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 부부인 질과 마리옹이 이혼 절차를 밟는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마지막 섹스, 아니 강간. 무엇 때문에 부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전히 관계의 폭력적인 망 안에 머무른 채 상처를 주고받아야 했던 것일까. 프랑수아 오종은 이혼에서부터 첫 만남까지를 묶은 5개의 에피소드를 시간 역순으로 전개, 그처럼 어긋난 양상이 드러났던 순간들을 하나둘 더듬어간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바닷가에서의 첫 만남. 물론 질과 마리옹에게는 애초에 어긋남이 존재하지 않았던 설렘의 시공간으로 그 만남이 이해되겠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내러티브 덕에 관객은 그 설레는 마지막 에피소드를 어긋남의 '축적'과 동일한 맥락 안에서 목격해야 한다. 때문에 해변에서의 첫 만남에는 가장 행복해야할 시간이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도, '일그러지게 될' 관계의 태동이라는 비극적 의미 또한 포함되는 셈이다. 바다 한 가운데서 서로를 바라보는 질과 마리옹의 얼굴을 작은 '두 점'으로 포착하는 마지막 롱숏이, <사랑의 추억>에서의 마지막 '두 점'과 유사한 구도를 지니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테다. 관계의 망으로 포섭되기를 희망하는 인간들. 바다는 따스한 이미지로써 그들을 유혹해 아름다운 만남을 선사하지만, 그 포용력 아래에는 관계의 비극성을 잉태하는 치명적 덫으로서의 속성 또한 도사리고 있다. 오종은 역시나 오종이다.

사랑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지만, 현실은 인간을 지속적으로 실험하며 사랑에 균열을 초래하고는 한다. 정말로 인간은 불온한 존재일까. 아니면 관계의 전개 그 자체가 불온한 것일까.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다. 물론 그 답을 찾기 시작한 <타임 투 리브>는, 그래서 더더욱 반갑지만.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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