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뉴스웨이 5픽뉴스 중 발췌

 

기사라서 노골적으로 표현할 순 없었지만, 온오프에서 내가 늘 말해왔듯 비가역적인 결과가 있고 여러 증거가 동시에 가리키는 고의의 가해자들에게는, 처형 말고는 해줄 게 단 하나도 남지 않는 게 마땅하다.

 

(촉법이고 나발이고) 나이나 각각의 처지, 스토리, 범죄예방효과 따위를 들이밀면 되레 피해자가 삭제돼 버리거든. 말 그대로 두 번 죽는 거.

 

물론 영원히 달래지지는 않겠지만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법이 제발 좀 해주자. 그만 좀 처놀고. 사후세계에서의 심판이나 초월적 존재에의 의지 따위에 맡겨놓을 순 없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은, 세계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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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논쟁 중 하나가 교화 가능’ vs ‘교화 불가능이 아닌가 싶다. 될지 안 될지를 따질 이유 자체가 없으니까. 대부분의 경우, 그저 고이 접어 휴지통에 넣어두면 좋을 개념이므로.

 

교화(敎化)라는 건 가해자의 마음 안에 죄책감이라는 짐 덩어리를 후~ 불어넣어주고, 그걸 조금씩 깎아 없앨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거다. 안 되지. 안 되고말고. 그런 X같은 사치는 듣도 보도 못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 A(가해자)가 B(피해자, 지옥)라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A2(가해자-교화)가 실현될 때 B2, 즉 ‘피해자의 원래 상태로의 복귀’가 가능합니까?

답은, 아니오.

 

, 그러니까 그들, 비가역적인 결과를 낳았으며 여러 증거가 동시에 가리키는 가해자들한테는, 삭제, 즉 처형 말고는 해줄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한다. 범죄예방효과가 있고 없고는 학교 리포트 쓸 때나 끼적이자. 피해자 측에는 그런 걸 들이밀어선 안 된다.

 

우주의 무한한 개체들, 점들, 먼지 한 톨 하나하나가 소중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다른 개체의 존엄에 상처를 낸 그것들이다. 중세가 정신 나갔다고, 근현대사가 미쳤었다고, 그 풍선효과로 또 다른 헛짓거리를 지속할 필요는 없지 않나?

 

교화? 누굴 위해교화시킨 자의 누적 선행 포인트? 됐고, 제발 부탁인데, 이제라도 그런 찌꺼기 개념은 개나 줘버리자. 반성 같은 건, 엔딩을 돌이킬 수 있을 때나 하는 거다.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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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동의 주체’.

 

학창시절 배운 기억들 나실 런지 모르겠지만, ‘가계-기업-정부를 통칭하는 이 말을 교과서 밖으로 끄집어내야 할 것 같다. 3주체, 즉 경제라는 무대 위 등장인물 모두가 유례없는 위기에 빠진 탓이다.

 

한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나 싶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20일 신천지대구교회에서 31번 확진자가 나온 후부터 확산 일로로 치닫고 있다. 위협은 실재가 됐고 경제 활동의 각 주체들은 공포를 느끼는 중. 마음껏 움직일 수가 없다.

 

렇게 북적거리던 도심은 한산해졌고 각종 행사와 스포츠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됐다. 공장은 기계를 멈췄으며 가게들은 셔터를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겨울이 제대로 된 추위도 없이 시답잖게 끝나나 싶었는데, 웬걸 돈의 흐름은 봄이 다 돼서야 강추위를 만나버렸다. 말 그대로 프로즌(frozen), 경제 주체가 다 얼어붙었다.

 

말 그대로 <frozen>

 

우선 일반 가정을 의미하는 가계. 한국은행이 225일 발표한 2월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96.9로 전월 대비 7.3포인트 급락했다. 100보다 작으면 소비자의 주관적 기대 심리가 과거(2003~전년 12) 평균보다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이번 낙폭은 2008년 조사 이래 세 번째로 큰 것으로, 20156월 중동 호흡기증후근(메르스) 발생 때와 같은 수치다. 비관 심리가 그만큼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의미.

