

종교를 가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느낌적으로 신()이랑 비슷한 뭔가를 고르자면, ‘시간(time)’만 한 게 또 있을까 싶다. 오직 시간만이 저 많은 별과 개체들, 이 무한한 점들 하나하나를 관장하고 또 공평하게 대할 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종() 간에 서열 따위를 매기지 않으며,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TXT로 만들어 공유해주기를, 떠받들어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충성은 필요 없는, 오직 입장과 퇴장만 허락되는 영역. 일단 스타트, 하면 쉬거나 미끄러질 수 없으며 오직 엔딩으로 달려대는데, 저마다 사연으로 가득할 우리들 각각의 구간은 시간 전체로 놓고 보면 명멸하는 점조차 되지 않을 거다. 보잘 것 없는, 유니크함.

 

이러니 아끼지 않을 수 도리가 없다. ? 내 구간 자체를. 그러면, 중요한 건 도달해야 할 어떤 지점이 아니라 이제 막 흘러가고 있는 지금 이곳이 된다. 물론 붙들 수 없으니 잠자코 흐름을 느껴본다. 촉감도 상상해보면 좋겠다. 시간의 공기, . Hail. erazerh

 

 

반응형

악플이 문제인 건 잘 알겠는데, 그런데 말야, 어째서 악플의 장(場)을 만드는 데 독이 올랐던 기레기 너희들은 왜 또 남 탓만 하고 자빠졌는지?

무엇보다 ‘한류’ 하나 내건 채 (남의) 간이고 쓸개고 다 갈아버리는,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긍정적인 면이라곤 초미세먼지만큼도 떠오르지 않는 그 저열한 메커니즘 안에 애들 구겨 넣고 쭉쭉 뽑아내는 데 미쳐있던 ‘기획사’ 님들은, 뭐 오늘도 다음 희생자를 뽑는 중일 거다. 아무렴. ⓒ erazerh

 

반응형

Sigur Ros(시규어 로스)를 처음 들은 건 2000년대 중반. 이글루스에 블로그란 걸 만든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이웃분의 추천으로 접하게 됐다.


달랐다. 우울하지만 가라앉지 않았고, 밝다가도 접근하면 달아나버리는 느낌. 닿을 수 없고, 닿고 싶지 않은 장소. “신의 흘리는 금빛 눈물”이란 수식어는 너무도 적절해서 향후 감상 시 어떤 ‘틀’처럼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2016. 11. 22. 시규어 로스를 직접 마주했다. 마침내 현실의 초현실화. 트랙별 각기 다른 우주 체험.


일단 ovedur의 찌릿한 사운드로 시작, sæglópur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기존에 들었던 그 노래가 아니더라. 웅장한 박력에 머리와 몸이 진동, 어질어질. ny battery와 kveikur도 시규어 로스 고유의 몽환적인 질주가 날것 그대로, 광활하게 펼쳐졌다.


마지막은 역시 popplagid. 3집 ‘(  )’에서 앞선 트랙들이 선사한 우주를 모조리 꿰어 또 다른 차원으로 치닫는 듯했던, 이를테면 ‘우주적 오르가즘’으로서 나의 페이보릿 사운드. 편곡 때문에 초반 장엄한 맛은 덜 났지만 후반부 질주는 역시나 황홀했다. 멈추지 않길 바랄 만큼.


단, (혹시나 했던) samskeyti가 (역시나) 셋리스트에 없었다는 점은 꽤나 아쉬웠다. ⓒ erazerh


 



+ 멤버 중 오리의 실수가 잦았다. 그렇다고 한다.

+ 욘시의 컨디션이 별로였다는 의견도 있는데, 한 두 곡에서 살짝 갈라졌을 뿐. 특유의 돌고래 가성은 라이브로 들으니 기가 막히더라.
+ 거대한 커튼, 그림자. 기대했는데 커튼 없었다. 그냥 슬그머니 나왔다. 그래도 짝짝짝.
+ 앵콜 따윈 개나 줘버리는 거다.


+ sæglópur 중후반부.



