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엑소시스트, 배트맨, 수퍼맨, 007, 한니발. 프리퀄은 더 이상 새로운 경향이 아니다. 영화들 자체도 전작의 시덥잖은 답습이거나 추억 불러내기에 그치기 일쑤다. 기원 더듬기를 통한 새로운 조망보다는 일종의 통과의례이자 서비스가 된 듯한 프리퀄. 전설의 살인마 레더페이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역시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른 시대의 도래를 용납하지 않은 채 피로써 제 영역을 공고히 하려는 미친 아버지, 괴물의 얼굴을 한 무식하고 힘 센 살인마, 낯선 곳에서 난도질당하는 젊은이 등은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한 설정들이다. 74년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에 시대의 음습한 공기가 담기도록 도움을 주었던 그 인물상들이, 지금은 호러의 고전 기법으로 인식되기 때문일 터. 물론 그 아이콘들을 나름의 변주로써 훌륭하게 활용한 사례는 심심찮게 발견되지만, <텍사스~비기닝>의 경우 그것은 안정적 속편으로서의 전략에 가깝다. 아이콘들의 생성 이유나 배경을 파고들었다면 더 좋지 아니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잔혹함은 상당한 수준. 살인 자체보다는 상황이 참 고약하다. <하우스 오브 왁스>에서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애인의 얼굴과 마주하고, <힐즈 아이즈>에서처럼 무방비로 성적 폭력을 경험하지만, 그 영화들과 달리 <텍사스~비기닝>의 희생자들은 복수 근처도 가지 못한 채 비극적 최후를 경험한다. 그 미친 살인극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먹먹함. <텍사스~비기닝>이 남긴 거의 유일한 (그래도 꽤나 묵직한) 호러로서의 미덕이 아닐 런지.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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