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량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울부짖는 순간에도 자동차들은 멈추지 않고 도로 위를 흐른다. 일상의 규칙들이 무덤덤한 건 매우 당연한 현상이지만, 가끔씩 무언지 모를 섬뜩함이 삶에 찌들어버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2. 돈이 있고 없음은 경제적 잣대의 역할을 뛰어 넘어 대부분의 사회관계를 결정짓는 데 핵심으로 기능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먹히는 세상. 껍데기가 주인이 되는 사회. 진정 마네킹들의 진열장이다. 신체강탈자들이 단체로 침입 관광이라도 온 것일까.

3. 신은 죽었다. 니체가 죽여 버린 그 '신'이 아니라, 존재해야 마땅한 신이 지금 이곳에는 없다. 도시를 떠나버렸거나 혹은 직무유기 중이거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일식(L'Eclisse)>에 등장하는 풍경은 지금 이 도시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쓸쓸하고 고독한, 이제는 지루해져버린 풍경. 내면 역시 황량하기 짝이 없다. 사랑은 죽고 섹스는 벽에 걸린 그림처럼 건조하다. 사람이 붐비는 곳은 증권시장뿐. 돈의 흐름이 곧 인간의 흐름이 되는 세상이다. 자본神이 돌보시는 축복받은 도시들은 매우 시끄럽지만, 그래서 텅 비어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에, 페르낭 브로델을,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홍세화를 지지한다. 신이 죽었다고 따라 죽을 수는 없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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