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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화 <시>(2010)에서 미자가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하는 숏이 참 좋다.
“미자야 이리와”라며 부르는 언니, 그 손짓, 반쯤 쳐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내가 정말 예쁘구나”라고 생각하는 서너 살의 미자. 그리고 그 생애 최초의 기억을 부여잡고픈 예순여섯의 미자.
영영 오지 않을 순간, 그러나 오지 않음이 명백해질수록 우리 뇌는 그 시간을 더 자주, 이토록 참 잔인하게도 불러낸다. 시간이 만든 간극과 그 가슴 시림을 이 숏만큼 정갈하게 담아낸 이미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10년, 놀랍게도 영화 <더 파더>(2020)의 최종 씬이 그 가슴 시림 비슷한 걸 다시 한 번 전해줬다. 내 우주가 뭉개져 점이 되고 끝내 무(無)가 되는데, 수치스럽게도, 그에 따른 수치심과 분노와 당혹감마저 명멸하다 이내 증발해버리는 간접의 지옥.
“모든 게 괜찮을 거예요.”
텅 비어버린, 오직 원형으로서의 포근함만을 갈구하게 된 머릿속은, 저주에 걸린 것 같지만, (실은 말이야)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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