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영화에서 젊은 남녀가 낯선 공간으로 들어갔음은, 이후의 플롯 - 살인마의 난도질을 둘러싼, 죽고 죽이기에 관한 풍경들 - 을 충분히 예측 가능하도록 만든다. 호주산 슬래셔 <울프 크릭> 역시 그런 전통을 골격으로 삼는다. 젊은이들은 외진 곳을 향하며, 거기에는 불길한 조짐이 있으며, 아니나 다를까 한바탕 살극은 어김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려는 진짜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점에서, <울프 크릭>은 기존 슬래셔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양새를 한 영화가 된다. 긴장의 수위를 쥐락펴락 조절하거나 살인의 방법을 다채롭게 클로즈업하는 데에, <울프 크릭>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화가 방점을 찍는 곳은 바로 희생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다. 공포와 비통과 필사적인 생존본능이 뒤엉킨 바로 그 얼굴들. 평범했던 여행길이 악몽의 시공간으로 바뀌었음은, 살인의 순간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최대치가 새겨진 그들의 얼굴이 핸드 헬드로 흔들릴 때, 비로소 선명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스스로 포스터를 통해 밝히고 있듯이, <울프 크릭>은 일종의 '콜라주'(collage)다. 비명 섞인 얼굴의 희생자들과 비열한 웃음의 인간사냥꾼(평온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박제된 시간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는, 사냥을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할 줄 아는, 극렬 마초/미친 아버지)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악몽의 콜라주.

낯선 공간/사람을 '위험'으로 환원하는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울프 크릭>이 빼어난 호러인 이유는, 아마도 그 콜라주에 진하게 베어 있는 현실의 그림자 때문이 아닐까. ‘살인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비단 호주에만 살지는 않을 거라는, 바로 그 현장감말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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