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이미지의 세계는 상영이 끝남과 동시에 부재하게 되지만, 현실 세계로 투사할 수 있는, 이미지의 흔적은 계속해서 우리 곁에 남기 마련이다. 이미지의 무게중심이 사물 및 현상의 속성 또는 그 자체를 어떤 형태로든 '재현'하는 데 놓인 경우, 관객이 던지는 질문이 현실 속 ‘내재하는 모호함’에 근접할 가능성은 좀 더 높아지게 된다. 그 질문들은 모호한 현실을 모호하지 않게 만들 수는 없을지언정, 모호함을 인식 가능한 지점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용한 가치를 지닌다.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는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소유하지 못했던 한 여자에 관한 영화다. 나나(안나 카리나)는 배우를 향한 꿈을, 낭만적인 사랑을, 소통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버리지 않았지만, 현실을 지배하는 두 가지 법칙(자본, 남성)은 비열하게도 그녀의 꿈이 아닌 육체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다. 나나의 몸은 '소비'의 대상이 되고, 꿈은 저 멀리 달아난다. 폐기되는 영혼. 고다르는 나나의 짧은 인생을 12막으로 조각내고는, 조금씩 비틀어지는 삶의 균열을 각각에 담아낸다.

'사물을 거기 있는 그대로' 비추는 카메라는 관객이 영화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나나가 대화 도중 슬쩍슬쩍 관객의 눈을 쳐다보는 장면, 거리를 걷는 나나를 프레임 밖으로 스치듯 내보내는 장면, 대화하는 남녀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미장센 등은 관객에게 '지금 영화를 보고 있음'을 문득문득 환기시키며, 고다르의 의도(눈물보다는 고민)를 명백하게 해준다. '영화임을 깨닫는다는 것'은 마치 이상을 그리다가도 자꾸만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나나의 비극적 운명과 닮았다. 물론 이는 꿈을 바라보다가 현재의 초라함 앞에서는 서글퍼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비브르 사 비>의 잔상은 현실 속 모호함과 겹쳐진다. 모호함을 풀어낼 수는 없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낯선 세계는 언제나 낯설 테고, 누군가에게는 자본주의가 폭력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생각은 해야 하고 길은 찾아야한다. 그런데 만약, 가고자했던 길을 갈 수 없다면, 그 슬픔을 애써 억눌러 놓았다면, 그 순간 <비브르 사 비>를 본다는 것은, 과연 축복일까.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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