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다정한 여자친구는 있어야겠고, 둘이 빛으로 모스 신호도 주고받아야 하고(낭만!), 최종 시퀀스는 몽환적으로 아름다워야 되고 등등 감독이 지 하고 싶은 '갬성질'은 다 하는데, 철거는 석면 제거를 위한 것이라도 일단 비정한 것이고 봐야 하는, 이분법적 감성 충만의 영화.

 

'자본주의적 중력'보다 '감성 포장질'이 더 싫어서 SF로서도 그닥

(이하 스포 약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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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주인공이 죽는 설정이었으면 시간 지연의 시네마틱 숏도 탄생하는 등 ''에 가까웠을 텐데 아깝.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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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퍼가요구독하기만으로도 빼곡히 채워지는 인류 멸망의 바이블.

 

영화 한 편을 그럴듯한 거짓말 덩어리라고 할 때, ‘그럴듯점수가 5점 만점에 최소 4.5점은 되는 듯.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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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선택받은 자의 세상 구하기같은 영웅 서사에서는 흥미를 눈곱만큼도 느끼지 못한다. 재미는커녕 너무너무 시시해서 보다 보면 심신이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고 무력해지는 기분.

 

그러니까 대개 격이 다른 혈통, 남다른 능력 보유, 고난-고뇌-각성, 세이브 더 월드따위의 이야기 수순인데, 이건 어디까지나 신화와 종교의 화술 아니던가. ‘츄즌 원인 척하는 자를 겹겹이 둘러싸는 포장과 보존의 기술. 거짓 중에서도 가장 원형·원시적인 거짓. (진부해지니 그만 쓰도록 하자.)

 

뭐 이런 쓸데없는 얘길하는 이유는, 그래서 나한텐 <>이 드뇌 빌뇌브 영화를 통틀어 제일 또는 유일하게 시시했기 때문이다. 전작이 21세기 SF 최고 걸작이었거나 말거나 이번 건 몰입이 전혀 안 돼 끝까지 보는 것조차 인내가 필요했었다는 고백.

 

+ 같은 이유로 선택받은 자 서사에 균열이 제대로 날 때는 환장하는 편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끄트머리로 훅! 순간이동, 존재의 지위에 관한 아찔한 공허감을 창조해낸 빌뇌브의 전작 <블레이드 러너 2049>, 신화를 홀딱 뒤집어 선택받음에 공포와 비극성을 입힌 <유전>, 그래서 내겐 걸작 오브 걸작. 헤일 파이몬.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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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포)

 

이건 만듦새보다는 윤리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가 클리셰 범벅이라서도, 그 범벅에 개연성이란 소스가 빠졌기 때문도 아니라는 말이다. 대개의 영화들이 따지고 보면 그 모양인데, 불쾌할 것까지야.

 

문제는 학대를 다루는 방식이다. “도박중독 양부가 한눈파는 사이에 여아 사고사, 최근 뉴스 한 꼭지의 제목이 아니다. 이 양부는 <승리호>의 주인공 태호 씨 되겠다. , 현실세계와 달리 그는 어떤 손가락질도 받지 않는다. 열렬히 반성 중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명백한 방임으로 아이를 사망케 한 이 아동학대 가해자의 참회를 시종일관 어여삐 여기사측은지심을 과하게 발동해댄다. 그것도 모자라 끝에서는 죽은 아이 닮은꼴 소녀를 기어이 무당으로 만들어 가해 양부를 죄책감으로부터 영구 해방시키는 굿까지 해대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 토할 뻔했다.

 

그러니까 아동학대 신고와 처벌과 방지가 절절한 시대에 등장한, 본격 가해 어른 살길 마련.

 

불쾌한 건 이 같은 드라마를 가능케 한 바탕으로서의 태도다. ‘부성애를 회복한 선한 엘리트따위의 히어로 자격 서사를 위해, 아동학대에 대한 영화 안과 밖의 온도 차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뭉갤 수 있는 무감각 말이다. 이를테면 끝--- 둔해빠진.

 

그렇게, 죽은 소녀는 자신을 죽게 만든 놈에 대한 정화의 의무마저 짊어진다. 입력된 과거 세탁 능력치가 가히 블랙홀급, , 이 영화 SF였지.