반응형

7월 27일, 반차조차 내지 못한 채 6시까지 풀 근무. 회사 근처로 온 와이프와 함께 곧바로 지산으로 고. 운전하면서 햄버거와 포테이토 드시고, 마침내 지산포레스트리조트 길로 접어드는 순간, 아아 이렇게 많은 차들이란! ‘걷는 게 더 빠르겠다.’가 아니라 실제로 걷는 게 더 빨랐다.


얼마 되지 않는 길을 1시간 넘게 질질 끌다 모 포장마차에 주차하고 티켓을 받는데,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원래는 ‘김창완 밴드→라디오헤드’로 관람할 예정이었지만, 전인권 목소리를 그냥 지나칠 순 없더라. 곧바로 들국화 스테이지로 달려가 영접. <매일 그대와>, <사노라면> 등이 이어졌고, “죽지 마요”였나? 어느 관객의 외침에 전인권은 “고마워.”로 화답하기도 했다.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소절에서 눈물을 훔치는 와이프. 하지만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그녀의 손을 잡고 메인 스테이지로 달리지는 못하고, 그냥 사람들 틈에 끼여서 자동 이동. 마침내 라디오헤드 영접. 중간 구석에 자리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같은 공간, 내 생전 이런 순간이 오는 구나 싶더라.

 

첫 곡은 <Lotus Flower>. 접신을 하는 듯한 톰의 오징어춤 발동. 슬슬 미쳐볼까. <15 Step>, <Arpeggi> 등 최근 곡들이 이어졌는데, 라이브로 들으니 사운드의 풍부한 질감이 느껴지는 게, 앨범 들을 때보다 훨씬 좋았다(이때부터 크립은 언제 부르냐고 징징대는 님들 발생). <I Might Be Wrong>, <There There>, <Krama Police> 등 사람들 좀 아는 노래가 등장하고 분위기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를 무렵, 아! 익숙한 댄스 비트와 우울한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Idioteque>!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 오징어춤을 추고 있더라(이 곡 끝날 무렵 톰은 상의 탈의. 톰도 덥긴 더웠나보다).


 


여기서 공연 끝나나 싶었는데 이후에도 등장과 퇴장을 되풀이하며 무려 8곡을 더 불렀다. 세계 최고의 실력, 매너. 확실히 다르긴 했음. 앵콜 파트에서는 학교 다닐 때 現 와이프 출연시켜 뮤직비디오도 찍었던(ㅋㅋㅋ) 그 노래 <Exit Music>도 불렀는데 와이프가 참 좋아라했다(그녀가 <No Surprises> 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든 라디오헤드 노래). 그 다음 곡은 오오 <Talk Show Host>! 톰이 띵~띵~ 띠디디디~딩~ 하고 기타를 치자 다리가 풀릴 지경. 마이 페이보릿 트랙 중 하나요, 라이브가 극강인 노래로 유명하기에 감동은 더했다. “I’ll be waiting. with a gun and a pack of sandwiches.” 부분에서는 거짓말 안 하고 온몸이 흘러내리는 게, 기절할 뻔했다.

 

이어 <Reckoner>의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그 찬란한 사운드를 온몸으로 느끼며 ‘아!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라고 감격할 즈음, 마침내 마지막 곡이 흘렀다. 1997년, 그토록 힘들어 하던 나를 사실상 유일하게 위로해준 그것, 그 앨범, 그 노래, 바로 <Paranoid Android>. 그때의 설움과 지금의 신명남이 묘하게 교차, 나를 단련시켜준 기억들이, 참 잘도 버틴 내가, 자랑스럽다는 기분마저 들더라.


 

 



[주요 감상 포인트]

 

1. 무대장치: 기존의 직사각형 구조물에 중앙 및 좌우 멀티비전이 추가된 형태. 그 자체로 화려한 조명이 됨은 물론, 이미지 배치, 빛깔, 그것들의 움직임을 통해 사운드와 ‘한 몸이 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뷰티풀.

