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우연히 보게 된 웹툰. 다른 회는 그저 그런 것 같은데 이 에피소드만큼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원래는 까만색 지금은 회색인 개 한 마리, 과거에는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현재는 집안 소품과 다름없는 신세다.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이거나 말거나 녀석은 사랑 받던 그때 그 시절을 자꾸 소환해댄다. 물질적 시간의 역방향으로 흐르는 머릿속 시간. 어마어마한 간극이 생길 수밖에(나는 바로 이 간극 때문에 삶이란 녀석이 본질적으로 비극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행복해!’ 라는 주문을 늘 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나라는 인간).

같은 맥락. 나는 <시>에서 미자가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하는 숏이 참 좋다. “미자야 이리와.”라고 부르는 언니, 그 손짓, 반쯤 쳐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내가 정말 예쁘구나.”라고 생각하는 서너 살의 미자. 그리고 그 생애 최초의 기억을 부여잡고픈 예순여섯의 미자. 영영 오지 않을 어떤 순간, 그러나 오지 않음이 명백해질수록 우리 뇌는 그 시간을 더 자주, 이토록 참 잔인하게도 불러낸다.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버린 간극, 그로 인한 가슴 시림을 이 숏만큼 간결하고 담백하고 또 오롯이 담아낸 이미지를, 나는 또 만날 수 있을까. ⓒ erazerh



# 1995년,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던 그때. 꼬리를 참 신나게도 흔들던 녀석의 첫 모습을 난 아직 기억한다. ‘이게 개야 천사야!’했을 정도였지 아마. 참 많은 시간을 녀석과 같이 보냈다. 이제 17살. 계륵이 돼버린 아이(그래도 넌 행복한 개임. 웬만한 사람 같으면 너 똥칠하는 거 못 견디고 이미 내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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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이마주 게시판에서 '내 인생의 영화 30편'이란 글을 보고 재밌겠다 싶어 나름 고민 끝에 꼽아본 목록이다(30편까진 아니고, 베스트 10). 영화적으로 이들 작품보다 훨씬 빼어난 것도 후보에 있었지만, 기준이 '내 마음을 뒤흔든 정도'이다 보니 작품성 목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 물론 10편 또한 완성도로 따질 때 보통 레벨에서 논의될 영화들은 아니다만(가나다 순, 괄호 안은 감독).


도니 다코(리처드 켈리)

마더(봉준호)

멀홀랜드 드라이브(데이빗 린치)

베티 블루(장 자크 베넥스)

사랑의 추억(프랑수아 오종)

시(이창동)

씨클로(트란 안 홍)

엘리펀트(구스 반 산트)

엘 토포(알레한드로 조도르프스키)

증오(마티유 카소비츠)


이 중 단 한 편을 꼽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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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영화 베스트 10 + 20자평. 국내 상영작, 가나다 순.


<방가? 방가!> 남의 쪽박 함부로 깨지 않는 세상이 진짜 유토피아.

<셔터 아일랜드> 미치는 게 차라리 당연한 미국, 남자. 인셉션보다 훨씬 낫다.

<시> 망각의 강 위로 기어이 피워 올린 꽃/시/얼굴. 가슴이 미어져, 이창동 최고작.

<시리어스 맨> 요란 떨지 않으면서 삶의 요란스러움을 주무르는 경지.

<예언자> 텅 빈 도화지에 아로새겨진 범죄 계보학. 조금 더 묵직했더라면.

<옥희의 영화> 결국은 닮아버릴 다름들, 그 사이에 서서. 홍상수의 신세계.

<킥 애스: 영웅의 탄생> 매끈하면서도 B무비 감성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경우의 이상적인 예.

<하얀 리본> 가짜 죄의식이 진짜를 몰아내다. 이성을 가장한 미토스, 그 광기.

<하하하> 두 개의 숟가락, 하나의 찌개. 적어도 솔직은 했던 그 맛 그 여름.

<허트 로커> 풀 메탈 자켓과 지옥의 묵시록 사이의 어느 지점. 전쟁-기계 新 보고서.


