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만난 여자와 남자가 부부 연기를 펼친다는 상황 자체도 흥미롭지만, <사랑을 카피하다>의 진짜 재미는 그 역할극을 차츰 잠식해가는 두 사람의 감정선에 있다. 그것이 복사본으로서의 이 역할극을 실제 결혼생활의 단순 반복 그 이상의 무엇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리티를 신뢰하던 여자가 영화 후반 "제, 제, 제, 제, 제임스."라고 말을 더듬을 때, 그러니까 오롯이 복사본 안에서 잉태된 풋풋한 감정이 고개를 들 때, 이 역할극은 이미 그 자체로 삶의 한 조각이 된 셈이다. 즉, 고유한 시간성의 획득.

이 '원본-복사본'은 '현실-영화'의 관계와 몹시도 닮았다. 현실로부터 외양을 빌려 구축한 개연성 있는 허구를 우리는 영화라 부른다. 그리고 토대가 된 그 현실을 우리로 하여금 무려! 만지고 느끼게 해줄 때, 그 재기발랄한 이미지들은 곧잘 걸작이라 일컬어진다. 물론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로 세상에 조금이라도 '덜 속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할까.

돌아와서, <사랑을 카피하다>의 역할극은 원본 앞에 과연 어떤 판결을 내놓을까. 또 다른 원본이 써지기를 간절히 바랐던 줄리엣 비노쉬.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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