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가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아니 가고야 말았다. 그의 스타일은 이제 스타일을 넘어 어떤 이즘(ism)이 됐다. 영화 <인랜드 엠파이어>는 ‘린치 월드’라 불리던 모든 것들의 총체이자, 이질적인 무엇으로의 분화다.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그렇듯, <인랜드 엠파이어> 역시 쪼개진 영혼과 흐트러진 사건들에 관한 영화다. 하지만 데이빗 린치는 내러티브에 ‘어떻게’ 균열을 낼 것인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듯하다. <인랜드 엠파이어>에서 균열은 현실의 갈라진 틈으로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접근 가능한 독립된 세계다. 따라서 카메라는 더 이상 현실의 벌어진 틈을 찾고 비집고 확장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요컨대 데이빗 린치는 현실을 경유하지 않은 채 균열이라는 시공간 자체로 결국은 몸소 들어왔으며, 카메라는 그저 균열이 또 다른 균열과 만나고 충돌하고 또 융합하는 과정을 좇을 뿐이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몽롱하게, 대체적으로 자유롭게. 물론 여기에는 사건을 논리적으로 재배치할 만한 그 어떤 가능성과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가해의 집합소 같았던 두 작품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차라리 친절해 보이는 이유다.

<인랜드 엠파이어>는 해체된 것들을 해체된 플롯으로 엮은 매우 ‘어지러운’ 영화다. 꿈과 꿈이 꿈속에서 뭉쳐진 듯한, 마치 거대한 무의식 덩어리 같은 느낌. 그것이 무엇이든 어지럼증에 잠식당하기 싫다면 일단 뇌를 잠시 내려놓으시라. ‘본다는 것‘에 관한 이 완전하게 새로운 경험은,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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