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카메라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카메라는 부분을 연주하고 즉흥적으로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직접 개입할 수도 있는 악기와 같다. 두 번째로 카메라는 복싱과 같다. 카메라로 힘껏 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는 애무와 같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존재들과 사물들의 표면을 스쳐가는 작은 움직임들이기 때문이다.

(중략) 어렸을 적에 끈으로 단단하게 신발에 잘 묶어서 신는 나무 스케이트가 있었다. 내가 스케이트를 잘 타게 되었을 때, 스케이트를 타는 것은 스케이트가 발아래서 거의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카메라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나는 카메라를 그저 내버려둔다. 초점을 맞추는 데도 전보다 아주 많이 편안해져서, 한순간 이미지를 흐릿하게 내버려두고, 다음에 아주 부드럽게 다시 잡는다. 그러면 마치 카메라가 가벼워진 것처럼 느껴지게 되고,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카메라 위로 사물들의 리듬이 다가오게 된다."


- 요한 반 데르 코이켄, [시선의 모험] 中


좋은 영화의 기준 중 하나로, '허구와 현실 간 원활한 호흡'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프레임 안에서 바깥으로, 또는 바깥에서 안으로의 자유로운 운동성 같은 것. 여기서 프레임 안은 영화 이미지 자체를 말하며, 프레임 바깥은 우리가 극장 밖에서 만나는 실제 세계, 즉 카메라가 마주하고 있었을 그때 그 시공간을 뜻한다. 요컨대 관건은 시공간에 놓인 어떤 리듬, 육안으로 감지하기 힘든 사물들의 심상을 카메라가 포착해내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이 가능할 때만 영화의 안과 밖이 진정어린 대화를 나눌만 한 거리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카메라를 일컬어 '살아있는 기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근래 내게 가장 와 닿았던 영화는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와 프랑수아 오종의 <타임 투 리브>와 다르덴 형제의 <아들>이었다).

글, 이를테면 영화평도 다르지 않다. 영화 또는 영화가 건진 현실을 글의 맥락에 얼마나 잘 녹여내느냐 하는 것. 한 편의 영화를 현실의 어떤 지점에 관한 고유한 '신호'라고 해보자. '그 신호 체계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와 더불어 해당 현실을 향한 글쓴이의 진심이 담긴 글' 정도를, 우리는 좋은 영화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지식이 아니라 정성과 열정이다. 글을 쓰는 데 정성이나 열정만큼 강력한 에너지원이 없을 뿐더러 그것이 결여된 글은 읽는 이에게 고문이 되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뜬금없기는 하지만, 내가 비교적 최근에 쓴 몇몇 멍청한 글들에 그 정성과 열정이 빠져있음을 반성하기 위함이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글의 어떤 부분은 민망함을 넘어 다소 역겹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글도 마음에 안 든다. 거참. ⓒ erazerh


반응형

'FRA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 영화' 그 지독스러운 아름다움  (0) 2009.01.14
나의 영화관  (2) 2008.08.03
영화는 영화다  (6) 2007.09.09
디워와 영화평론  (15) 2007.08.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