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다시 돌아온 9월 11일. 그러나 현대사를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대립의 정치학이며, 세계에 펼쳐진 간극은 '비극을 낳아왔음'을 잊어버린 채, 공포의 재생산과 확대를 통해 또 다른 악몽을 연신 창조해댄다. 물론 사건 배후와 조작 여부에 관한 각종 의혹 또한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지긋지긋한 파괴자들.

<플라이트 93>은 각종 정치적 욕심들이 쳐놓은 장막, 그 흙탕물 같은 수사를 걷어내고는, 혼란으로 각인된 9ㆍ11 당시의 시공간만을 한정적으로 스크린에 옮긴다. 유일하게 '임무'에 실패한 항공기 '유나이티드93'과 미연방항공국, 관제 센터를 오가는 핸드 헬드의 향연은, 비극에 휩싸인 표정들의 면면을 엮어서는, 승객과 승무원, 테러범(이라 일컬어지는) 등 모두가 겪었을 현장의 고통을 생생하게 증언해낸다. 어떤 특정한 정치적 방향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상처를 뒤덮은 수많은 잡소리 대신 그들의 잊혀진 기도에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는 점에서, 그래서 새로운 출발점을 누군가는 찾아 나서길 희망한다는 점에서, <플라이트 93>은 오히려 정치적 사유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영화가 된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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