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원작으로 삼는 영화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이야기 전개에 관한 부분이다. 게임에도 줄거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물론 표면으로 드러나서 게임의 흐름을 직접 끌고 가지는 않는다(그런 게임도 있지만). 게임을 진두지휘하는 건 엄연히 게이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에서의 줄거리는 커다란 설계도나 '스타트' 이전의 프롤로그 형태로 다뤄지는 경향이 많다. 게이머가 그 이야기를 완성하는 건 결국 자신의 플레이를 통해서다.

많은 게임원작 영화들이 커다란 줄기가 되는 스토리는 가져오면서도, 그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데 꼭 필요한 게이머의 플레이는 등한시한다. 게임과 영화의 차이 - 즉 게임은 게이머가 플레이를 통해 전개를 제어할 수 있지만, 영화의 관객은 그럴 수 없다는 점 - 를 염두에 둘 때, 게이머의 플레이는 영화에서는 플롯들(주로 시각적 요소)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플롯들은 기본적인 줄거리 구조와 가능한 한 '관계'맺은 채 펼쳐져야 한다. 들쭉날쭉 대충 플레이로는 게임을 클리어할 수 없듯이, 들쭉날쭉한 플롯들은 결코 줄거리의 흐름을 감당해낼 수 없다. 스토리는 한없이 단순해질 수는 있을지언정, 게임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한없이 흐릿해질 필요는 없다.

영화 <둠(Doom)>도 그러한 실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임 속 개성 넘치던 지옥의 악마들은 에이리언과 좀비와 프레데터가 혼합된 정체성 없는 몬스터로 변했으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봐줄만 했던 평면적인 캐릭터들은 괜한 갈등과 변화를 겪으며 스스로 허점을 드러낸다(이성적이고 냉철하게 보이던 '피플스 챔프' 락의 변신은 그중에서도 압권).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1인칭 시점 전투장면과 엔딩 크레딧이 그나마 둠 마니아들을 달래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게임원작 '영화'가 될 수 없다. <레지던트 이블>의 대중성과 스펙터클은 화려한 몇몇 씬들을 통해서만 획득된 것이 절대 아니다.<둠>은 "gametime"을 멋들어지게 외쳐놓고는, 정작 플레이에는 그리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게이머와도 같은 영화가 되고 말았다. ⓒ erazerh

# 게임 '둠' 시리즈의 매력 중 하나가 특유의 묵시록적 분위기다. 그 지옥도의 풍경을 영화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특히나 아쉬운 부분.

# 둠2의 스샷. 스파이더 마스터마인드와 사이버데몬이 서로 싸우고 있는 귀여운 모습. 얘들 중 하나만 나왔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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