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노고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지만, 고백하건대 <인셉션>은 사실 좀 시시했다. 플롯을 주체적으로 주무르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 영화임에도, 뭐랄까, 가슴을 후벼파는 날카로운 무언가는 결여된 느낌. 정성일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영화보다 좋은 영화이지, 다른 영화와 차원이 다른 영화는 아닌' 셈이다.

이는 <인셉션>이 현실과 꿈의 관계를 '현실-잠재적 실재'의 층위가 아니라 '현실 ver1.0-현실 ver2.0'의 고리로 다루는 영화라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요컨대 기대했던 '잠잠한 표면'과 '들끓는 내부'라는 실재적 접근 따위와 무관한, '기억-기억-기억'으로 이어지는 머릿속 회로도만 줄곧 들여다봐야 했으니까. 넘치도록 흐르던 긴장이 결국 러닝타임의 종료와 함께 휘발되는 성질의 것일 때의 아쉬움이란.

물론 이것은 '꿈을 소재로 한 영화'에 거는 내 기대에 <인셉션>이 부응하지 않는 종류의 작품이기 때문이지, <인셉션> 그 자체의 문제라 볼 수는 없다. 그러니까 데이빗 린치의 블록버스터 버전을 상상했다가 실망에까지 이른 것은 어디까지나 내 책임. 아무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견의 감독 목록에서 이제 크리스토퍼 놀란은 내려놔도 되지 않을까 싶다. ⓒ erazerh


# 별 다섯 개를 만점으로, <다크 나이트>는 내게 별 넷 정도의 영화다. 물론 그 중 별 셋은 히스 레저의 몫. 놀란이 창조한 지나치게 도식적인 후반부 구도는 별 -1개다.

# <인셉션>은 거의 '셔터 아일랜드2'처럼 느껴졌다. 디카프리오가 아니었어도 그랬을 거다. 나쁜 뜻은 아니다. 나는 <셔터 아일랜드>와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꽤나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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