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넘버 23>은 크게 세 가지 플롯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월터 스패로우(짐 캐리)가 자신의 삶과 숫자 23 사이에 어떤 비밀스러운 관계가 있음을 깨달아 가는 현실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월터 머릿속에서의 재현을 통해 현실에 미스터리의 점증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소설 넘버 23'의 세계다. 나머지 하나는 그 두 플롯이 어떤 영문으로 얽힌 것인지를 누군가가 회상과 고백으로 밝히는 결말 플롯.

이렇듯 <넘버 23>은 23이라는 숫자에 미스터리를 부여하고 그 근원을 추적함으로써 흐름을 생성하는 영화다. 따라서 현실과 소설이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이나, 톱시 크레츠(소설의 지은이)라는 의문의 존재가 부각되는 것은 다소 진부하되 장르적으로 타당한 수순. 문제는 영화 스스로 던진 미스터리적 요소가 정작 절정의 해소에 이르러서는 증발해버리는 데 있다.

한창 달아오른 긴장감을 미적지근한 교훈조로 마무리하는 솜씨야 감독이 조엘 슈마허임을 감안해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플롯의 핵심인 숫자 23에 관해 영화가 내놓은 결론은 빈약하다 못해 게을러 보이는 수준. <넘버 23>은 불운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언급, 23이라는 숫자에 드리운 어떤 운명으로서의 거대한 기운에 한발을 담근 채 전개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의 빈곤 때문인지 그 기운을 엉뚱하게도 개인의 강박이라는 틀에 가두는 탓에, 꽤 괜찮은 소재인 숫자 23은 결국 거대한 맥거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용도 폐기되고 만다. '어처구니없는 영화'란, 바로 이처럼 감당할 생각도 없는 소재를 일단 가져다 쓰고 보는, 무책임한 영화를 일컫는 말이 아닐까. ⓒ erazerh


# 조엘 슈마허는 역시 조엘 슈마허, 넘버 23은 역시 마이클 조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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