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노골적인 거짓말이지만, 그 자체로 나쁠 건 없다. 문제는 거짓이 완성되는 ‘경로’에 있다. 가난한 고아의 절절한 경험담이 자본 질서로의 화려한 편입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진짜 사연, 그러니까 ‘착한 빈민’과 ‘나쁜 빈민’이라는 대립항 말이다. 물론 영광스러운 신분 상승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이미 정해진 수순. 윤리적으로 올바르다면야 제 아무리 배고픈들 내일의 무엇이 두렵겠나 싶다.

선의의 개인과 그의 신화에 주목하는 드라마에서는 가난을 고착하는 구조 및 그 뼈대가 잘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꼭 그렇다. 여기에는 ‘불편함을 감수하라’ 유의 삐딱한 선동이 없다. 다만 묵묵히 작업 중임이 분명한 어떤 전지적 존재, 주인공을 따뜻한 햇살로 인도하리라 굳게 마음먹은 듯한 그 존재만이 감지될 뿐이다(그래서 영화가 택한 답은 D. It is written이다).

곳곳에 진실의 흔적을 뿌려놨다고 해서 그 흔적이 늘 세계의 본질로 기억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컨대 태생부터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한 자들을, 이 영화는 진짜로 위로하고 있는가. 아니, 차라리 팝콘을 씹고 콜라를 마시자. 그러다 끝 무렵에 미소 머금은 눈물 한 방울을 ‘톡’ 떨어뜨리자. 훌훌 털고 일어나면, 아마도 그때 ‘슬럼독 밀리어네어식’ 위로는 완성되겠지. ⓒ erazerh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