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매력은 주인공 피터 파커가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라는 데 있다. 짝사랑 때문에 생긴 상처 따위 그저 혼자 아파하기만 할 뿐인 소심한 성격의 피터는, 게다가 밀린 방값에 늘 시달릴 정도로 재정상태도 열악하다. 피터의 변신은 그래서 더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스파이더맨이 된 피터가 드높은 건물 사이에서 그리는 아찔한 상승-하강 곡선은, 별 볼 일 없음으로부터 탈주를 꿈꾸는 또 다른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에게, 오감을 자극하는 스펙터클이 되어주고도 남는다.

스파이더맨의 능력 또한 히어로 치고는 평범한 수준이다. 수퍼맨처럼 하늘을 지배하지도, 배트맨처럼 자본으로 무장하지 못한 그는, 겨우(?) 거미줄에 몸을 맡긴 채 곡예를 펼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는 스파이더맨과 피터 사이, 또는 히어로로서의 길과 소시민적 행복으로의 길 사이에서 지리한 줄타기를 벌이는 그에게, 잘 어울리는 능력치이기도 하다. 2편에서의 전철 시퀀스. 제어할 수 없게 된 전동차를 스파이더맨이 100% 수동으로 기어코 멈춰 세운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승객들은, 가면이 벗겨진 채 혼절해버린 스파이더맨-피터를 보고 술렁인다. "그냥 평범한 청년이잖아.", "내 아들보다도 어려." 그리고 그들은 피터를 데려가려는 닥터 옥토퍼스를 감히! 막아선다.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에 놓인 여린 청년의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에 지쳐 잊고 지냈던 '용기들'을 꺼내도록 만든 것이다. 아마도 '히어로 같지 않은' 이 히어로가 멋져 보이는, 시리즈 통틀어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가 아닐 런지.

<스파이더맨 3>의 문제점은 그런 스파이더맨이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전작까지의 고민은 싹 잊은 것일까. 피터는 스파이더맨의 슈퍼스타화를 누리고 즐기는 경지에까지 (너무도 급작스럽게) 도달해버렸다. 영화 속 갈등은 더 이상 '우연히 얻게 된 힘'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나도 충분히 나쁠 수 있다'라고 항변하는 듯한, 피터의 이기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피터 내면의 어두운 면을 다소 무리하게 작동시킨 탓일까. 그의 감정 변화는 새롭기 보다는 당황스럽다. 안 그래도 따로국밥 같던 각종 캐릭터 및 서브플롯은, 그런 '얼간이' 피터가 쥐락펴락하는 대로 휘둘려야 하는 관계로, 결국 개연성을 잃고는 그저 소모되는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너무 늦게 나타나 너무 빨리 가버리는 베놈. 피터와 굳이! 화해하는, '배트맨이 될 수도 있었던' 해리). 물론 후반부 화려한 태그매치 등은 다음 시리즈를 향한 기대를 품게도 해주지만, 안타깝게도 2편 감상 후 3편을 기다릴 때의 그 마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 erazerh


# 피터는 '별 볼 일 없는 녀석'이기만 해도 충분했다. 굳이 '돌+아이'가 될 필요는….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