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정말 확실하게 믿는 것 같다. 카메라의 역할은 ‘주목받지 못했던, 세상의 측면을 감지케 해주는 것’이라고.

그의 전작 <시티 오보 갓>은 빈민촌 시티 오브 갓의 폭력적 공간성과 그 순환하는 연대기에 관한 영화였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시티 오브 갓>을 통해 리우 데 자네이루의 악랄했던 시공간을 역동적 플롯으로 과감하게 스크린에 되살렸고, 고발의 리얼리즘을 희망했던 전투적 카메라는 구석진 세상에까지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콘스탄트 가드너>를 통해 제3세계(라 불려야 하는)라는 외진 공간으로 다시 한번 관객의 시선을 끌어 모으려 한다. <시티 오브 갓>이 기억되지 않는 시공간과 인물을 성장기의 틀을 빌려 환기시켰다면, <콘스탄트 가드너>는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강대국 자본이 아프리카를 어떻게 유린하는지를, 슬픈 로맨스와 장르적 내러티브의 얼개 안에서 이미지화하는 작품이다.

물론 현란하면서도 순간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카메라 움직임이나 리얼리즘에 감정을 실어내는 탁월한 숏들은 여전하다. 이를 테면, 사리사욕에 관한 썩은 대화들이 오가는 넓은 골프장과, 지붕이 다닥다닥 붙은 갑갑한 공간을 순식간에 같은 프레임 안에서 붙여버리는 장면. 물론 그러한 숏들을 만들어내는 힘은 누군가의 테크닉이 아니라, 스크린 밖 현실 자체일 테지만.

<시티 오브 갓>이 그랬듯이, <콘스탄트 가드너>는 장기지속하는 역사의 한 그물망이 되기를 꿈꾸는 영화다. 서방세계 중심의 논리가 여기저기 매체에 깃들어 죽은 진실을 전달하는 동안,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다시금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 아프리카에 관한 거짓 신화들을 하나하나 해체한다. 그러고는 외친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물론 이것은 픽션이다. 그러나 때때로 픽션은, 취약 지대에 놓여 잘 보이지 않는 진리를, 눈과 마음으로 더듬을 수 있도록 구조화시켜주고는 한다. <콘스탄트 가드너>의 힘은 바로 그런 데서 나오는 것이다.

부조리한 현장을 이미지로,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인식의 틀을 넓히는 데 단초가 될 수 있다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간절한 믿음을 나 역시 믿고 싶다. 당장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지금 그곳(들)은 이렇게라도 기억되어야 하니까. ⓒ erazerh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