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유지를 위한 소수의 배타적 독선과, 대중 주변을 떠돌아다니는 눈먼 두려움의 공포스러운 결합. <사일런트 힐>은 그 광기가 불러낸 지옥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일종의 복수극에 관한 영화다. 순수 악(?)은 인간의 위선적인 악을 손수, 그것도 즐기며 징벌해주지만, 거기에는 역시나 응당한 희생이 따르는 법. 결국 '복수는 가능하되, 구원은 불가능하다'라는 고유의 법칙은 지켜지고, 악의 세력은 사일런트 힐 너머까지 확장된다.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인 만큼, <사일런트 힐>의 서사는 주로 공간의 이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학교나 호텔, 병원 등 일상적 장소들은 잿빛과 핏빛의 경계를 넘나들며, 음울한 판타지의 무대라는 역할을 게임 못지않게 충실히 수행해낸다. 팽팽히 유지되던 수수께끼 가득한 긴장과 공포가 후반부의 설명들 때문에 다소 느슨해지기는 하지만, 영화 속 세계관이 꽤나 모호한 탓에 이러한 부연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겠다 싶기도 하다(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은 마치 게임을 클리어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 펼쳐지는 잔혹하고도 웅장한 복수 시퀀스가 마음에 드는 바, 올 해 본 호러물 중 <담배자국>, <디-데이>와 더불어 최고로 꼽고 싶다. 게임원작 중에서는 단연 역대최고(물론 <레지던트 이블>도 있다만).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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