 

그러므로 결론(aka 순이의 상태) - “사망잔데요 사망은 안 했어요. 죽었는데 살아있는 거지.” erazerh

 

소녀, 정화의 아이콘. <승리호>

 

 

* ‘영화를 영화로 보라는 유의 사고회로는 오직 영화를 얕잡아볼 뿐이므로 취급을 지양합니다.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영화 [승리호]가 불쾌한 이유

※ <승리호>의 결말 등이 언급됩니다. :) 이건 만듦새보다는 윤리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가 클리셰 범벅이라서도, 그 범벅에 개연성이라는 소스가 빠졌기 때문도 아니라는 말이다. 대개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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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도 양심도 능력도 없는 인권무새하나 때문에 벌어지는 참극. 문제는 서사의 태도가 원시적 선악론에 머무르다 보니 이게 참극인지 뭔지, 원인이 뭐였는지를 영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 물론 만듦새 자체도 꽝. 이래저래 고구마 18개는 먹은 듯하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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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위대한 여정이었거나 말거나 그 무엇이었거나, 결론은 매한가지. 목표점은 비좁고, 사고는 딱딱해지고, 인간성은 늘 변질될 테다. 돌아가야 할 지점을 애초에 정해놓고 그쪽에만 그럴 만한 가치를 뿌려둔 덕.

 

하지만 큰 우주든 작은 우주든 맘먹고 의미를 부여해대면 거룩하지 않은 게 있겠나. 동시에, 그 우주들을 통틀어 무()를 벗어날 수 있는 건 단 하나라도 존재하는가.

 

인위적인, 가치의 중력 혹은 무중력. 그렇게, 잘나가다 내 취향에서 탈선.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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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S의 비밀』은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Sequence), 신(Scene), 숏(Shot)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에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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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K가 눈(雪)을 맞는다. 죽어가면서. 어쩌면, 눈에 묻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블레이드 러너>(1982)의 후반부, 전투용 리플리컨트 로이 배티는 릭 데커드와 싸움 도중 폐기 시간에 다다른다. 이윽고 데커드의 목숨을 구해주고는, ()를 맞으면서 말한다.

 

나는 너희가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봤어 () 이제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겠지. 빗속의 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시간이 내 기억 전부를 집어삼킬 거라는, 그래서 태초의 암흑으로 끌려 내려가야 한다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공포심의 고백. 훗날 데카르트적 코기토에 부합하는 주체는 우리 중 누구였을까, 로 회자될 이 명-유언을 끝으로 배티는 눈을 감는다. 그의 말대로 비는 눈물을 머금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이 있다면 아마도 그의 죄 또한 씻어냈겠지.

 

35년이 지나 등장한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드니 빌뇌브 감독은 마지막 신(scene)에서 전작의 비와 닮은 듯 다르게 눈을 흩뿌린다. 눈은, 거리별로 속성이 달라진다. 손에 직접 닿으면 차갑고 보드랍다는 촉감이, 프레임 바깥에 놓인 관찰자 입장에서는 고요하고 정갈한 어떤 낭만성이 느껴지는 식이다. 이 낭만성에는 심지어 포근하다는 초감각이 더해져, 설경(雪景)은 종종 비극의 당사자를 달래고 감싸고 덮어주는 역할을 부여받아왔다. (feat.별들의 고향)

 

그리고 다시 한 번주인공 K가 눈(雪)을 맞는다. 죽어가면서. 어쩌면, 눈에 묻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마지막 신

 

SF영화를 정의해보자. 과학 또는 테크놀로지가 구현한 미래, 혹은 그 미래와 연결된 현재에 대한 이야기, 시공간에 관한 그럴싸한 공상들의 집합체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대개 혈통이든 무엇이든 어떤 역량의 전수를 위해 선택된 자(chosen one), 어그러진 세계 질서를 복원하고자 비장한 전투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가장 최첨단의 영역에서 써내려가는 가장 원형적인 서사. SF영화야말로 신화의 적자(嫡子)인 셈이다.

 

물론 또 다른 버전들이 있다. 이들은 정의성전(聖戰)’, ‘복원같은 인류애적 키워드에 관심이 없다. 대신 인류의 출현부터 먼 미래까지를 형이상학적으로 꿰어 냉소하거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테크놀로지를 한 극단으로 밀어붙여 경고를 남기거나(터미네이터 1·2), 21세기로 넘어와서는, 지구의 파괴적 관성에 치를 떨어’(언더 더 스킨) 버렸다. 오지 않은 시간을 경유하다 보니 시스템이 무엇을 잃을지, 인류의 존재는 옳은지를 묻고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는 듯이.

