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을 포함해 '계급'을 소재로 삼은 영화 중 어느 것도 끌로드 샤브롤의 <의식>(La Ceremonie, 1995)에는 근처도 못 가고 있다는 게 내 생각.

 

그러니까 어느 수준이냐면, <의식>은 일단 계급구조를 끊임없이 드러내되 그 안에 감정을 집어넣지 않는다. 약자·여성·연대 따위의 유행어 같은 키워드가 들어설 공간 자체가 없다. 세상은 물론 불합리하지만 이 영화에서 불합리는 위에서 아래로만이 아니라 역으로, 또는 옆에서도 스멀스멀 흐른다. 그러다 보니 두 여성의 전복적 행위에 가치가 매겨지지 않으며 사건은 말 그대로 '돌출'된다. 관객 입장에서는 사건을 예측하거나 사후에 원인을 지목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포착 가능한 건 잠재된 악의, 얄팍한 명분, 세계 곳곳의 불안한 공기 정도. , ..할 수 없음. 그런데 이 '설명 못 할 불쾌함'만큼 역으로 세상을 명쾌하게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또 있을까.

 

이렇듯 <의식>은 계급을 다루되 '계급의 수직성 부각'이나 '공감 유도' 같은 기존 틀을 아득히 넘어 섦으로써, 오히려 본질에 대한 큰 그림을 꿈꾼다. 걸작이 걸작인 이유. 30년이 다 된 영화지만 여전히 가장 새롭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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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서사에 초자연적 요소 등 양념이 좀 들어갔는데, 영화의 재미를 더해줬는지는 의문. 웃다 인상 쓰다 또 웃는 정신 나간 가학 변태 미친 사이코 새기를 딱 중심에 박아두고 전개는 미니멀하게 펼쳤던 1편이 조금 더 마음에 듦. ⓒ erazerh

 

 

 

청출어람 광대 살인마 [테리파이어]

광대 살인마네 뻔하겠네 마릴린 맨슨 닮았네ㅋ 했다가, 소름끼치는 표정 연기와 한 방 세게 치고 들어오는 고어에 화들짝. 물론 개연성은 쌈 싸먹는 수준이지만, 청출어람 광대 살인마 덕에 평

erazerh.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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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최애 애니가 뭐냐고 딸내미가 물어 생각해보니 아직 <아키라>(1988)만 한 걸 못 본 것 같아 <아키라>라고 대답. 그게 뭐냐길래 이 기회에 온 가족이 다 함께 관람.

 

이번에도, 역시 어마어마한 희대의 걸작 SF라는 게 내 결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우주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줬다면, <아키라>SF 장르가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이미 35년 전에 해버렸다.(물론 우주도 포괄함)

 

오랜만에 <메모리즈>도 다시 보고 싶어짐.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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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서 가능할 것만 같지만, 실은 글로벌적으로도 써먹을 수 있는 '구원의 공식'에 관한 영화.

 

빛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이렇게 다채로운 그림으로 뽑을 수 있다는 건 경이로운데, 그래서 역설적으로, 감성 공격이 들어오면 시무룩해지는 내 취향과는 살짝 안 맞음. 굳이 따지자면 호소다 마모루 쪽이 조금 더 마음에 듦.(그렇다고 이쪽도 아주 좋은 건 아님:-)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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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식 버리고 멋대로 살다 죽을 때가 돼서 착한 척은 해보는데, 실은 임종마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세팅 아닌가? 영화의 선한 의도는 알겠는데, 이런 징징대는 감성은 영 내 취향과 안 맞는 듯.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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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인지 영화가 나인지' 모르겠을 최종 시퀀스도 좋았지만, 중간에 소동극을 바라보며 잔잔하게 웃는 듯 우는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의 얼굴 클로즈업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난장판의 유니크함 때문인지 몰라도 불현듯 영원한 건 없다는 걸 깨달아버린, 시간의 지연을 바라는 현재의 얼굴이자, 먼길 떠나기 전 요란했던 그 시절을 한번 들러본, 아마도 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온 미래의 얼굴. 무엇이든 '간직'을 꿈꾼다는 점에서 이때 콘래드의 눈은 카메라라는 '감정-기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삶의 찰나성에 관한 이토록 따뜻하고 쓸쓸한 관조라니. 최근 본 적 없는 시네마틱한 숏, 아름답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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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하찮은 수준의 신념조차 없는 오직 악행을 위한 악행 ②피해자들의 가공할 답답력 ③가족 파괴 (혹은 어린이) ④무한반복.

 

이상을 '관객 가학 영화의 4요소'라고 할 때, <스픽 노 이블>은 각 요소를 두루 갖춤은 물론 분야별로 만점에 가까운 수행력까지 선보인다. 더럽고 찝찝한 기분을 남겼다며 감독에게 쌍욕이라도 퍼붓는다면 그건 실은 특급 칭찬.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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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늦었지만, 2022년 개봉(출시)영화 베스트 3

 

1. 헤어질 결심

- 로맨스와 느와르와 존재론적 고찰의 기묘한 혼재. 영화 (혹은 한 개인의) 이질적인 무엇으로의 분화, 마침내.

 

2.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 가스라이팅의 시대를 돌파하는 비결 = 내 가치는 내가 발견하기 시간의 유한함에 녹아들기. 피노키오처럼.

 

3. 맥베스의 비극

- 연극 무대에 카메라를 들고 난입, 공연을 숏(shot)의 규격으로 찍고 잘라 붙인 다음, '흑백이라는 컬러'를 입힌 것 같은 영화. 코엔의 기존 걸작 몇 편처럼 훅, 치고 들어오는 건 없지만, ‘영화란 그러니까 무엇이었나에 입각해서 보면 꽤 훌륭.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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