 

아울러 현재경기판단 지수와 향후경기전망 지수의 하향세가 두드러졌는데, 각각 전월 대비 12포인트와 11포인트가 하락한 6676으로 집계됐다. 6개월 전과 비교한 현재 물론 현재와 비교한 6개월 후 전망이 모두 비관적이라는 뜻. 돈을 쓸 데도, 쓸 마음도 없는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의 암울함이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걸로 보는 셈인데, 문제는 이번 조사가 210일부터 17일 사이에 이뤄졌다는 점. 확진자수가 급증하기 이전임을 감안하면 실질적 수치는 훨씬 더 악화됐을 게 자명하다.

 

 

불황의 그림자를 최전선에서 맞이하는 이들, ‘자영업자는 또 어떨까. 이들의 체감 경기는 더 어둡다. 자영업자의 2월 가계수입전망은 87, 한 달 전보다 8포인트가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목을 잡은 20093(79) 이후 가장 낮은 수치. 메르스 사태 때의 94만 못 하다.

 

사실 자영업 쪽은 굳이 숫자를 들추지 않아도 그 불황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기는 하다. 음식점이나 주점 업종의 경우, 손님이 전무한 시간이 매우 길어졌다. 배달에 치중하는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하루 종일 문을 열어놔도 매출이 ‘0’인 곳이 적지 않다.

 

가게를 열 수도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한은은 226일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즉 기업체가 느끼는 체감 경기에 관한 수치를 발표했다. 100보다 높으면 경기 호전을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것, 반대는 악화 예상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한은에 따르면 제조업의 2월 업황BSI65. 전월 대비 11포인트 감소했다. 다음 달 업황전망BSI 또한 698포인트가 줄었다. 반도체 경기 회복에 따른 1월의 기대감이 바로 붕괴된 셈. 대기업(-11포인트)과 중소기업(-11포인트), 수출기업(-13포인트) 및 내수기업(-10포인트)을 가리지 않고 기업 심리 전반이 무너졌다.

 

비제조업이 느끼는 공포도 못지않다. 비제조업의 2월 업황BSI649포인트 하락했고, 다음 달 업황전망BSI(68)도 전월 대비 6p가 떨어졌다. 역시 메르스 사태가 있었던 20156월의 -11포인트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한은 관계자는 소비 부진과 국내외 여객 감소 등으로 도소매업과 운수창고업 지수가 큰 폭 하락했다고 전했다. 물론 심리에서 그치는 건 아니다. 중국공장에서 부품 수급을 못 받아 문을 닫은 자동차공장과 하청 업체들, 확진자가 다녀가는 바람에 문을 걸어 잠근 대형마트·백화점·면세점. 직원 중 확진자가 나와 폐쇄된 사업장들. 위기는 실체다.

 

 

이처럼 경제 활동 주체의 양 축인 가계와 기업이 휘청거리는 시기, 나머지 한 주체인 정부는 뭘 하고 있을까?

 

정부 또한 아프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전에 없이 뜨겁다. 국가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상향 조정했고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전 부처가 코로나19만 보고 움직이고 있다. 대구와 경북 청도는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돼 병상과 인력, 장비, 방역물품 등 모든 필요 자원을 지원받는다. 메르스(116,000억 원)에 버금가는 슈퍼 추경 편성도 확실시된다.

 

다만 성급한 낙관론을 펼친 뒤 곧바로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다는 점, “대구·경북 봉쇄”, “중국서 온 한국인이 원인따위의 없던 정도 떼도록 만들 법한 보건당국 및 여권의 말들, 마스크 가격 폭등과 수량 부족 현상이 제때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 다른 나라로부터 바이러스 대우를 받은 국민들의 상처 등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계가 주목하는 부지런하고 투명한 방역 체계,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현장 밀착형 공무원과 관련 종사자들의 노고는 인정받아 마땅할 터. ‘신천지라는 비상식적 집단의 게릴라성 행보가 정부의 어깨를 부지불식간에 짓눌러버린 점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 위키피디아

 

이렇듯 경제 활동의 3주체 모두가 곤란한 상황. 일단은 회복이 급선무다. 식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은 늘 어려울 때 강했다.

