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나저러나, 난 하나의 부품이다. 언제는 하나쯤 없어져도 괜찮을 녀석이다가, 또 언제는 챙겨야 할(그런 척해야 할) 것이 되기도 하는, 그런 류의 부품. 정말 짜증나는 건, 그 변덕의 발동에는 초등생도 분노에 떨게 할 조야한 거짓말이 어김없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웃어줄까 울어줄까. 순 껍데기들 같으니.

새해 첫 포스팅부터 냉소 모드. 그래도 웃자. 내겐,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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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씁쓸하고 우울한 건 사실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 이제 더 이상 믿지 않으련다. '승자독식'을 국가적 슬로건으로 당당히 내걸게 된 시대. 나는, 무엇이 되어갈까.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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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유무가 나누어 놓은 구획. 이 구분법에 따르자면, 나는 꽤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일 것이다. 솔직히 두렵다. 이곳을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구분의 존재 자체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렵다. 물론 나 혼자라면 겁 따위 내지 않을 테다. 하지만 다음 세대, 즉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내 아이에게 이 구분법이 확장 적용되리라 생각해볼 때면, 정말이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사는 수준'과 관련된 차별을 아이가 겪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쉽사리 용인되는 풍토에서라면, 나는 도대체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나아가 '가난한 사람은 그만큼 노력을 덜 했기 때문' 등의 무한경쟁을 추동하는 명제들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내 아이만이라도 건져낼 수 있을까, 같은, 소심하고 이기적인 걱정들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오히려 이 악물고 자본의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는, 더 빨리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남의 머리를 밟게 될지도 모를, 미래의 '나'이다. 그러니까 온갖 치장을 한 채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저 껍데기들과 조금씩 닮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썩은 게 더 이상 썩은 게 아닌 시대, 바야흐로 나와 내 아이가 가야할 길을 보다 치열하게 다잡아 놓아야할 때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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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 사람의 손길이 비교적 덜 닿은 지구 곳곳을 지역적/환경적 특성에 따라 나누고 하나씩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자연 다큐멘터리다. BBC를 중심으로 디스커버리 채널과 NHK 등이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나에게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되어주기도 한다(방영 KBS1).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앵글과 전개로써 대자연의 무한한 풍경을 가능한 한 폭넓게 담아내려 한다는 점이다. <살아있는 지구>의 카메라는, 말하자면 이미지와 소리를 기록하는 기계이자, 다양한 표정을 지닌 세심한 관찰자인 셈이다. 우주적 부감숏으로 지구 표면에 관한 아름답고 경이로운 스펙터클을 선사하다가는, 어느새 곤충 한 마리의 움직임을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쫓아 하나의 서사를 추려내는 식이다. 서사의 주인공들 또한 코끼리 가족에서부터 포자식물에 이르기까지 너르게 분포되어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시선은, 자연에는 따뜻함에서부터 냉혹함까지를, 생명체에는 헌신적 마음에서부터 이기심까지를 불어넣으며, 지구의 모든 것이 감정을 지닌 주체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덕에 보는 이의 감상 또한 다양하게 오르내릴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풍부한 광경의 전시에 더불어 다각도로 열린 감정이입의 틈이 있기에, <살아있는 지구>의 생명력들은 입체적인 형태로 부풀어질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은 탄생하고 또 소멸한다. 그 사이로는 각 주체끼리의 무수한 상호작용이 쉴 세 없이 오간다. 모래 한 알, 바람 한 줌도 저마다 소중한 사연을 지니고 있을 터. 지구는 그 수많은 사연을 새기는 거대한 몸체인 동시에, 그 자체로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한 역동적인 생명이 된다. <살아있는 지구>는 그 사실을 일러주는, 매우 명쾌한 생태학적 스펙터클이다. ⓒ erazerh






(출처 - KBS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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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디어가 바라보는 장애인의 종류는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육체적 정신적 역경을 이겨낸 인간승리자로서의 장애인이고, 다른 하나는 타락한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서의 장애인이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정상인'을 감화시켜야 할 어떠한 의무도 없다. 의미를 부여하거나 건지려는 시도 따위 제발 집어치우고, 집밖으로 힘들게 나온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보지나 말라.

그게 최선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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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기생수>가 하드고어스럽게 밝혔듯이, 물리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가장 괴물에 가까운 지구 생명체는 바로 사람이다. 세상을 갉아먹고 망치는 데 여념이 없는 괴물-사람.

하지만 매우 놀랍게도 어떤 사람들은 망쳐지는 세상에 던져졌음에도, 거기서 삶의 미덕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존중하고 지키며 살아간다. 그 아름다운 치열함. 그래서 나는 <가족의 탄생>의 그녀들이 보여준 헤픔의 미학을, 록키 발보아가 지닌 묵직하고도 정직한 에너지를, 누군가의 귓가에 '모쿠슈라'라고 말할 수 있는 역량을, 오로지 영화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돈과 욕망에 영혼을 내맡긴 군상들을 비추던 영화 <세기말>이, 마지막에 이르러 한영애의 <말도 안돼>를 들려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세상... ⓒ erazerh



'그래도 희망은 너와 내가 손잡은 사람에게 걸 수밖에'


과연,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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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가 아닌 and.

혹은

and가 아닌 end.



the horror, the ho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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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돼지가 도심에 나타났다가 죽임을 당했다. 고양이들은 도둑질을 했는지 어쨌는지 몸 여기저기에 못이 박혔다. 인간이 아닌 것들의 생명은 하찮고도 하찮다.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손가락 하나로 지나가는 개미를 눌러 죽일 수 있는 인간들. 그 위대함이란!

아.. 정말이지 인간이라 행복해요.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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