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의 리뷰를 절반 정도 써내려가고 있을 즈음, 이글루스 다른 분들의 리뷰를 봤고, 어찌어찌해서 대자보에 실린 기사를 읽게 됐다. 그리고 그동안 쓴 게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너는 내 운명>에 관한 '감상문 쓰기'는 그만 접기로 했다.

영화는 대략

1. 가능한 한 현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려는 영화
2. 현실, 인간의 그림자를 중심으로 한 판타지
3. 현실, 인간의 빛을 중심으로 한 판타지
4. 현실, 인간의 그림자를 덮는 빛의 판타지
5. 전형적인 장르영화

로 나눌 수 있다(경우에 따라서는 중복될 수도). 2번과 3번의 경계, 혹은 잘 만들어진 5번 정도로 생각했던 <너는 내 운명>에 관한 느낌은 대자보 기사를 보고, '이 영화는 오히려 4번에 가깝지 않은가?'로 바뀌고 말았다. 에이즈에 관한 부분은 조금 더 많은 글과 논쟁을 접해봐야 알겠지만, 영화 속 '세상의 오만한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유통기한 무한대인 애절한 사랑'이, 실제 인물이 겪은(혹은 겪고 있는) 불행에서 필요한 부분만 살짝 긁어 구워낸 판타지라는 생각이 든 이상, 더 이상 <너는 내 운명>을 지지할 수 없을 것 같다. 4번 따위의 영화는 전혀 내 취향과 맞지 않으며,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를 내세워 그럭저럭 동의, 현실과 영화 사이에 어떤 태생적인 경계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것 또한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물론 박진표 감독이 악의로써 진실을 다 다루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너는 내 운명>이 4번 영화 스타일에 백 퍼센트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눈물을 자아내는 스크린 속 절절한 사랑이, 모티브를 제공한 진실의 본질은 외면한 채 스스로에게 유리한 그 표면만을 꽃피워 담아낸 판타지라면, <너는 내 운명>은 정말이지 '영화일 뿐인 영화'가 된다. 당시 미디어들이 했던 쇼의 언어를, <너는 내 운명>이 전혀 다른 지점에 서서 전혀 다른 얼굴을 한 채로 동어반복하는 셈이다. 이래서는 더 이상 영화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잊기 위해 극장에 가는 사람보다는,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오늘도 살아야 하기에 극장을 찾는 사람에 가깝다. 우유는 여전히 비릿할 뿐이다. ⓒ erazerh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