 

이처럼 SF영화는 가장 원형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한편에서는 문명의 본성을 향한 가장 날 선 접근이 돼왔다.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 로이 배티로 하여금 데커드를 죽이지 않고 끌어올리도록 함으로써 장르의 중력장을 찢고 그 날 세움의 영역으로 사뿐히 날아올랐다. 복제인간의 유언 한 구절은, 그렇게 영화사를 통틀어 제일 유명한 시가 됐다.

 

<블레이드 러너>의 후반부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줄거리는 그러나, 주인공은,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정도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이자 리플리컨트인 주인공 K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서사에 이끌리며, 스토리상으로는 데커드를 찾기 위해 이용된다. 선택받은 자로서 무거운 책무를 모조리 짊어질 각오를 다졌건만, 함께 가는 척하던 서사 씨가 문뜩 걸음을 멈춘 채 그의 자격을 부정해버린 것이다.

 

“오 이런! (레이첼이 낳은, 선택된) 그 아이가 너라고 생각한 거야…?”

 

세상의 중심에서 순식간에 훅! 하고 끄트머리 어딘가로 끌려난 것 같은 아득함. 이때부터 영화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간극이 된다. 선택받은 구원자와 가짜 기억이 심어진 그저 순종형 리플리컨트간 아찔한 심리적·물리적 거리. 내 위치가 격변했는데 그간 느껴온 세상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일 리 만무하다. K는 이내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면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도 이유도 잘 떠오르지 않는, 어떤 공허로 가득 찬 세계를 감지했을 테다.

 

<블레이드 러너>가 인간과 비-인간 혹은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선이 온당한지를 묻고 선의 형태를 블러처리했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렇듯 경계선을 잔혹하리만치 짙게 그어버린다. 세계의 모양을 담아내는 두 가지 방법. 후자의 경우, 즉 드니 빌뇌브 감독은 상상과 실재 사이의 골이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개체와 세계 간 구조의 도식화, 다시 말해 세계에 관한 개체의 이해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듯하다.

 

‘나’를 알아가기. <블레이드 러너 2049>

 

내 위엄을 찾을 곳은 우주가 아니다. 그것은 내 사고의 제어 기제에서 찾아져야 한다. () 우주는 공간을 온통 둘러싸서, 나를 원자 알갱이 하나 삼키듯 먹어버린다. 나는 생각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한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모든 개체는 그 자체로 유일한 존재지만 우주를 펼치면 단지 무한한 점 중 하나일 뿐이라는 명제는, 언제나 참이다. 1인칭 주인공인 우리 모두한테 초라함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구조. 태초부터 그랬다. 착각은 필연이다. 요컨대 이해란, 간극들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간극을 발견했을 때의 아찔함에서 시작돼야 하는 셈이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K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자는(데커드를 없애라는) 성전의 관성적 제안에 붙들리지 않았다. 당신이라면?

 

3D를 넘어 4D, 스펙터클을 다양한 감각으로 흡수해보라는 체험 지향적 시대거나 말거나 <블레이드 러너 2049>위대한 SF들의 길을 걷고 싶어 했고 또 걸었다. 과장하자면 인류와 문명을 적절한 각도의 비딱함으로 재단하는 단계를 넘어 우주를 이해하는 규칙 하나를 훔쳐 보여준 수준. 계보는 이렇게 새로 고침되며 이어지고 있다.

 

잠깐 꿈꾸는 건 괜찮잖아. <블레이드 러너 2049>

 

K라고 명명해준, 실은 그러도록 프로그래밍 된, K와 유일하게 소통해준, 실은 그러도록 프로그래밍 된, 증강현실 홀로그램 제품 조이는 영화 중간 말한다.

 

잠깐 꿈꾸는 건 괜찮잖아.”

 

잠깐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당신의 꿈은 언제 멈췄나. 내 꿈은 잘 있을까. 쓸쓸한 K에게 챙겨줄 건 뭐 없을까. 주섬주섬. 그렇게 드니 빌뇌브는 진짜눈을 선사한다. 선택된 자가 가짜눈을 만지는 그 시간에.

 

물론 희망은 개뿔. 그저 K가 만진 눈이 차갑고 따뜻하기를, 그를 덮은 눈이 포근하기를, 상상한다.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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