 

지금도 그러는 중이다. 대구 의사회장의 호소 하루 만에 250명의 의료인이 대구로 자원봉사를 나선 것, 고통 분담 차원에서 당분간 임대료를 내리겠다는 건물주들, 뒤질세라 마스크 지원을 주고받은 대구와 광주의 달빛동맹.

 

위기가 없는 게 최선이겠지만, 일단 터져버렸고, 해결해야 하며, 그럴 역량이 우리에게는 있다. 이제 시작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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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뉴스 #더]2020 코리아, 코로나 공포에 유례없는 ‘겨울-봄’ 맞이

‘경제 활동의 주체’. 학창시절 배운 기억들 나실 런지 모르겠지만, ‘가계-기업-정부’를 통칭하는 이 말을 교과서 밖으로 끄집어내야 할 것 같다. 3주체, 즉 경제라는 무대 위 등장인물 모두가 유례없는 위기에 빠진 탓이다. 한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나 싶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월 20일 신천지대구교회에서 31번 확진자가 나온 후부터 확산 일로로 치닫고 있다. 위협은 실재가 됐고 경제 활동의 각 주체들은 공포를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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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_날_낳으시고_동생은_굳이_왜

 

 

태정태세문단세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는 태종, 우리가 잘 아는 이방원이다. 그는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형제와 정적을 축출, 조선의 세 번째 왕이 됐다. 눈앞의 권좌에 앉고자 피를 나눈 가족마저 짓밟는 이 같은 사건을 우리는 국사나 세계사 책에서 적잖이 봤다.

 

물론 흘러간 일만은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하나의 권력을 두고 가족끼리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양 치고받는 사건들은 익숙하다. 다행히도, 중세시대마냥 목숨을 직접 빼앗지는 않고 있지만.

 

태정세문단
예성중인명선

 

가장 가까운 사례는 한진그룹의 일명 남매의 난이다. 지난해 4월 고()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후 그룹을 이끌고 있는 건 조원태 회장. 집안 막내인 조현민 전무도 물컵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지 14개월 만에 만에 한진칼 전무로 복귀했다. 하지만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만은 예상과 달리 지난 11월 정기인사에서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다 조 회장이 누나인 조 전 부사장이 애착을 보인 호텔 쪽을 정리하려 들자 억지 봉합이 터진 것. 조 전 부사장 측은 연말 성명을 내고 조 회장이 공동 경영 유훈과 달리 그룹을 운영해왔고 지금도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작심 지적했다.

 

이후 조 회장이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자택을 찾았다가 큰 언쟁을 벌이는 등 남매의 전선이 집안 전체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물론 모자(母子)는 곧장 사과문을 발표했고 남매 간 만남도 성사될 전망. 그러나 핵심 권력은 하나, 유훈에 대한 해석도 서로 다른 만큼 한 번 뒤틀린 이들 두 사람이 레고마냥 쉽게 끼워 맞춰질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이렇듯 재벌가 다툼은 대개 총수의 유산, 즉 경영권을 나누는 과정에서 발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동 경영 유훈을 남긴 조양호 전 회장도 선친인 조중훈 창업회장의 별세 후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 형제인 차남과 4남이 유언장 조작설을 제기하며 소송을 거는 등 형제의 난한가운데 서있었던 것.

 

그렇다고 한진가 혼자 유별난 건 아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들 상당수는 각종 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선 범현대가에서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건강이 심상찮던 2000년부터 경영권 분쟁이 시작, 무려 10년간 이어졌다. 장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갈등을 겪었고, 정몽헌 회장 사후에는 부인인 현정은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 간에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일명 시숙의 난이 터졌다.

 

2006년에는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던 현대중공업그룹이 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시동생의 난이라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롯데가 형제도 유명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그룹 주도권을 놓고 긴 싸움을 이어온 것. 다만 지난해 일본의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개최된 정기주주총회에서 신 회장과 롯데홀딩스 이사진의 재선임안이 원안대로 통과, 신 전 부회장의 이사직 복귀가 물건너가면서 신동빈 회장 원톱 체제는 굳어지게 됐다.

