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던 유형의 부모. 자식에게 '잘 나가는' 직업(판사, 변호사, 의사 따위)의 길을 강요하는 부모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수직 정렬된 직업군에 사람이 '끼워 맞춰지는' 현실에 내가 놓여있다고 해서, 내 아이 앞에 있을 무한한 가능성마저 제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요 며칠새 생각에 변화가 왔다. 가능하다면, 소위 그 잘 나가는 직업군으로 아이를 유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물론 강요 따위는 없도록 해야 겠지만.

자본 서열의 저 남단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시스템은 곧 거대한 불합리다. 이것을 반복 학습해야 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이런 따위의 좌절감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부술 수 없다면, 그나마 덜 부서지는 쪽이 낫다. 불합리를 '아는 것'과 '겪는 것'의 간극을 새삼 깨닫는 요즈음, 조금은 힘에 부친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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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유무가 나누어 놓은 구획. 이 구분법에 따르자면, 나는 꽤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일 것이다. 솔직히 두렵다. 이곳을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구분의 존재 자체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렵다. 물론 나 혼자라면 겁 따위 내지 않을 테다. 하지만 다음 세대, 즉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내 아이에게 이 구분법이 확장 적용되리라 생각해볼 때면, 정말이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사는 수준'과 관련된 차별을 아이가 겪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쉽사리 용인되는 풍토에서라면, 나는 도대체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나아가 '가난한 사람은 그만큼 노력을 덜 했기 때문' 등의 무한경쟁을 추동하는 명제들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내 아이만이라도 건져낼 수 있을까, 같은, 소심하고 이기적인 걱정들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오히려 이 악물고 자본의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는, 더 빨리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남의 머리를 밟게 될지도 모를, 미래의 '나'이다. 그러니까 온갖 치장을 한 채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저 껍데기들과 조금씩 닮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썩은 게 더 이상 썩은 게 아닌 시대, 바야흐로 나와 내 아이가 가야할 길을 보다 치열하게 다잡아 놓아야할 때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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