이 중 올해의 한 편은, 단연 이창동의 <시>다. 미학적으로 정점에 달한 이 영화는 스토리텔링 면에서도 역대 가장 창조적이다. 요컨대 망각되고 있는 한 죽음이 또 다른 개인의 한정된 시간 안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에 관한 이야기. 이 죽음은 영화 후반부 카메라-시선 숏을 통해 순간 ‘꽃’이 됐다 이내 증발하는데, 그야말로 영화적 마법의 경이로운 극단이 아닐 수 없다. 짜릿하고 격정적이고 먹먹하고 뭉클하다(같이 본 아내는 한참을 울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운 건 <파이란> 이후 처음이다). 이는 <400번의 구타>나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숏조차 미치지 못했던 영역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소녀의 얼굴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래도 이창동은 간격/리듬만으로 심금을 울리는 신공을 터득한 것 같다. <시>는 시 쓰기, 또는 이미지 그 자체다. ⓒ erazerh


2009년 영화 베스트 10

2008년 영화 베스트 10

2007년 영화 베스트 10

2006년 영화 베스트 10

2005년 영화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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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영화 베스트 10 + 20자평. 국내 상영작(타임크라임 제외), 가나다 순.


<노잉> 지구를 포맷하고픈 욕구. 그 블록버스터식 수사.

<디스트릭트 9>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많은 용산‘들’.

<똥파리> 폭력은 결코 죽지 않는다. 가난이 죄가 되는 한.

<마더>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에게 바치는 제의(祭儀). 봉준호 최고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타란티노 가라사대, 영화 또는 영화관의 궁극. 황홀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죽음에 대한 예의. 고로 삶에 대한 예의.

<불신지옥> 진짜 공포는 불신이 아닌 맹신에 깃드는 법. 무속 신앙의 성공적 귀환.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가족 판타지 해체 작업. 아들이 스타트, 아버지가 매조진다.

<차우> '질서 없음'이라는 질서의 구축. 낚였음에도 미워할 수 없다. 희한한 신공.

<타임크라임> 중년 남성의 욕망과 방황과 복귀에 관한 한, 가장 창조적인 내러티브.


이 중 올해의 영화 단 한 편으로는, <마더>를 꼽고 싶다. 봉준호는 확실히 변했다. 일단, 나는 ‘향숙이’라는 기표가 소비되던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낱 농지거리로 둔갑시키고 실컷 킥킥대고 버려도 좋을 만큼 그 이름이 덜 비극적인 것이었나, 하는 문제(이때 <괴물>이 언급한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은 누구인가). 아울러 <괴물>을 가리켜 ‘정치 비판은 나오는데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다.’라고 애써 우기던 역시나 둔해빠진 우리는, 후에 MB 정부 출범마저 이끌어냈지 아마.

기억하라는 주문(관객을 보는 눈)이 더 이상 필요할까. 그래서 <마더>일 수밖에 없는 거다. 죄 없는 종팔이를 세계 바깥으로 밀어낸 후, 아무도 기억하지 말기. 너무나도 잔혹하다면, 그게 당신 짓이었음을 기억하기. ⓒ erazerh


2008년 영화 베스트 10

2007년 영화 베스트 10

2006년 영화 베스트 10

2005년 영화 베스트 10


새해 福들 듬뿍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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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묻혔던 곳, 현서가 괴물에게 먹혔던 바로 거기, 그 구멍 속 실재를 알게 된 봉준호 영화 유일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엄마'라서 진실을 뱉을 수 없다. 그래서 펼쳐 보이는, 실로 숨이 멎을 듯한 제의(祭儀). 봉준호는 그렇게 김혜자를 괴물로 만듦과 동시에 자신도 괴물이 됐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탓에, 이보다 긴 글은 쓸 수가 없구나.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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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사수를 위한 ‘선빵’ -->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켜라!



‘한국영화 세계 5대 강국 실현.’ 영화진흥위원회가 홈페이지에 자랑스럽게 내건 문구다. 나는 ‘영화’와 ‘등수’를 조합하는 이런 말장난 따위가 한국영화를 진짜로 위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영화가 숫자에 놀아날 때 즐거운 쪽은 관객이 아니라 늘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아무데서나 순위 경쟁을 일삼는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영진위의 이 슬로건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을 테지.


