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더 일해라’

영화 <우아한 세계>의 주인공 강인구(송강호)는 폭력과 배신과 약육강식의 현장 한 가운데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게다가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한 대가(?)로, 그의 배는 누군가의 칼이 호시탐탐 노리는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린 상황. 위태와 권태 사이를 오가던 하루하루는 결국 사태를 눈덩이처럼 불려서는 강인구를 그 속으로 밀어 넣고야만다.

이기적인 욕망과 그에 따른 사투로 흘러가는 세계. 느와르가 곧잘 다루는 공식인 ‘파멸로 이르는 외길’은 <우아한 세계> 속 조폭 세상에도 그렇게 자리 잡고 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강인구가 자꾸만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것이 장르적으로 타당한 수순인 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을 느와르의 외피만으로 뭉뚱그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인구의 행보는 장르 특유의 음울한 포장이나 세계의 본질로서의 비극성 따위와는 별 상관없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다른 가장처럼 생계에 관한 고민으로 가득한 강인구는, 오직 ‘살림의 완성된 단계’를 향해 움직일 뿐이다.


이처럼 <우아한 세계>에는 조폭이라는 집단성과 생계라는 대중적 고민이 동시에 존재한다. 느와르의 흐름을 크게는 유지하면서, 그 흐름의 근원을 ‘잘 먹고 잘 살아야한다는’ 1차 집단적 강박에 두는 셈이다. 그 덕에 강인구를 둘러싼 상황이 장르적 평면성의 함정을 비껴나 보다 입체적인 형태로 부풀어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상황이 입체적이라 함은 곧 강인구가 시달려야하는 고충들이 여러 겹임을 의미한다. 언제부터인가 강인구는 ‘내 가족과 함께 보다 좋은 집에서 보다 잘 먹는 것’이 ‘우아한 세계’라는 자본주의의 공식에 익숙해져왔을 것이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조폭으로서의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최선을 다해온 강인구. 그러나 우아한 세계의 구축을 향해 불철주야 뛴 결과로, 그는 우아함의 자격을 잃게 되고 또 다른 시련을 감내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먹고 먹힘’으로 진행되는 조폭 세계는 이 땅에서 살기 위해 용쓰는 것 자체가 우아한 관점에서 볼 때 그다지 아름다운 형상은 아님을 (‘아름답다 아름다워’라는 반어법) 강조하는 수단일 터. 어디까지나 ‘럭셔리’를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환상은 세상에 찌든 강인구라는 ‘사람’을 버리고는, 돈 버는 ‘기계’로서의 강인구를 그 빈자리에 앉히기에 이른다. 인간을 편의에 따라 분류하거나 도구로 치환하는 일이 가족 사이에서마저 벌어지는 풍경. 우아한 세계라는 판타지와 가족애라는 판타지는 그렇게 뒤엉키고, 한 남자의 사투는 그것들의 자양분으로 활용될 뿐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그 비정함은, 강인구에게 또는 우리에게, TV를 통해 오늘도 내일도 웃으며 말을 걸어올 테다. 열심히 일한 당신, 더 일하라고.


생활 누아르와 송강호라는 배우

영화 <우아한 세계>는 스스로를 ‘생활 느와르’라는 복합명사로 부른다. 사실 우리가 ‘생활’이라 부르는 단어 밑에는 꽤나 많은 사건과 그에 따른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희극과 비극을 수시로 넘나들며 생성되는 변화무쌍한 표정들의, 무한한 조합. 우리네 일상생활의 본질은 바로 그 조합에 있지 않을까. 따라서 ‘생활 느와르’를 표방한 <우아한 세계>가 생활을 웃음과 슬픔이 오가는 폭넓은 이야기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물론 그 독특한 장르용어의 활용은 송강호라는 배우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송강호는 울면서 웃을 수 있는, 혹은 웃으면서 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왼발은 비극 오른발은 코미디, 그냥 걷는 리듬으로 찍었다”는 <괴물> 또한, 송강호의 그러한 이미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미 여러 곳에서 언급됐듯이, 강인구라는 인물에서는 그간 송강호가 선보였던 캐릭터들의 흔적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후반부 노 회장과 조우했을 때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죽긴 죽었는데, 살았거든요?”라는 말하는 <괴물>의 박강두와 닮았고, 모든 상황이 뒤엉켜 벽에 부딪혀버렸음을 실감하는 표정은 <살인의 추억>에서의 박두만의 얼굴과 겹쳐진다. 또한 가차 없는 행동력과 안 풀림에도 무던히도 애쓰는 모습은 각각 <복수는 나의 것>과 <반칙왕>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무식하면서 용감하다는 점에서 강인구는 <넘버 3> 조필의 나이 든 버전이다.

이러한 필모그래피의 추억은 일견 배우 이미지의 동어반복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강인구에 배인 송강호의 과거는 단지 나열되는 데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우아한 세계>에서의 송강호‘들’은 서로 충돌하고 또 한데 어우러지면서, 삶의 복잡다단한 리듬을 살아있는 표정으로 옮겨낼 줄 아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그 생생함이 스크린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순간, 송강호라는 배우는 피곤한 대한민국 서민의 ‘몸-얼굴’로 비로소 녹아들게 된다. 비록 오늘은 울더라도 내일은 웃고 싶은, 그래서 여전히 ‘생활’의 현장 한 가운데에 서있는 바로….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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