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현의 이전 대사들과 궤를 달리하는 한마디. “언제는 귀엽다며, 이 씨발년아.”가 불쑥 튀어나왔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영화가 이질적인 무엇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는 선언과도 같은 그 대사가, 나아가 관객의 예정된 불평에 부치는 박찬욱의 변(辯)처럼 들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언제는 거장이라며, 이 관객님들아.’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왜 박찬욱은 잘 나가던 내러티브를 작정하고 일그러뜨렸을까. 서로 다른 두 개(또는 세 개)의 박찬욱표 영화가 위태로이 엉겨 붙은 듯한 이 구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이 불균질과 관련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달리의 그림은 경직된 현실에 틈을 내고 그 틈을 통해 어떤 관념이 흐르도록 만들 뿐, 그 자체로 불균질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어찌됐든, 너무 기괴한 나머지 아름답기까지 한 몇몇 시퀀스에도 불구하고 ‘복수는 나의 것 > 올드보이 > 친절한 금자씨 > 박쥐’라는 느낌은 지우기가 어렵다. 불친절해서가 아니라 납득할 만한 ‘불친절의 당위성’을 아직 찾지 못한 탓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악취미’의 향연 따위를 원인으로 규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 그것은 박찬욱에게서 이미 성취한 자의 과시욕을 읽어야 하는, 조금은 가슴 아픈 일이 될 테니. 설마 박찬욱이 <로스트 하이웨이>를 두고 본인이 했던 말, 즉 “자기 자신의 모티브들을 재탕 삼탕 우려먹는 안이함. 미완성 각본으로 폼만 잔뜩 잡는다.”를 몸소 실행했을까. 일단은, 조금 더 고민해보자. ⓒ erazerh


# 박찬욱의 영화 중 가장 사랑스러운 건, 누가 뭐래도 <삼인조>다. 그 아름다웠던 언어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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