 

 

두산그룹 역시 고 박용오 전 회장이 2005년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에 대해 경영상 편법 활용으로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 형제의 난 역사 중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다. 이후 17개월간 계속된 법정 다툼은 박용성·용만 형제의 특사 후 경영 복귀, 박용오 전 회장의 퇴출로 막을 내렸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을 떠나보낸 금호그룹도 마찬가지. 고 박인천 창업회장의 3남인 박삼구 회장과 4남 박찬구 회장의 형제 분쟁은 금호그룹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놨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한테 경영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고 이병철 창업회장과 장남인 고 이맹희 회장이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이밖에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형인 조현준 회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한 효성그룹판 형제 반란도 있다. 동아쏘시오그룹은 모태인 동아제약 시절 강신호 명예회장과 차남 강문석 전 대표의 갈등, 부자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대한전선그룹 또한 고 설원량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받자 이복형제들이 반발, 부자의 난을 겪은 바 있다. 대림그룹의 경우 이복 삼촌-조카인 이재우 대림통상 회장과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대림통상 경영권을 놓고 숙질 전쟁을 펼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을 거치지 않은 재벌가가 단 하나라도 존재할까 싶을 정도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그룹사의 구조적 특성상 노른자위는 1인자가 독차지하기 쉽다, “창업 세대에서 2-3대로 넘어갈수록 파이를 나눠먹을 인원이 늘어나 가족 상잔 비극의 확률은 더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물론 눈살 찌푸려지는 사례만 있었던 건 아니다. SK, LG, GS, 신세계 등 도드라지는 분쟁을 삼가온 곳들도 있다.

 

심지어 앞서 소개한 금호그룹의 경우, 3남과 4남이 싸우기 전에는 장남 고 박성용 회장이 본인이 65세가 된 해에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그대로 물려주며 아름다운 우애를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나아가 삼천리그룹을 세운 고 유성연·이장균 회장 콤비의 사연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절절하다. 한국전쟁 전후 목숨 부지조차 힘들었던 시절, 서로 의지하며 버틴 두 사람은 그 인연을 바탕으로 훗날 동업을 일궜다. 이후에도 합리적이고 절제된 공동 경영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고,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았음에도, 한 지붕 두 가족 인연은 여전히 끈끈하다.

 

이장균 회장(좌)과 유성연 회장. ⓒ 삼천리

 

맹자의 사단(四端) 중 하나로 사양지심(辭讓之心)이란 게 있다. ‘인간이라면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뜻. 퇴계 이황 선생은 기세로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닌, 허물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고 죽기로 의리를 지키는 것에 진정한 용기가 있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국민 다수가 눈여겨보는 가문의 구성원이라면, 특히 지금의 그 자리를 본인 능력으로 쟁취한 게 아니라면, 꼭 새겨둬야 할 덕목들이 아닐까.

 

그래야 피는 물보다 진한 척이라도하지 않겠나. 그 기업에 그쪽 집안사람들의 수고 외에도 수많은 노동자의 시간들이, 나아가 국민의 공()이 스며있음을 안다면 말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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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뉴스 #더]물보다 연한 피…재벌가의 ‘의상한’ 형제들

‘태정태세문단세…’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태’는 태종, 우리가 잘 아는 이방원이다. 그는 두 차례 ‘왕자의 난(亂)’을 일으켜 이복형제와 정적을 축출, 조선의 세 번째 왕이 됐다. 눈앞의 권좌에 앉고자 피를 나눈 가족마저 짓밟는 이 같은 사건을 우리는 국사나 세계사 책에서 적잖이 봤다. 물론 흘러간 일만은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하나의 권력을 두고 가족끼리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양 치고받는 사건들은 익숙하다. 다행히도, 중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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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커도 아니면서 불장난-질을.

 

 

지금 장난하새우?”

