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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을 포함해 '계급'을 소재로 삼은 영화 중 어느 것도 끌로드 샤브롤의 <의식>(La Ceremonie, 1995)에는 근처도 못 가고 있다는 게 내 생각.
그러니까 어느 수준이냐면, <의식>은 일단 계급구조를 끊임없이 드러내되 그 안에 감정을 집어넣지 않는다. 약자·여성·연대 따위의 유행어 같은 키워드가 들어설 공간 자체가 없다. 세상은 물론 불합리하지만 이 영화에서 불합리는 위에서 아래로만이 아니라 역으로, 또는 옆에서도 스멀스멀 흐른다. 그러다 보니 두 여성의 전복적 행위에 가치가 매겨지지 않으며 사건은 말 그대로 '돌출'된다. 관객 입장에서는 사건을 예측하거나 사후에 원인을 지목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포착 가능한 건 잠재된 악의, 얄팍한 명분, 세계 곳곳의 불안한 공기 정도. 즉, 설.명.할 수 없음. 그런데 이 '설명 못 할 불쾌함'만큼 역으로 세상을 명쾌하게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또 있을까.
이렇듯 <의식>은 계급을 다루되 '계급의 수직성 부각'이나 '공감 유도' 같은 기존 틀을 아득히 넘어 섦으로써, 오히려 본질에 대한 큰 그림을 꿈꾼다. 걸작이 걸작인 이유. 30년이 다 된 영화지만 여전히 가장 새롭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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