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스펙터클과 드라마의 전략적 결합


홍콩영화의 기나긴 침체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 안에서 자신의 역영을 꾸준히 지켜내던 성룡이 다시 한번 돌아왔다. 홍콩영화가 무차별적 자기복제로 황금기의 위력을 서서히 잃어가던 그 때에도 성룡은 고유한 영화 스타일을 흔들림 없이 고수, 개성 넘치는 목록으로 필모그래피를 장식해온 배우다.

분명히 장르영화를 표방하지만 그의 영화는 성룡표로 따로 불리울 만큼 개성 넘치는 활용들로 가득하다. 성룡은 휴머니즘과 권선징악의 기치 아래 기발한 세트 안에서 벌어지는 위험천만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아크로바틱 쿵푸를 트레이드마크 삼아 코믹액션에 관한한 독보적인 지위를 획득해왔다.


재치 넘치는 액션과 코미디의 적절한 교차점을 달리던 성룡은 95년 <홍번구>로 박스오피스 1위를 점령하며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입성하게 된다. 이 후에는 피부색이 다른 파트너로 버디무비의 효과를 노리거나 테크놀로지와 쿵푸를 결합하는 등 보다 다양한 세계 지향적 전략들을 잇달아 선보인다. 그 과정에서 성룡은 역시 세계적 영화인이라는 찬사와 관습적 내러티브나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에 가려 진부해졌다는 평가를 번갈아가며 들어왔다.

성룡은 간헐적으로 잃어버렸던 자신의 색채를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재확인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장르와의 결합마저 기획한다. 그 작업에 가장 성룡적인 시리즈 ‘폴리스 스토리’가 표방되었음은 당연한 전략.

전작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다국적 프로젝트에서 슬랩스틱과 캐릭터의 물량공세에 의존하는 바람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성룡은,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는 스케일 큰 액션에 어느새 쉰에 들어선 나이를 보조하려는 듯 드라마적 요소를 결합, 영화폭의 확장을 꾀한다. 또한 자신을 보좌할 역할로 사정봉, 오언조 등 차세대 배우들을 끌어들이고 온라인 게임,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젊음 지향적 코드를 도입하면서 화려함의 배가를 노리기도 한다.


<천장지구>의 진목승 감독과 함께 작업한 <뉴 폴리스 스토리>는 기본적으로는 복수의 내러티브로 구성된다. 성룡은 다시 한번 잘나가는 모범경찰로 돌아오지만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결코 코믹하고 순탄한 여정을 밟지 못한다.

진국영(성룡)은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린 은행강도 5인조를 체포하기 위해 그들의 아지트로 잠입하지만, 부하들은 전멸당하고 자신은 ‘Time to play'를 외치며 범죄와 게임을 동일시하는 5인조의 놀잇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비탄에 잠겨 술로 1년을 허비해온 진국영은 새로운 파트너 정소봉(사정봉)의 도움과 약혼녀 가이(양채니)와의 대면을 통해 절망에서 조금씩 깨어난다. 5인조의 정체를 조금씩 알아가는 가운데 진국영은 그들과 다시금 마주할 용기를 서서히 찾아간다.

부하를 모두 잃어버린 슬픔과 고통 때문에 술에 절고 길에 토악질하며 쓰러지는 ‘고뇌하는 성룡’은, 조금 작위적이긴 하지만, 그의 나약한 내면을 오랜만에 엿볼 수 있는 드라마적 장치다. 그는 방한 후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관객들이 우는 모습에서 보다 큰 성취감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내면연기에 적잖은 정성을 기울일 것임을 고백하기도 했다.

성룡의 진지함을 중심에 배치한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황지강 감독과 호흡을 맞춘 93년 작품 <중안조>에서 성룡의 표정은 진지함을 넘어 슬픔, 비장, 분노로 가득하다. 홍콩, 대만, 중국을 뒤흔든 왕일비 사건을 영화로 담은 <중안조>는 분노한 성룡과 타락한 경찰의 대치구도 안에 하드 보일드적 문법을 삽입, 홍콩의 어두운 자화상을 거칠게 투영해냈다. 성룡은 <중안조>를 통해 배우로서의 필요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을 이미 증명한 셈이다.


<뉴 폴리스 스토리>의 성룡도 연기 자체로는 나무랄 데 없는 활약을 펼친다. 특유의 장난기 다분한 웃음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과도한 엄숙에 빠지지도 않는 감정조절은 그를 ‘액션뿐인 배우’의 목록에서 지워낼 만한 효과는 분명히 나타낸다.

다만 감정의 분위기가 서로 다른, 각종 에피소드들이 뚜렷한 호흡을 찾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균열된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플롯의 허점 때문에 성룡의 감정선 또한 거친 호흡으로 연결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드라마트루기 상의 약점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뉴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표 오락영화로서 꽤 만족할 만한 볼거리로 채워져 있다. 성룡은 홍콩 컨벤션 센터 벽면을 따라 수직하강하거나 묘기 같은 오타바이 추격전을 펼치며 나이에 맞지 않게 여전히 아찔한 스펙터클에 관한한 정점에 서있음을 과시한다.

이 같은 볼거리에는 CG로부터 창조된 스타일리쉬한 화려함에서 찾기 힘든, 사람이 액션의 중심에 자리 잡을 때 만끽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 긴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룡은 악랄하고 막되먹은 5인조에게마저 회개할 시간을 부여해준다. 이 인위적 감동 유발 장치를 휴머니즘의 연장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역시 성룡표를 볼 때만 가질 수 있는 너그러움 때문일 것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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