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 “만약 현실이 아름답다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가 보고 싶다. ‘그냥 영화’ 말고, 그 지독스러운 아름다움에 온몸이 짜릿하니 뜨거워지는 영화. 스토리가 매력적이더라, 이미지가 보기에 참 좋더라, 같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이를테면 살갗을 기분 좋게 간질여주는 데 그칠 뿐이다. 초보자의 뜨뜻미지근한 애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진짜 영화’는 내면 깊이 박힌 어떤 응어리를 찾아 건드린다. 날것의 자극. 그 느낌이 신경계를 타고 몸 구석구석으로 퍼질 때면, 생전 처음 맛보는 묘한 짜릿함에 영혼이라도 내주리라.


이 정도로 경이로운 느낌은 ‘감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와는 명백히 다르다. 저 깊은 곳의 응어리는 단지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만으로는 자극되지 않는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찾아 헤맨다. 진짜 ‘그 무엇’을 구하고자. 마침내 어떤 영화가 그 욕망에 정확히 호응했다면, 그것은 거기에서 ‘현실을 명쾌하게 꿰는 이미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세계가 현실이라는 진부한 장벽을 열고는 그 틈으로 마치 빛처럼 쭉 뻗어 나온 것이다. 유레카! ‘진짜 영화’의 발견. ‘영화-매체’라는 규격을 떨쳐낸 이미지는 그렇게 해서 내 머릿속을 활보한다. 다시 말하지만, 지독스럽게 아름답다.


이 마법 같은 경험은, 그러나 현실을 잠시나마 잊자는 판타지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현실로의 복귀를 전제로 하는 경유지에 가깝다. ‘진짜 영화’는 현실 너머의 가상현실로써 현실의 부조리한 구조를 도드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 내용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루는 영화의 그 태도가, 형식이, 고민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셈이다. 그래서 가슴이 후련하게 뻥 뚫리는가 싶다가도, 이내 뭉클해진다. '진짜 영화'는 그렇게 고단한 영혼을 매만질 줄 안다.


어찌 보면 몹시도 이기적인데다 참 쓸 데도 없는 욕망이다. 그저 앉아서 보기만 하면 되는 주제에 바라는 것도 참 많다. 그것도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하지만 나는 ‘진짜 영화’를 향한 갈증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만들기라는 꿈을 실현하지 못한 자에게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결핍이, 그런 식의 갈구를 부추기는 탓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그 결핍이 유난히 기승을 부린다. 아마도 현실이 아름다워 영화가 사라지더라도, 영원할 녀석.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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