 

1126일 인천시 남동구가 소래포구에 20m 높이의 새우 모양 전망대를 짓기로 했다는 소식에, 한 포털 사용자(네이버 아이디: bals****)가 남긴 댓글이다. 다른 네티즌들의 반응도 호의와는 거리가 멀다. 부족한 주차시설이나 확충하지 무슨 짓이냐, 바가지나 씌우지 말아라 등의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인천 행정당국을 향한 이런 비판은 처음이 아니다. 인천시는 전국 최초의 사이다 생산지라며 중구 월미도에 인천 앞바다 사이다 조형물을 설치하려다, 최근에야 사업 올스톱을 선언했다. 일제강점기의 착취와 강제 근대화를 미화한다는 반발 여론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맥락 없는 조형물로 비판 거리 생산하기, 물론 인천만의 나 홀로 특기는 아니다. ‘세금 도둑질이란 손가락질을 수집하는 조형물 논란은, 다시 말해 흉물논란은, 장소와 종류를 가릴 줄 모른다.

 

새우 전망대 조감도 = 남동구

 

전북 무주군은 지난해 만화 캐릭터인 태권브이 조형물을 향로산(해발 420) 정상에 33높이로 세우려다 거센 반발을 샀다. 이에 지난 9월 조형물을 포함,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해온 태권브이랜드 조성사업 전체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단 최근 해당 공무원과 의회가 한목소리로 찬성의 화음을 내는 등 사업은 다시 기지개를 펴는 모양새다.

 

신안군은 지난 8신안군 황금 바둑판 조성 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군 관계자는 이세돌을 배출한 신안군을 바둑의 고장으로 널리 알리고자 황금 바둑판 조성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래서 순금 189kg이 필요하고 이에 2020년부터 3년간 100억 원 이상을 마련하겠다는 것. 역시 여론은 비난 일색이었다.

 

이 같은 조형물이 상상만으로도 반대를 부르는 이유는 명백하다. 정책 관계자의 뇌내망상에서 촉발된 비공감형 판타지, 즉 주민의 삶과 동떨어진 어떤 무례한 형상인 주제에 현실화를 꿈꾸며 주민이 낸 세금은 끊임없이 탐해대기 때문이다.

 

태권브이랜드 조감도 = 무주군

 

다행인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하나씩 말하자면, 다행인 건 이들 조형물이나 사업이 실제로 삽을 뜬 상태는 아니라는 것. 제발 멈추라고 요구할 시간은 남았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점은, 안타깝게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도 이미 많다는 사실이다.

 

먼저 경북 군위군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공중화장실인 대추 화장실이 있다. 지역 특산품 홍보의 일환으로 20167억 원 가까이 들여 지은 거대한 대추형(?) 화장실로, 면 소재지에서 먼 탓에 이용객은 매우 거의 없다. 흉물스러움을 구경하고자 찾은 이들을 관광객이라고 환영할 수는 없는 노릇.

 

강원도 고성군에는 무릉도원권역 활성화 센터라는 조형물 및 건축물이 존재한다. 장독을 짊어진 지역 청년의 모습을 16m 높이로 형상화한 것으로 약 15억 원이 들었지만 사실상 무쓸모’, 지금은 방치된 상태다.

 

전남 화순군도 만만치 않다. 자치단체의 장이 바뀔 때마다 지역을 상징하는 조형물도 하나씩 늘었다. ‘대형 포도 조형물’, ‘청동 조형물’, ‘대형 붓 조형물이 차례차례 들어섰는데 합쳐서 혈세 17억 원이 태워졌다.

 

(왼쪽)대추 화장실 = 다음 로드뷰 / 무릉도원권역 활성화 센터 = 고성군

 

이밖에 경북 포항시의 과메기 홍보용 은빛 풍어 조형물(3억 원)’, 충북 괴산군의 대형 무쇠솥(5억 원)’, 전북 고창군의 주꾸미 미끄럼틀(5억 원)’, 전남 완도군의 황금전복 조형물(2억 원)’, 강원 인제군 소양강의 마릴린 먼로 동상(5,500만 원)’ 등 세금 녹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들을 꼽자면 끝이 없다.

