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햇살 한 자락이 한 남녀를 살짝 보듬고는 마당 구석진 곳에 유유히 떨어진다. 놀랍게도 그 별 볼 일 없는 곳에서 비밀스럽되 소중한 공연 하나가 펼쳐진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로 어울릴 듯 말 듯, 작게 일렁이고 또 속삭이는, 풀들의 그림자. 영화 <밀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 숏은, 새로이 시작될 시간에 관한 징후이자 그 자체로 한 편의 아름다운 시다. 영화가 사물의 존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2. 하지만 이 훌륭한 숏에도 불구하고, 나는 <밀양> 자체에서는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취향이 아니라고 해두자. 이창동의 최고작은 아직도 <초록물고기>, 전도연의 최고작은 여전히 <해피 엔드>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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