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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류'만 사라지면 차별과 멸시 대신 소통과 공존이 들어 찬 위아더월드가 열릴까? 정말? 납작한 데다 일방향적인, 틀에 박힌 진보 지향형 유니버스. 호든 불호든 뭘 말하든 그 범주를 넘지 못한다. 세계의 입자를 포획하는 수준의 봉준호 영화를 본 지 이미 15년도 더 된 듯하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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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에서 미키와 카이가 방에 함께 있을 때 흘러나온 엘리엇 스미스의 'Twilight'. 영화 보다가 화들짝. 많이 좋아했던 노래라서.

 

암흑, 스크린, 음악.

 

영화 자체보다 더 기억에 남을 어떤 순간.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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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안면이 있는 인물은 좀비화될 때 약간의 신파 타임을 허락받고는 하는데, 대개 오래지 않아 처형되며 수많은 좀비 단말마의 역사 안에 신속하게 편입된다.

 

영화 <언데드 다루는 법>은 이 신파 구간을 붙들고 길게 늘어뜨린다. '울컥' '뭉클' 유의 뜨거움은 없으며, '살아있는 시체 가족'과의 기쁜지 슬픈지 모를 재회와, 가구별로 주어진 단념의 단계들이 그 구간을 채운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욘 A. 린드크비스트가 썼는데, 아시다시피 그는 호러-로맨스 걸작 <렛 미 인>의 원작자이기도. 그러고 보면 <언데드 다루는 법>은 타자화되기 이전의 괴물을 데려와 '전시' 대신 우리와 유사했던 것으로서 그 존재를 '눈높이에 둔다'는 점에서 <렛 미 잇>과 닮았다.

 

이 존재성은 좀비화가 주는 진짜 참혹함, 즉 시간의 불가역성을 아프게 감지케 한다. 영화의 리듬은 느리고 머뭇대다 빙글빙글 돌기까지 하는데, 그만큼 '헤어질 결심'이 발 딛기 힘겨운 도달점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내 우주의 전부였던 사람을 잃었는데, 나아갈 이유가 있겠냐는. 그러니까 '이쯤에서 함께 멈춰버릴까?' 최종 숏의 머뭇거림에서 이 서글프고 스산한 고민이 묻어 나온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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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의 이면이든 현상의 뒤편이든 세계의 모든 표면 너머는, 아래에는, 뭔가가 있다. 규정할 수 없고, 앞뒤 좌우 없이 아무렇게나 붙었으며, 불온하고, 은밀하게, 세상을 이리저리 디자인하는 무엇. 기호화할 수 없지만 태초에 모든 기호의 바깥에 있었던 무엇.

 

이처럼 세계의 층위가 관찰자의 주관에 따라 무한히 분화될 수 있음을,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내게 가장 직관적으로 알려준 사람, 데이빗 린치(1946~2025). '환상'을 가장 잘 다룬 영화 마법사, 편히 영면하시길. ⓒ erazerh

 

 

"영화관에 들어가 불빛이 꺼지는 순간은 마술적인 느낌이 든다. 순간 사방이 조용해지고 커튼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마 커튼은 붉은색이리라. 그러면 당신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그가 비로소 커튼을 열고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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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데블스 배스>

2<서브스턴스>

대략 공동 3<언데드 다루는 법> <에이리언: 로물루스> <롱레그스>

 

이 중 1<데블스 배스>는 공포 장르를 넘어 개인적으로 올해의 영화 1위기도 하다. 늘 꼴 보기 싫었던 마법의 단어 '구원'을 발가벗겨버리는 참 아름다운 작품. 최종 시퀀스의 그로테스크는 <서브스턴스>를 재롱잔치로 보이게 할 정도로, 기괴함을 아트의 경지로 기어이 끌어올리고 있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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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서 파멸을 추출하는 데 재미 들린 다단계적 악의에 관한 영화. 새롭거나 정교하진 못해도, 불우하게 뒤틀린 정반대의 스위트홈들을 특유의 텁텁한 질감으로 성실히 감싸는 데는 성공.

마무리 솜씨도 썩 좋진 않았지만 카메라의 감정이나 전반적인 만듦새가 <더 위치>, <곡성>, <유전>, <랑종> 등 선악 대칭 없이 특정 힘에 압도되는, '비대칭 호러'의 계보를 잇는 데는 무리가 없어서 개인적으론 만족. ⓒ erazerh


(스포) 십자가를 목에 걸고 피를 뒤집어쓴 채 세상 성스러운 표정으로 "헤일, 사탄"을 외치는 숏은 '종교'의 바닥을 파 내려가 그 본질을 보고 그림으로 옮겨낸 듯, 정직하고 아름답다. 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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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가장 이율배반적인 속편.

 

우리에게 친숙한 '테러리스트 빌런' 조커의 탈을 결국 벗어버린, 연쇄 살인자이자 학대 피해자이자 (도달 불가능한) 스위트 홈을 꿈꿔본 미치광이 로맨티스트 아서 플렉. 찰나적 조커였던 그 남자의 처절한 고독에 부치는 쇼, 같은 영화.

 

그러니까, 이 조커는 그 조커가 아니었고, 대중은 광기 분출의 핑계로 삼을 또 다른 '입찢남'을 맞이할 것.  ⓒ erazerh

 

 

* 뮤지컬이어야 하는 당위성을 못 찾겠고, 아서를 포함한 인물들의 주파수가 너무 지지직거려 영화가 전작만큼 피부에 들러붙진 않는다.

 

 

<조커 1편 정신분석학적 비평>

 

[조커]에서 감지되는 위험성의 진짜 정체

🎬 『호불호의 사유』는 영화가 좋거나 싫은 사유(事由)를 비평적 사유(思惟)로써 전개합니다. :) 우선 # 몸, 춤 1. 영화 <조커>(2019)의 플롯은, 아서 플렉 입장에서는 '내 주파수'를 찾아가는 여정

contents.premi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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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라스 폰 트리에의 <백치들>(1998)을 다시 봤는데, 전보다 뭐랄까. 슬펐다. 예전 감상 때 느낀 너무 팔딱거려 감독의 통제 범위마저 넘어버린 듯한(혹은 그렇게 보이려는) 전복적 에너지보다, 그 변칙을 부여잡고 결국 바닥을 뚫고 내려간, 카렌의 붕괴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분명 비윤리적이지만 더는 윤리 따위 통용되지 않게 된 세계, 카렌의 퇴행은 탈주든 회피든 뭐라 불리든 유니크하다. 그녀는 '백치 그룹'에서 탈영토화 상태에 놓인 유일한 인물이며 백치 행동의 유일한 실천적 계승자다.

백치화를 거친 깊은 절망과 고독감은, 엔딩에서 괴기하게 '내뱉어'진다. '나'라는 외피를 기어이 벌려 비집고 나가려는, 가족 앞에서의 기묘한 서커스. 카렌은 고통에서 도주하고자 그렇게 수치심조차 들러붙지 않을 무중력의 세계를 향한다. 누구 것인지 모를 서글픔으로 엔딩이 꽉 찼다.

영화도,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 erazerh

 

 

 

* 지금 보니 '알면서도 퇴행'이란 면에서, 비슷한 방향성의 영화들로 <미드소마>와 <셔터 아일랜드>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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