 

2. 무엇보다 놀란 건 톰 요크의 체력. 이 분 원래 꿈이 댄서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격렬한 춤을 주구장창 추는데, 당최 지치질 않음. 그렇다고 노래와 연주를 등한시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체력, 열정. 그냥 음악에 미친 골방 아저씨가 아닌, 체계적인 몸 관리도 꾸준히 해온 꽤 이성적인 남자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3. 평소 들을 때 이 소리는 대체 무슨 소린가 싶은 출처 불분명의 사운드를 라이브에서 그대로 재현해내더라. 이 느낌은 글로 표현하기 힘든데, 아무튼 경이로웠다.

 

4. 라이브 동영상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라디오헤드도 공연에서만큼은 본연의 우울함을 가급적 배제하지 않나 싶다. 말하자면 지구 바깥에 그들과 관객만의 공간을 생성, 거기서 우울한 기운을 어떤 창조적인 에너지로 변환하는 느낌이랄까. 이를테면 들뢰즈의 ‘거짓의 역량’ 같은. 무엇이든 간에, 치유의 경지. ⓒ erazerh

 

<Talk Show Host> 영상. 용량 확보 후 충전까지 마친 카메라를 차에 놓고 오는 바람에

저질 스마트폰으로 찍게 된 동영상(나란 새끼..ㅜ.ㅜ). 그냥 소리와 분위기만 살짝 느끼시길.


 

* <No Surprises>, <A Wolf At The Door>, <Codex> 등을 못 들어 아주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건 다음 공연에 듣기로. 참, 크립 불러달라고 징징댔던 님들은 영화 <씨클로>를 보세요. 그 편이 훨씬 감동적임.

 

* CJ E&M의 행사 진행 솜씨는 세계 최악 수준. 라디오헤드, 들국화 등이 사람들 마음을 달래놓지 않았으면 단체 소송이라도 들어갔을 것임. 차가 1시간 반 동안 꼼짝도 않고 서있는 게 말이 되냐? 어?

 

* 트위터에 썼던 라디오헤드 관련 글이 모 기사에 나왔는데 출처로 거론된 이름은 내 이름이 아니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역시나 글만 몰래 가져다쓰고 이름은 창작한 것이었음. 글은 말도 없이 업어가고 출처는 지어내고(그것도 실명인 척). 연예기자로 먹고 살기, 간단해서 좋겠네. 참 좋겠어.

 

 

반응형


미쓰다 신조의 신작! 역시나 나쁘지 않았던 전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뛰어넘는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이 사건 전개 내내 풍겨온 매혹적인 기이함을 후반부에 다소 밋밋하게 풀어버리는 데 반해, <산마처럼 비웃는 것>은 오직 그 '사위스러운' 궤도 위에서만 말 그대로 미스터리 곡예를 펼친다. 그만큼 더 정교해졌다는 말. 그러다보니 거듭되는 반전 카드들 또한 보다 말끔하다. 요컨대 전작의 반전이 액자구조를 종단, 역동적이기는 하되 어떤 과잉된 부연의 느낌을 줬다면, <산마처럼 비웃는 것>에서의 반전은 추리에 추리가 꼬리를 무는 구조를 띰으로써 소설 전체의 완결성에 기여한다고 할까.


미쓰다 신조는 전작에 이어 다시 한 번 전근대와 근대, 또는 구습과 합리 사이에 사건을 끼워 넣는다(확실히 요코미조 세이시를 잇고 있다). 하 수상한 시절, 여기에는 공포적인 이질감이 있다. 욕망은 그 이질감을 거치면서 뒤틀리고 변형된다. 또한 이 욕망을 위장막 삼아 꼭꼭 숨어버린 범인,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미스터리의 발발과 기괴한 전개는 거의 이곳의 필연처럼 보인다.

해결사 도조 겐야는 중간자다. 전근대와 근대 모두에 발을 뻗고는 있지만 어느 한쪽에도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고, 관찰하고 깨닫는 것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규정할 수 없는 세계, 하나의 정의로 환원되지 않는 시대를 견디는 데 최적화한 자세일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일본적인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미스터리를 마주하는 소설의 태도는 충분히 탈-지역적이며, 동시에 통시성을 갖는다. ⓒ erazerh


반응형

+ Recent posts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