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암시 有


수퍼맨이 돌아왔다. 남성임을 확연히 드러내주는 겉팬티를 다시 착용하고서.

물론, 겉팬티 복장이나 당황스러울 정도의 수퍼 파워, 동일 인물임이 정말 분명한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주변인들, 중요한 순간에 여전히 바보 짓하는 악당들 등은 어디까지나 그가 '수퍼맨'이라는 점과 만화적 상상력의 적극적 활용이라는 면에서 충분히 즐거운 대목이다. 존 윌리엄스의 웅장한 테마(여전히 스타워즈의 그것과 엉켜버리곤 하는...)가 소환해낸 추억의 오프닝은 거의 감동 수준.

예상대로 영화는 악의 유혹에 취약한 인간을 구원해주어야 한다며 줄곧 선민사상을 설파하고, 그것은 (부시의 한심한 노선과는 다소 다른) 미국 중심의 오만한 세계관을 연상케 한다. 어쨌거나 수퍼맨은 파란 쫄쫄이 입은 미국 국적의 백인 예수인 셈. 그러나 수퍼맨이 '구원'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을 정도로 탁월한 초능력을 지닌 데다, 수직의 꼭대기에 서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존재임을 감안한다면, '초월적 휴머니스트로서의 수퍼맨'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설정으로 보인다(적어도 <엑스맨3>보다는 덜 불편하다). 물론 신의 시점에서 바라보기나 악의 무리 명확하게 골라내기 등의 능력과 무관한 자가 수퍼맨인 척하는 건 심히 곤란하겠지만.

한편, 수퍼맨이 지닌 초월자로서의 존재감은 로이스와의 관계에서도 작동하는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형적인 가부장의 틀로 짜이고, 로이스의 판단은 전적으로 수퍼맨의 행동력에 일단은 예속되었다가 나오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영화가 불편해지는 때는 바로 그것들이 한데 묶여서는 순수한 로맨스로 통칭되어버리는 지점들이다(로이스로 하여금 논문 주제를 정하거나 라이터 불을 붙이고 끄도록 만드는 힘은 그녀 자신의 의지나 사고력보다는, '수퍼맨이 여기에 있느냐/없느냐' 그 자체에 기인한다).

영화 끝무렵, 5년 간 말없이 사라졌던 '잘 난 남자'는 "항상 곁에 있겠다"는 말만을 던지고는 다시금 '큰 일'을 위해 밤하늘 어딘가로 날아오르고, '아임 유어 파더'로 계승되는 종족보존의 본능만이 얼굴을 가린 채 로맨스의 모호한 후일담을 기약한다. 물론 항상 그녀 옆에 있을 사람은 수퍼맨이 아닌 클라크이거나, 너무 강한 연적을 만나 모든 걸 내어줘야 했던 불운한 한 남자일 테지만.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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