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내가 영화 관련 글을 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뭐, 물론 지금은 전혀 안 쓰고 있다ㅡ.ㅡ) 좀 더 구체적으로 자문해보면, ‘거대한데다 속도마저 갖춘 가공할 생산력이 이미 미덕으로 자리 잡은 채 소비를 숨 가쁘게 재촉하는 지금의 구조와, 조금만 둘러보면 내 글보다 몇 십 배는 뛰어난 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영화평론가도 아닌 내가(즉, 영화평을 쓴다고 해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닌) 도대체 왜 영화와 관련한 글을 써야만 한다고 혼자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일까?’ 정도가 되겠다.

우선 ‘영화’라는 매체를 살펴보자. 영화라는 허구는 간혹 불가능의 범주를 넘나들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세계라는 그물망 안에 모두 걸리기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설정들, 이를테면 SF나 호러, 스릴러 등의 장르에서 주로 나타나는 초현실, 초자연, 비과학적인 상황들 또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만 본래 의도했던 판타지로서의 가치를 얻게 된다. 현실이라는 테두리는 ‘영화 속 사건이 실제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영화가 스크린 밖 세상을 과연 어떻게 끌어오거나 활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보다 생산적인 담론을 허락한다.

영화는 결국 재현의 예술이다. 사실 그대로든 사실에서 조금 더 나아갔든 영화는 세계의 현상와 본질을, 그리고 인간과 역사를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해 영화적 시공간으로 담아낸다. 빔 밴더스는 “영화가 사물의 존재를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허위와 가식이 뒤덮어 버린, 폭염처럼 답답한 세상 대신 어떤 가공된 사건(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니다. 누군가가 거대한 자본놀음에 질식하지 않은 채 견디고 있다면, 10편의 쓰레기 영화를 기꺼이 참아내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삶의 진실을 소중하게 머금고 있는 단 한 편의 영화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이상향은 아득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속한 세계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 낯설고 답답한 시스템에 휩쓸려 내 존재는 결국 실종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시선이나 소외된 인간을 따뜻하게 품고자 하는 진심 어린 마음, 나아가 진실을 향한 열망은 소중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런 느낌들을 주로 영화 안에서 찾고자 한다. 진실된 의도에서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나와 내가 속한 현실을 고민하게 만드니까. 고민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도 싶다.

그래서 나는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게 되면 그 작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거나, 카메라가 끌어온 현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매체에 기고하느냐.’, ‘글솜씨가 어느 정도인가.’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글 한 편을 정성껏 썼을 때, 비로소 내 것으로 다가온 소중한 영화 한편, 그것이다. ⓒ erazer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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