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폭력의 땅에 동화되는가


폭력의 이미지는 영화 안에서 줄곧 재현되어 왔다. 현실에 깔린 구조적 모순을 은유하는 기재로, 인간의 억압된 분노가 표출되는 방법으로, 때로는 악을 응징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로 등장하며, 폭력은 영화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꾸준히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왔다. ‘영화 속 폭력이 현실에서 범죄로 반영된다.’와 ‘영화는 현실에 만연한 폭력을 재현할 뿐이다.’ 등 영화 내 폭력에 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폭력의 이미지가 어쨌든 한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키워드로 기능할 수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와 카티아 룬드가 감독한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은 폭력의 끔찍한 연쇄반응, 혹은 총과 마약이 어떻게 한 공간을 지배해 가는가에 관한 매우 직설적인 이야기다. 영화는 60, 70년대 리우 데 자네이루의 빈민촌 ‘시티 오브 갓’을 배경으로 한 파울로 린스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삼는다. 변두리라는 공간에 갇힌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시티 오브 갓>은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증오>가 세 녀석의 그 대상조차 찾지 못하는 ‘증오’를 통해 폭염처럼 답답한 세상 풍경을 묘사했다면, <시티 오브 갓>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소년들을 좇으며 분노의 대상을 애초에 잘못 선택하도록 길들이는, 변두리에 내재된 광기를 들여다본다. 탈출구가 없는 이 광기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그대로 전염된 채 끝 모를 순환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시티 오브 갓>은 스스로를 깨부수고 추락하는 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도시에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하는 건실한 평화주의자가 복수의 칼을 가는 갱스터로 변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비리로 얼룩진 경찰은 ‘시티 오브 갓’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마약은 환각제가 아니라 마치 소금과도 같은 생활필수품일 뿐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아이들끼리 죽이고 죽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매일 반복되지만, 그 원인을 아는 사람도, 알려고 하는 사람도 이제는 없다.

카메라는 실존했던 인물들 각자의 시각에서 그곳을 바라보며, 도시의 변두리가 결국은 폭력과 마약의 신에게 점령당했음을 낱낱이 들추어낸다. 개인 차원에 소제목을 붙이고 에피소드를 전개하는 이러한 현장감 넘치는 화법은 아이들이 어떻게 폭력의 땅에 동화되고 파멸되어 가는지를 세밀하고도 역동적인 플롯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승자만을 바라보는 ‘경건한’ 역사들이 고의적으로 배제해온 숨은 진실을, 영화적으로 드러내는 데 매우 적절한 방법이다. 시간과 공간에 갇혀버린 아픔을 살아 꿈틀거리는 형태로 끌어내 관객의 눈앞에 펼쳐내는 것, 바로 영화 <시티 오브 갓>의 미덕이다. 때문에 빈민촌을 만들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폭력의 실체가 극중에서 굳이 언급되지 않았어도, 관객은 상위에 자리 잡은 구조적 폭력을 비판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지닐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소외된 민중을 주체로 삼는다는 점에서 <시티 오브 갓>은 60년대 영화운동 ‘시네마노보‘의 계보 위에 놓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네마노보는 군사정권의 개발전략에 따른 빈부격차, 그 굶주림과 불확실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며 ‘새로운 브라질’을 갈망했던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영화운동을 말한다. 비전문배우를 쓰고 실제 현장을 무대로 활용하는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부터 소외된 사람들로 눈을 돌릴 줄 아는 정서까지, <시티 오브 갓>은 궁극적으로 시네마노보의 노선과 추구하는 바가 같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시네마노보가 시도했던 이성적 접근법 외에 나름의 감정적 호소력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경쾌한 삼바리듬을 동반한 채 장르영화로서도 뛰어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는 <시티 오브 갓>이 보다 많은 대중과 소통 가능하도록 진화한 형태의 텍스트라 할 수 있겠다.

‘시티 오브 갓’은 ‘가만히 있어도 죽고, 도망가다가도 죽는’ 곳이다. 어떻게든 탈출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과 뒷부분에 나오는 닭 한 마리는 그래서 이 답답한 공간에 갇힌 아이들과 닮았다. 목이 곧 떨어져나가야 하는 운명, 살고 싶다. 도망쳐보지만 결국은 앞뒤의 사람들 틈에 갇히고 만다. 이제 어디로 탈출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날아볼 것인가.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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