 

지방에만 한정된 건 아니다. 사진만 봐도 냄새가 나는 듯하다던, 서울시장표 설치 미술품 슈즈트리(14,000만 원)’도 비난의 총량으로는 그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았다. 4억 원이 투입된 강남구의 말춤 추는 손목은 어떤가. 한류? 발목도 만들어 더블로 가지 그랬나.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공공조형물(公共造形物), 즉 국가나 공공 단체가 설치·관리해 일반 사람에게 공개하는 조형물은 올 6월 기준 전국 6,287점에 달한다. 최소가 이 정도, 파악이 되지 않는 것들 또한 무수하다고 한다. 이토록 좁은 나라에 이토록 많은 조형물이라니, 그 모양은 물론 수치까지 기괴하기 짝이 없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은빛 풍어 = 포항시 / 주꾸미 미끄럼틀 = 고성군
황금 전복 = 완도군 / 마릴린 먼로 동상 = 원주지방국토관리청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모르는 분야임에도 추진력 하나는 귀신같기 때문.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식한데 용감해서다. 우선, 결정권자는 대개 지역과 지역 주민에 대한 애착도나 이해도가 낮다. 그러다 보니 해당 공간이 품은 시간을 가꾸고 표현할 방법 같은 걸 고민할 리 만무하다.

 

자치단체 현장의 볼멘소리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리에 오는 사람마다 성과 지향적인데, 지역 축제와 결합된 조형물정도는 돼야 업적으로 여긴다는 것. 특산물이면 특산물, 옛것이면 옛것 등 손쉽게 집히는 소재를 물리적 덩어리로 부풀려 가공해야 성에 찬다는 거다.

 

그 와중에 본인이 설치 미술이나 인문학에 관한 식견을 갖췄을 확률은 매우 적은데, 대개 전문가의 조언은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누가? 그 결정권자가가. 콕 집어 말하면 자치단체의 장되시겠다.

 

물론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미숙함을 끝끝내 밀어붙이는 욕망이다. 이를테면 장()으로서의 내 이력서, 거기에 새겨 넣을 몇 마디 문구를 향한 집념 같은 것. 그렇게 제막식 테이프를 끊는 그날의 희열만 상상하다 보니, 시공간적 맥락이 부재한 객체로서의 조형물만 자꾸 느는 것이다.

 

주윤발이 아니라면 돈 태우지 말자. <영웅본색>

 

지으신 그 모든 걸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런 유형의 흡족은 신()이나 국토 개발형 독재자한테는 어울리겠지만, 지역 주민이 뽑아준 자가 취할 태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 자리는 지역의 대장 노릇을 하는 곳도,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발판도 아닌, 일꾼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깨닫기 어려워 보이는 만큼 강제적 장치는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소중한 예산으로 수상쩍은 일을 벌일 때는 반드시 외부 전문가들의 검토와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물리적인 억제력 말이다. 새로운 척하는 낡은 흉물은, 이미 차고 넘친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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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뉴스 #더]세금 도둑 전성시대: 흉물에 혈세를 태워?

“지금 장난하새우?” 11월 26일 인천시 남동구가 소래포구에 20m 높이의 ‘새우 모양 전망대’를 짓기로 했다는 소식에, 한 포털 사용자(네이버 아이디: bals****)가 남긴 댓글이다. 다른 네티즌들의 반응도 호의와는 거리가 멀다. 부족한 주차시설이나 확충하지 무슨 짓이냐, 바가지나 씌우지 말아라 등의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인천 행정당국을 향한 이런 비판은 처음이 아니다. 인천시는 전국 최초의 사이다 생산지라며 중구 월미도에 ‘인천 앞바다 사이다

www.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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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두른 작은 헝겊데긴 너에겐 무엇보다 힘이 되지

