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던 유형의 부모. 자식에게 '잘 나가는' 직업(판사, 변호사, 의사 따위)의 길을 강요하는 부모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수직 정렬된 직업군에 사람이 '끼워 맞춰지는' 현실에 내가 놓여있다고 해서, 내 아이 앞에 있을 무한한 가능성마저 제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요 며칠새 생각에 변화가 왔다. 가능하다면, 소위 그 잘 나가는 직업군으로 아이를 유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물론 강요 따위는 없도록 해야 겠지만.

자본 서열의 저 남단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시스템은 곧 거대한 불합리다. 이것을 반복 학습해야 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이런 따위의 좌절감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부술 수 없다면, 그나마 덜 부서지는 쪽이 낫다. 불합리를 '아는 것'과 '겪는 것'의 간극을 새삼 깨닫는 요즈음, 조금은 힘에 부친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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