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얼굴로 태어나서일까. 벤자민의 삶은 양로원에서 시작한다. 죽음이 일상인 그곳. 벤자민이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소멸’에 익숙해지는 것은 필연이다.

삶이란, 나이 먹음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점점 더 많이 목격해야 하는 것. 그러면서 내 죽음에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 그렇게 두려웠건만 피할 길은 ‘죽어도’ 없더라. 우리가 태어나던 그 순간에, 아마도 우리의 죽음 또한 세상에 함께 나왔으리라.

그런 점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거의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소멸의 불가피성을 어떤 선순환 체계의 원리인 양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영화적 태도 덕분이다. 데이빗 핀처의 최고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죽음을 둘러싼 아픈 시간들을 달래주는 몇 장면은 무척 매혹적이었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까 일찍이 ‘사랑하면서 살라!’는 이야기. 가슴 아플 수는 있어도, 땅을 치고 후회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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