(…) 완장 그것은 기가 막힌 변신인거야, 완장 세상을 지배하는 목소린 거야, 웃기지마

(…) 제발 이제는 정신을 차려봐 어깨에 힘을 좀 빼고, 너는 세상이 만만해 보이니 한번쯤 주위를 둘러봐

- 『완장』 시나위 6집 中


"'회피연아' 동영상 고소, 누리꾼 교육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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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초현실이 뒤범벅됐을 때의 어리둥절함. 데이빗 린치의 영화에서나 느낄 법한 그 혼미함을 놀랍게도 지금 여기 2008년 대한민국을 통해 느낀다면, 거짓말일까. 이 모든 해괴망측한 현상들이 결코 영화가 아니라는 데서 한번, 그리고 그것을 접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욕설을 뱉고 있는 내 입 때문에 또 한번 놀라는, 바야흐로 아주 '어메이징하게' 오싹한 겨울이다.


따지자면 이는 모두 우리의 착각에서 비롯됐다. 지난겨울을 휩쓸던 '무능한 정권보다는 차라리 부패한 정권이 낫다.'는 논리. 이 이상한 명제는 두 가지 착각을 불러왔다. 하나는 '부패'와 '무능' 사이에는 교집합이 없을 거라는, 그래서 '부패했어도 유능은 할 것'이라는 착각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의 입에 걸린 '유능'이 약자에 대한 고민을 어느 정도는 포함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전략적 단어인 '실용'이 애매함을 딛고 21세기 대한민국의 기치인 양 떠올랐을 때, 아마도 이 착각들의 절정은 그 때였을 것이다.


물론 이는 말이 착각일 뿐이지 사실상 우리의 '선택'에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성공이라는 지상과제를 향하는 중에 윤리 따위를 들여다볼 겨를은 없더라.'는 경험명제에 암묵적인 동의를 보낸 주체는 결국 우리 시대의 패러다임이었다. 시스템의 부조리를 토로하는 누군가보다 토익공부 한 자 더하는 당신이 훨씬 더 현명하고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유의 광고카피가 증명했듯, 성공이 지향하는바 또한 명확했다.


富라는, 눈에 띄는 결과를 향한 이 뜨거운 관심들은 그 자체로 매우 충성스럽기는 했지만, 성공의 '주어'에 관한 질문은 최대한 삼갔다. '일단 나는' 성공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는 강박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려 드느니 차라리 그 꼭대기로 향하겠다는, 그것이 그나마 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만성적인 절망과 박탈감 따위 아랑곳 않을 수 있는 '부자'가, 그야말로 전지전능함의 표상이 된 것이다. 자본으로 서열을 매기는 시스템은 그렇게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차라리 폼 나게 편입하고픈 대상이 됐다. 바야흐로 '살아남은 놈이 곧 윤리적인 놈'인 세상의 도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수직적 사고로 가득 찬 야심만만한 CEO를 대한민국의 수뇌 자리에 들어앉혔다. 예상대로 그의 원칙은 확고했다. 그에게 '다름'과 '차이'는 '변명'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가난한데다 '좌파'이기까지 하다면, 안타깝지만 그것은 순전히 당신이 남들보다 덜 열심히 살았고 또 덜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죄스러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이 말 같지 않은 논리가 현행태로 횡행하는 곳이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모든 분야에 '경쟁력'을 갖다 붙이고 그 결과를 세로로 나열하고픈 천박한 소망이 제대로 작동 중인 셈이다.

MB는 이른바 '불도저'로 불린다. 불도저는 묵직하게 밀어붙여 눈에 띄는 성과물을 만들 줄 안다(물론 게 중에는 오직 쓰레기 생산에만 힘쏟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깔아뭉갰을 벌레나 잡초 등의 생명체들에, 불도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성급했다. 모두가, 아니 일단 나는 불도저에 탑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그 밑에 깔릴 벌레나 잡초는 아닐 줄 알았다. 아니면 그 존재 자체를 묵인했거나. 주지해야 할 한 가지 사실. 지금의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깔아뭉개지는 생명체의 수가 줄어드는 일은 결코 없을 것라는 점. 늘 그랬듯이 우리의 실수를 바로잡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물론, 4년 후에도 심판할 나라가 남아있다면.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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