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크라이스트(Antichrist)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진짜 적그리스도는 누구인가같은 물음을 던지거나 답하려 들지는 않는다. 영화 속 갈등 또한 이성적인 틀로서의 시선/해법과 인간의 어두운 본성 간 어긋남에서 비롯된 것이지, 기독교적 요소의 개입 때문은 아니다. 다만 그와 그녀 간 파열음이 아담-이브 이야기의 히스테릭한 버전으로 전개될 뿐. 그러니까 신의 부재를 전제로 한, 인간 통제 불가능성에 관한 일종의 고해성사.

 

그렇더라도 기괴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미지가 불쾌해서가 아니라 사실 개인적으로는 불쾌하지도 않았지만 영화의 태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가 있을 법한 지점에 내러티브 대신 추상적 언어상징이 느슨하게 들어앉은 탓에, 그와 그녀가 보이는 다양한 패턴의 행위가 광기라는 기표 안에 지나치게 뭉뚱그려지는 느낌이랄까. 예컨대 그녀 스스로 마녀가 되어가는 것에 대한 영화의 비판적 스탠스, 그 방향이 모호한 관계로 인간 본성 운운하는 게 관객한테는 최선의 반응이 되는 식이다. 이때 단지 관조할 뿐인 카메라는 부재한 신과 무엇이 다른가. 그저 잔혹한 멜로드라마 또는 라스 폰 트리에의 우울증 표출 정도로 치부하면 딱 좋겠지만 그래서는 이 작품, 지지하기가 어렵다.

 

이런 까닭에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유려한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프레임으로서의 존재 이유/필연성에 관해서는 다소 의문이 생긴다. 물론 유기적인 과정을 통하지는 않았다 해도 순간순간 포착되는 몇몇 발화가 매혹적이기는 하다. 이를테면 에덴 동산은 여성을 어떻게 디자인했는가?’에 대한 답변 같은 것. 그러니까 그 수많은 이브들. 얼굴이 지워진, 아마도 이브. 여성 타자화는 이미 창세기 때 기획됐다는, 적그리스도적() 선언 말이다.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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