낙원상가 4층에서 만난 영화들이 내 영혼을 수십 차례는 위로해주었음을, 나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에서의 커피와 담배는 늘 그토록 맛있었던 걸까. 아이 때문에 잘 찾지 못하는 요즈음인지라,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기억들은 유혹적이기만 하다. 부디 살아있기를.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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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으며, 또 슬펐던, 2008년도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8 영화 베스트 10을 꼽고 20자평도 곁들여 봤습니다(국내 상영작, 가나다 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세상만사 어차피 욕망과 욕망의 충돌. 가장 무서운 건 이성적인 척하는 비이성.


<다크 나이트> 희대의 캐릭터 탄생. 웃으면서 울고 파괴하면서 창조한다.


<렛 미 인> 소년은 어떻게 소녀를 위해 살인을 하게 됐는가. 일종의 프리퀄. 최소한 순수하지는 않다.


<미스트>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 공포의 진짜 창조자는 늘 인간.


<스위니 토드> 모든 걸 잃어버린 한 남자, 모두가 죽어야 끝날 노래를 부르다.


<스턱> 간결하고도 명쾌한, 인간 먹이 피라미드의 작동 원리.


<영화는 영화다> 현실을 무대로 살인을 연기하는 기괴한 엔딩 시퀀스는 압권!


<월-E> 2008년 스페이스 ‘러브 오디세이’


<이스턴 프라미스> 유아적인 자들이 젠체할 때 나타나는 비극. 인류의 여전한 오류.


<클로버필드>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이름의 롤러코스터. 공포보다는 현기증.



이 중 올해의 영화 단 한 편을 꼽아보라면 <이스턴 프라미스>로 하겠습니다. 전작 <폭력의 역사>가 아버지의 액션에 더 이상 열광할 수 없는 이유였다면, <이스턴 프라미스>는 그 액션이 어떻게 작동하고 또 유전되는지에 관한 탐구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남자들의 계보’에서 누군가가 웃음의 코드를 주구장창 우려내는 동안, 크로넨버그는 이런 작품을 결국 내놓고 말았습니다. 뭐, 다른 영화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어떻게 소비시킬 것인가’와 ‘어떻게 읽힐 것인가’라는, 고민의 차이겠죠.


한편, 저의 2008년 최악의 영화는 <고사: 피의 중간고사>와 <울학교 이티> 정도입니다. 문제 제기를 해놓고는 결국 엉뚱한 짓만 해대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유의 영화들이거든요. 감당할 생각이 없다면, 애초에 그 지점으로 영화를 끌어다 놓지 않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 erazerh



2007년 영화 베스트 10

2006년 영화 베스트 10

2005년 영화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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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다 가고 있군요. 섭섭하기도 해라. 그런 의미로, 올해 본 영화(114편이군요) 중 마음에 드는 걸로 10편 꼽아봤습니다(국내 개봉작, 순서는 가나다).


<기담> 유령을 만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실의 고통. 진짜 공포는 바로 이런 것.

<데쓰 프루프> '완벽한 것'의 붕괴를 훔쳐보는 쾌감. 물론 대가는 치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만.

<라따뚜이> 이보다 더 훌륭한 가족영화를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별빛 속으로> 진실이 없는 시대를 차라리 거짓으로 돌파하기. 그 시큰한 경험의, 마법 같은 전이.

<본 얼티메이텀> 디지털 공세를 헤쳐 나가는 아날로그적 동선. 진짜 적은 내부에 있나니.

<우아한 세계> 투덜거림 하나하나를 시대의 표정으로 녹여내는, 송강호의 얼굴-몸.

<인랜드 엠파이어> '영화를 본다는 것'에 관한 완전하게 새로운 경험. 일단은 뇌를 내려놓으시라.

<천년학> 恨에서 우려낸 소리와 그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거장의 예의.

<파라노이드 파크> 울지 않는 소년. 그 대신 카메라가 운다. 게다가 엘리엇 스미스!

<폭력의 역사> 아버지의 '액션'에 더 이상 열광할 수 없는 이유.


# 한편 저의 '2007년 최악의 영화'는 <미녀는 괴로워> 정도입니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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